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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r 08. 2024

281. 왜 노란 화살표일까요?

누군가의 헌신이 만든 기적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초행길의 사람들도 지도 없이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 표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그 모든 안내 표시는 노란색 화살표이다. 조개껍질과 같이 있기도 하고 조개껍질 없이 노란 화살표만 있는 곳도 많다, 정부기관이나 자치단체 등 공공 기관이 설치한 안내판은 모두 규격에 맞게 조개껍질이 포함된 노란 화살표를 사용하지만 그냥 담벼락이나 길바닥, 나무, 돌, 전봇대 등등 안내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노란 화살표가 고맙게도 길을 가리켜 준다. 그럼 이런 표지를 누가 처음 고안했을까? 그리고 왜 이렇게 노란색으로 통일되어 있을까? 

해답은 바로 위 동상 사진의 주인공이다. 그는 엘리아스 발리냐 삼페드로(Elías Valiña Sampedro)이다. 그는 스페인의 사제이자 학자였으며, 1929년 2월 1일 까미노와 깊은 연관이 있는 사리아(Sarria) 자치구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1989년 12월 11일 칼데 병원(루고)에서 사망했다. 그는 1957년 9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은 때부터 죽을 때까지 갈리시아의 프랑스 길에 있는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의 본당 신부였다. 그는 산티아고 길의 가장 기념비적인 상징 중 하나인 노란색 화살표를 만든 선구자였다. 그래서 그의 시신은 전설적인 산타 마리아 교회에 묻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중세 시대에 융성했지만 점차 쇠퇴하여 20세기 에는 거의 명맥이 끊어져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문가와 학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1965년 산티아고 길에 관한 논문으로 살라망카 대학교(교황청 설립)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연구는 1967년 고등과학연구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 상(Antonio de Nebrija Prize)을 수상했다. 수년간 산티아고 길을 연구한 후, 그는 이 고대 트레일의 중요성을 확신하고 우리가 카미노 프란시스라고 부르는 길을 되살리는 도전에 나선 것이다. 그는 프랑스 길(French Way)의 경로를 그의 유명한 "노란색 화살표"로 표시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마침내 당국이 그를 지원하도록 설득한 후 일부 자원봉사자들을 모았다. 그가 고대 경로를 홍보하기 시작했을 때 일부 지역에서는 통행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그는 순례길의 원래 구간을 정의하기로 결정하고 도시의 시장과 다른 가톨릭본당을 설득하고 다양한 지역의 친구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한 후 원래 경로를 표시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는 또한 순례자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개발했다. 그중 첫 번째 작품인 '까미노 아 콤포스텔라( Camino a Compostela)'는 1971년에 출판되었다. 그 뒤를 이어 1985년에 출판된 유명한 '산티아고 길( Camino de Santiago: Guía del Peregrino )'이 뒤를 이었다.

1984년에 그는 프랑스에서 넘어오는 피레네 산맥의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 시작하여 카미노를 따라 산책로를 조정하고 노란 화살표를 표시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트레일을 따라 있는 다양한 까다로운 교차로에서 올바른 길을 표시하기 위해 상징적인 노란색 화살표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도로공사를 하다가 남은 노란색 페인트 통을 가지고 시트로엥 GS를 타고 스페인 북부 전역을 운전하며 산티아고로 향하는 노란 화살표를 그렸다고 한다. 그는 또한 까미노의 다양한 구간을 되살리고 유지하기 위해 지역별 협회의 창설을 장려했으며, 다른 유럽 대학과 콘퍼런스를 방문하여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위한 소통과 이해의 공간인 산티아고 길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따라서 오늘날의 산티아고 순례자들은 실제로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노란색 화살표보다 Elías Valiña Sampedro에게 훨씬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 올레길에 서명숙이 있다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삼뻬드로가 있는 것이다. 그가 길을 다니며 노란 화살표를 그리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단다. 경찰들이 드에게 무슨 짓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장차 프랑스로부터 대규모 인원이 침입할 수 있도록 이정표를 그린다고 했단다. 그 당시 그가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은 곧 현실화가 되었다. 1990년에는 순례객이 연간 겨우 5,000명에 불과했던 것이 2023년에는 연간 50만 명에 육박할 정도가 되었으니 그의 "대규모 침입"이라는 예언이 맞아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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