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비는 왕소군이다. 소군이 고국 생각이 마음속에 두루 있어서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이 맘 상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경사(지명)에 날도 이미 어두워졌는데, 흰 눈이 어지럽게 날리고, 날씨가 추운 까닭으로 곁에 있던 사람이 비단옷을 바꾸어 따뜻하고 두툼한 옷으로 바꿔 입을 것을 권한 것이다.
억지로 궁궐 앞에 끌려와서는 무심하게 맑은 노래와 묘한 춤을 보면서 함께 밤 사냥에서 돌아오는 선우를 기다린다. ○ 이것은 왕소군이 호국에 있으면서 선우를 따라 놀고 즐기는 것이다.
<저광희(儲光羲)> : 당나라 윤주(潤州) 연릉(延陵, 지금의 江蕭丹陽縣 남쪽) 사람. 조적(祖籍)은 연주(兗州, 지금의 山東에 속함)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14년(726) 진사가 되고, 중서시문장(中書試文章)과 사수위(汜水尉)를 지냈다. 나중에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했다가 다시 나와 태축(太祝)에 임명되어 세칭 저태축(儲太祝)으로 불린다.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옮겼다. 안록산(安祿山)이 장안(長安)을 함락했을 때 협박으로 관직을 받았기 때문에, 난이 평정된 뒤 귀양 가 영남(嶺南)에서 죽었다. 원래 문집 70권이 있었지만, 이미 없어졌다. 현재 『저광희시(儲光羲詩)』가 전한다. 『전당시(全唐詩)』에 시 4권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