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호수로 놀러 가려고 먼저 꽃과 대나무가 무성하게 덮여있는 곳에 먼저 왔으니, 바로 그윽한 오솔길과 서로 옆에 있다. 嶼(서)는 바위 산이 물 가운데 있는 것이다. 유혜는 산속 오솔길이라. 밤에 시내에 들어간 것은 바로 호수로 들어간 것이다. 유람선의 노가 공중에 떠 있으니 호수는 텅 비어 넓은 것이고, 밤에 시내에 들어간 것은 아래의 달이 쉬이 지는 근거를 숨겨둔 것이다. 마름과 연꽃이 물을 덮은 것은 이 호수의 경치를 읊은 것이다.
芰(기)는 마름이고, 荷(하)는 연꽃(芙蕖)이니, 물을 덮고 있어 배가 나가기 어려운 것은 마름과 연꽃이 많음을 보인 것이다. 가무가 사람을 머물게 했다는 것은 좌중의 정경을 읊은 것이니, 가무가 이미 묘하여 사람이 계속 머물게 하여 주객이 즐거움을 주고받으니 마침내 달이 서쪽에 떨어지는 것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제1구는 꽃이 있는 못과 대나무가 있는 섬 옆에 그윽하고 깊숙한 오솔길이 있으니, 이는 배를 타고 처음 들어간 것이요. 둘째 구는 유람선이 호수 위에 떠있는 것이 마치 공중에서 바야흐로 밤의 계곡에 들어가는 것 같으니, 이는 이미 호수에 들어간 것이다. 셋째 구는 배가 수로에 나아감에 마름과 연꽃이 덮여있어 마음대로 끌고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넷째 구는 바야흐로 노래와 춤으로 모두 더불어 즐김으로 새벽달이 서쪽을 향해 낮아짐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저광희(儲光羲)> : 윤주(潤州) 연릉(延陵) 사람으로 당(唐) 나라 때의 관리이자 시인이다. 전원산수시파(田園山水詩派)의 대표적인 인물로 개원(開元) 14년(726)에 진사(進士) 출신이다. 벼슬은 풍익현위(馮翊縣尉), 전사수(轉汜水) 현위, 안선(安宣)현위, 하규(下邽) 현위, 태축(太祝), 감찰어사(監察禦史) 등을 역임했다. 후에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했다. 안사(安史)의 난(亂) 때에 적군에게 포로로 잡혀 강압으로 적군의 벼슬을 살다가 난이 평정되자, 영남(嶺南)으로 유배되었다. 저서로 《정론(正論)》, 《구경외소(九經外議疏)》가 있다. 또 근래에 《저광희집(儲光羲集)》이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