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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Apr 12. 2024

52> 出塞行(출새행) / 변경에 가며

漢詩 工夫 (240403)

出塞行(출새행) / 변경에 가며

 - 王昌齡(왕창령)


白花原頭望京師

백화원두망경사

●○○○●○◎

백화원 머리에서 멀리 서울을 바라보니


黃河水流無盡期

황하수류무진기

○○●○○●◎

황하의 물줄기는 다할 기약이 없구나.


窮秋曠野行人絶

궁추광야행인절

○○●●○○●

늦가을 광야에는 인적도 끊겼는데,


馬首東來知是誰

마수동래지시수

●●○○○●◎

말머리 동쪽에서 오는 이 누구인지 아는가?

◇ 白花原(백화원) : 명확하지는 않지만 변방의 지명

◇ 京師(경사) : 서울, 당시의 장안

◇ 窮秋(궁추) : 음력 9월을 달리 부르는 말, 곧 늦가을. 만추 또는 노추(老秋).

此(차)는 出塞外(출새외)하야 望故國之詞也(망고국지사야)라. 登白花原頭(등백화원두)하야 望見京師則山川(망견경사즉산천)이 繞紆(요우)하고, 雲靄掩翳(운애엄예)하야 雖不可見(수불가견)이나 然(연)이나 京國之思(경국지사)가 結于心中(결우심중)하야 但其登原而望之而已(단기등원이망지이이)라. 見黃河之水(견황하지수)가 滾滾流去(곤곤류거)하야 不有盡之期(불유진지기)하니 我之愁緖(아지추서)가 與彼水(여피수)로 何異哉(하이재)아.

이는 변방 밖으로 나가서 고국을 바라보며 지은 노래다. 백화원의 꼭대기에 올라 서울을 바라본 즉 산천이 굽이굽이 둘러있고 구름과 아지랑이가 가려있어 비록 볼 수는 없으나 서울 생각이 맘속에 맺히어 다만 언덕에 올라 바라볼 뿐이다. 황하의 물을 보니 유유히 흘러가서 다할 기약이 없고, 내 수심의 실마리가 저 물과 더불어 어찌 다르겠는가?

秋已深而曠漠之野(추이심이광막지야)에 行人(행인)이 阻絶(조절)하야 滿目蕭條(만목소조)하야, 不可堪異域之孤苦而一匹馬首(불가감이역지고이일필마수)가 自東而來(자동이래)하니 不知其誰歟(부지기수여)아. 在塞外(재새외)하야 登白花而望京(등백화이망경)하고 見黃河而自歎(견황하이자탄)하야 黃沙白草(황사백초)는 蕭瑟於秋風(소슬어추풍)하고 無邊之沙漠(무변지사막)에 不見行人而忽見馬首之東來(불견행인이홀견마수지동래)하고 未知誰(미지수)나 然(연)이나 寂寞中(적막중)에 庶有心喜之端(서유심희지단)이라.

가을이 이미 깊어 광막한 들판에 행인이 막이고 끊기어 눈에 쓸쓸함만 가득하고, 이역에서의 외롭고 고통스러움을 견딜 수 없는데 한필의 말머리가 동쪽에서 오니 누구인지 알 수 없구나! 변방에 있어서 백화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고, 황하를 보면서 스스로 탄식하여 누런 모래 흰 풀은 가을바람에 소슬하고, 끝없는 사막에는 행인도 보이지 않는데 홀연히 동에서 오는 말머리를 보고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적막한 가운데 바라건대 마음에 기쁜 단서가 있기를.

王昌齡(왕창령698-755) : 자 소백(少伯). 강령(江寧)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남경(南京) 출신. 727년 진사에 급제하여 비서성 교서랑(秘書省校書郞)이 되었고, 734년 박학굉사(博學宏詞)의 시험에 합격하여 범수(氾水)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성고현(成皐縣)의 위(尉)가 되었다. 그러나 소행이 좋지 못하다 하여 강령의 승(丞), 다시 용표(龍標)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검양(黔陽)의 위(尉)로 좌천되었다. 왕강령 ·왕용표로 불리기도 하는 것은 그 임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자사(刺史)인 여구효(閭丘曉)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시는 구성이 긴밀하고 착상이 청신하며, 특히 칠언절구에서 뛰어난 작품이 많다. 여인의 사랑의 비탄을 노래한 《장신추시(長信秋詩)》 《규원(閨怨)》, 변경의 풍물과 군인의 향수를 노래한 《출새(出塞)》 《종군기(從軍記)》가 유명하다. 시집 《왕창령 전집》(5권)과 그의 저술로 전하여지는 시론서 《시격(詩格)》 《시중밀지(詩中密旨)》 각 1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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