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영주의 소년이 들판에서의 고생이 싫어 여우 갓옷을 입고 성 밑에서 사냥을 하는 것이다. 오랑캐 술은 비록 천 잔만큼 많이 마셔도 사람이 취하지 않으니, 술이 담백하고 독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오랑캐 아이들은 비록 열 살의 어린이라도 말을 탈 수 있으니, 즉 아이들의 습관성을 알 만 하다. 앞의 두 구절은 소년의 기운과 습관이 사냥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였고. 뒤의 두 구절은 사람이 술에 취하지 않고, 아이도 말을 잘 탄다는 말을 하였으니, 이것은 영주의 풍속을 말했을 뿐이다.
고적(高適 ; 702~765) : 중국 당나라의 시인. 자 달부(達夫). 허베이성(河北省) 출생. 젊었을 때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산둥(山東)과 허베이 지방을 방랑하며 이백(李白)·두보(杜甫) 등과 사귀었다. 안록산(安祿山)의 난 때에 간의태부(諫議太夫)로 발탁되었으나, 그의 직언(直言) 탓으로 환관(宦官) 이보국(李輔國)에게 미움을 사서 펑저우(彭州) 자사(刺史)로 좌천되었으며, 청두(成都)에 유배되어 있던 두보와 가까이 지냈다. 그 후 영전되어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가 되었고, 보하이현후(渤海縣侯)에 봉해졌다. 그의 시는 호쾌하면서도 침통한데, 특히 변경에서의 외로움과 전쟁·이별의 비참함을 읊은 변새시(邊塞詩)가 뛰어나다. 잠삼(岑參)의 시와 더불어 성당시(盛唐詩)의 일면을 대표한다. 그의 시집은 《고상시집(高常詩集)》이라 하여, 그가 찬(撰)한 《중간흥기집(中間興氣集)》과 함께 지금까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