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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Apr 24. 2024

65> 玉關寄長安主簿(옥관기장안주부)

漢詩工夫(240420)

玉關寄長安主簿(옥관기장안주부) / 옥관에서 장안의 주부에게 부치다

 - 잠삼(岑參)


東去長安萬里餘

동거장안만리여

○●○○●●◎

동으로 가면 장안까지 만 리가 넘는데


故人那惜一行書

고인나석일행서

●○●●●○◎

친구는 어찌 한 줄의 편지를 아끼나.


玉關西望腸堪斷

옥관서망장감단

●○○○○○●

옥관에서 서쪽을 보면 간장이 끊어지네.


況復明朝是歲除

황부명조시세제

●●○○●●◎

하물며 내일 아침이면 한 해의 끝임에랴.

* 主簿(주부) : 관직 명.

* 那惜(나석) : 어찌 아끼나.

* 옥관(玉關) : 옥문관(玉門關)으로 한 무제 원정(元鼎) 연간에 수축되었다. 돈황군 용륵현(龍勒縣)에 속함. 서역 지방의 옥석(玉石)이 이곳을 경유하여 내지로 수입되었기 얻어진 명칭으로 옥문도위가 이곳을 다스린다. 서쪽과 북쪽에만 문이 있으며, 북문 밖은 소륵하(疏勒河)이다. 한대(漢代)에는 서역으로 통하는 양대 문호의 하나로서 옥문관을 나서면 실크로드의 북쪽 길에 이어져 거사(車師), 구자(龜玆), 소륵 등의 국가에 통하였다.

此(차)는 言己從長安(언기종장안)하야 至玉關也(지옥관야)라. 那惜(나석)은 那可惜也(나가석야)라. 去萬里者(거만리자)가 視一行書(시일행서)면 奚啻萬金(해시만금)이리오. 故人(고인)이 獨非人情乎(독비인정호)아 那可惜此而不寄也(나가석차이불기야)오. 此(차)는 責主簿(책주부)라. 出玉關而西望(출옥관이서망)하니 茫茫風沙而故人之消息(망망풍사이고인지소식)이 杳然(묘연)하니 可堪腸斷(가감장단)이온 況逢歲盡(황봉세진)하야, 日月流遷(일월류천)하야 旅館愁思(여관수사)가 猶爲不堪(유위불감)하니 故人(고인)이 知之否耶(지자불야)아?

이 시는 자신이 장안에서 옥문관에 이르러서 한 말이다. ‘那惜(나석)’은 ‘어찌 아낄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만리에 떨어진 자가 한 줄의 편지를 보면 어찌 만금뿐이겠는가? 친구가 유독 인정이 없는가? 어찌 이를 아껴 부치지 않는가? 이는 주부를 꾸짖은 것이다. 옥문관을 나와 서쪽을 바라보니, 아득하여 모래바람 부는데 친구의 소식이 아득하여 간장이 끊어질 듯한데, 하물며 세모를 만남에랴. 해와 달이 흐르고 옮겨가 객사에서의 수심이 오히려 견딜 수 없으니 친구는 아는가? 모르는가?

잠삼(岑參, 715년 ∼ 770년) : 당나라의 시인. 강릉[江陵, 지금의 허베이성(湖北省) 장링현(江陵縣)] 사람으로, 선조의 고향이 남양[南陽,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난양시(南陽市)]이다. 본래 명망 있는 관료 집안 출신이었으나 부친 대에 가세가 몰락했다. 따라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그의 평생의 염원이었으며, 이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5년여간 안서(安西)와 북정(北庭) 등의 서부 변경 지역에서 종군하기도 했다. 변경에 있을 때 그곳의 황량한 풍경과 혹독한 기후 환경, 전쟁의 참혹한 모습과 병사들의 고통, 소수민족들의 풍습과 문물 등을 많은 시로 남겨 중국 문학사상 ‘변새시(邊塞詩)’라는 새로운 시의 영역을 확립했으며, 고적(高適)과 더불어 이른바 당대(唐代) ‘변새시파(邊塞詩派)’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으로 추앙받았다. 장편 가행체(歌行體)에 특히 뛰어났으며 7언 절구에서도 좋은 작품을 다수 남기고 있다. 시집으로 ≪잠가주시(岑嘉州詩)≫ 8권이 있으며, 현재 400여 수의 작품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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