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삼이 일찍이 봉상청을 따라 옥문을 나가 서역을 원정하였다. 변방에 驛亭(역정)이 없고, 山嶺(산령)도 없고, 봉화대로 알게 하는데 그치니, 옥문관 밖에 다섯 봉화대가 있고, 목숙봉이 그중 하나다. 입춘을 만났기 때문에 생각을 일으킨 것이다. 호로하가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서 흐르는 물결이 매우 급하고 깊어서 건널 수 없다.
* 봉상청(封常淸) : 封大夫(봉대부). 보(天寶) 13년(754) 어사대부(御使大夫)로 북정도호(北庭都護) 겸 안서절도사(安西節度使)를 맡아 서북변방을 지키는 총사(總帥)였다.
임금이 옥문관을 설치하니 곧 서역의 요충지이다. 호로하가 대동부 계주성 북에 있으니, 이는 풍경의 나쁨으로 인해서 집 생각을 한 것이다. 규중의 심정은 공허한 생각에 멀리서 바라보는 데에 지나지 않고, 실상을 알지 못하니, 혹시 보도록 하더라도 또한 마음 상함이 같음을 어찌 알지 못하랴. 무료하게 묘사하여 애오라지 수심을 부치는 것이다.
잠삼(岑參, 715년 ∼ 770년) : 당나라의 시인. 강릉[江陵, 지금의 허베이성(湖北省) 장링현(江陵縣)] 사람으로, 선조의 고향이 남양[南陽,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난양시(南陽市)]이다. 본래 명망 있는 관료 집안 출신이었으나 부친 대에 가세가 몰락했다. 따라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그의 평생의 염원이었으며, 이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5년여간 안서(安西)와 북정(北庭) 등의 서부 변경 지역에서 종군하기도 했다. 변경에 있을 때 그곳의 황량한 풍경과 혹독한 기후 환경, 전쟁의 참혹한 모습과 병사들의 고통, 소수민족들의 풍습과 문물 등을 많은 시로 남겨 중국 문학사상 ‘변새시(邊塞詩)’라는 새로운 시의 영역을 확립했으며, 고적(高適)과 더불어 이른바 당대(唐代) ‘변새시파(邊塞詩派)’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으로 추앙받았다. 장편 가행체(歌行體)에 특히 뛰어났으며 7언 절구에서도 좋은 작품을 다수 남기고 있다. 시집으로 ≪잠가주시(岑嘉州詩)≫ 8권이 있으며, 현재 400여 수의 작품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