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園(고원) : 고향(故鄕), 가원(家園)을 가리킨다. 잠삼(岑參)은 서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東望(동망)’이라 한 것이다.
* 漫漫(만만) : 길이 아득히 먼 모양이다.
* 龍鍾(용종) : 대나무의 종류의 하나이고, 용의 문양을 새긴 종을 말한다. 시어에서는 늙고 쇠잔한 사람의 모양, 눈물이 줄줄 흐르는 모양 등을 나타낸다. 고적(高適)의 시 <人日寄杜二拾遺(인일기두이습유)> 시에 “龍鍾還忝二千石(용종환첨이천석) / 늘그막에 2천 석 자사(刺史) 벼슬 살고 있으니, 愧爾東西南北人(괴이동서남북인) / 동서남북을 맘대로 다니는 그대에게 부끄럽다”라는 내용이 있고, 이화(李華)의 <臥疾舟中贈別序(와질주중증별서)> 시에 “潦倒龍鐘(요도용종) / 늙고 병드니, <百疾叢體(백질총체) / 온 가지 병이 몸에 모이네”라는 내용이 있다.
* 憑君 : ‘憑(빙)’은 부탁한다는 뜻이다. ‘君(군)’은 서울로 들어가 는 사자(使者)를 가리킨다.
서울로 가는 사신을 만남으로 인하여, 머리를 돌려 고향을 바라보니 길이 아득하고 길고 멀었다. 고향집을 생각하니 감정이 다급하여 이에 바라본 것이다. 용종은 대나무 이름이니, 나이 늙은 자가 마치 대나무 가지와 잎이 흔들리는 것 같이 하여 스스로 금하여 지탱할 수 없는 것이다. 두 소매가 용종이라는 이 말은 소매로 눈물을 닦으므로 두 소매가 떨어져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윗글에 먼저 나그네 생각의 괴로움을 말하니 즉 이곳에서 만난 것이 바로 감정의 생각이 있는 것이다.
종이와 붓이 없다는 것은 바로 마상에 있을 적에 만난 것이다. 종이와 붓이 없기 때문에 다만 전하는 말을 알려주고, 변방 밖에서 만났으므로 바삐 왕래하므로 편안하다고 집에 가서 말해주라는 것이다. 이는 옥문관 밖에 있었으므로 그 묘함이 보인다. 앞의 두 구절은 서로 만났을 때 동으로 바라보며 집 생각을 하여 두 소매가 눈물로 젖었다고 하였다. 뒤의 두 구절은 이 편에서 편지를 부치려 하였으나 종이와 붓이 없으므로 다만 말로 평안함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잠삼(岑參, 715년 ∼ 770년) : 당나라의 시인. 강릉[江陵, 지금의 허베이성(湖北省) 장링현(江陵縣)] 사람으로, 선조의 고향이 남양[南陽,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난양시(南陽市)]이다. 본래 명망 있는 관료 집안 출신이었으나 부친 대에 가세가 몰락했다. 따라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그의 평생의 염원이었으며, 이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5년여간 안서(安西)와 북정(北庭) 등의 서부 변경 지역에서 종군하기도 했다. 변경에 있을 때 그곳의 황량한 풍경과 혹독한 기후 환경, 전쟁의 참혹한 모습과 병사들의 고통, 소수민족들의 풍습과 문물 등을 많은 시로 남겨 중국 문학사상 ‘변새시(邊塞詩)’라는 새로운 시의 영역을 확립했으며, 고적(高適)과 더불어 이른바 당대(唐代) ‘변새시파(邊塞詩派)’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으로 추앙받았다. 장편 가행체(歌行體)에 특히 뛰어났으며 7언 절구에서도 좋은 작품을 다수 남기고 있다. 시집으로 ≪잠가주시(岑嘉州詩)≫ 8권이 있으며, 현재 400여 수의 작품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