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왕시어를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한 것이다. 9일은 일이 많아 바삐 뛰어다녔고, 1일은 한가하고 고요하여 일이 없는 까닭으로 그대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 또 그냥 돌아왔으니, 그 슬피 맺히는 밑바닥 회포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때에 사람의 골수까지 맑게 함을 생각하니, 문 앞엔 흐르는 찬 시냇물을 마주하고, 산중에는 흰 눈이 가득한 것이다.
위 두 구절은 9일 동안 바빴고, 하루는 한가하여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함을 말했고, 아래 두 구는 왕시어가 사는 문 앞엔 찬 시내가 있고, 산에는 백설이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골수를 차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여 모두 가는 먼지 한 점도 없을 뿐이라는 말이다.
* 劉長卿(유장경) : 오언시(五言詩)에 능하여 ‘오언장성(五言長城)’이라는 칭호를 듣던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자는 문방(文房)이다. 안후이성[安徽省] 선성(宣城) 출신이라는 설과 후베이성[河北省] 동남쪽에 위치했던 하간(河間)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젊었을 때는 뤄양[洛陽] 남쪽의 숭양(嵩陽)에서 살면서 청경우독(晴耕雨讀)하는 생활을 하였다. 733년(개원 21)에 진사가 되었다. 회서(淮西) 지방에 있는 악악(鄂岳)의 전운사유후(轉運使留後)의 직에 있을 때 악악관찰사(鄂岳觀察使) 오중유(吳仲儒)의 모함을 받아 육주사마(陸州司馬)로 좌천당하였다. 그러나 말년에는 수주자사(隨州剌史)를 지내 유수주(劉隨州)라고 불렸다. 강직한 성격에 오만한 면이 있어 시에 서명할 때는, 자기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자부심에서 성을 빼고 ‘장경(長卿)’이라고만 표기하였다. 시의 동일표현이 돋보이며 관리로서도 강직한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 자주 권력자의 뜻을 거스르는 언동을 했다. 주요 작품에는 《유수주시집(劉隨州詩集)》,《외집(外集)》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