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병든 노인을 만나서 지은 것이다. 이 노인의 모습이 늙고 병들어, 앉으면 두 무릎이 우뚝하여 턱 위로 지나치고, 미둥민둥 한 정수리는 구부리면 어깨에 실리니, 사방의 이웃 사람들은 다만 그의 성씨만 알고 나이가 얼마인지 알지 못할 뿐이다. 밭두둑의 여막에 누워서 참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와 벼와 가장의 이삭에 모인 것을 소리쳐 쫓아버리고, 또 ‘아무 날의 모임에 쓸 돈을 나의 자손이 어떻게 준비할까?’라고 걱정하는 말이다. 이 노인이 늙어 더욱 병이 깊은데도 오히려 이 세상에 있으면서 한 점 삶의 맥이 있는 동안 벼와 기장을 아끼고 社錢(사전)을 근심할 뿐이다.
* 盧允(노윤, 748-800) :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 사람으로, 자는 윤언(允言)이다. 당(唐), 대종(代宗), 대력(大歷) 6년(771)에 재상 원재(元載)의 추천으로 문향위(閿鄕尉)가 되었으며, 후에 왕진(王縉)의 추천으로 집현학사(集賢學士)가 되었으며, 비서성(秘書省), 교서랑(校書郞)을 거쳐 감찰어사(監察御史)에 제수된다. 섬부(陝府), 호조(戶曹), 하남(河南), 밀현(密縣)의 현령을 역임하였으나, 원재와 왕진이 죄를 짓자 연좌된다. 당(唐), 덕종(德宗) 때 검교호부랑중(檢校戶部郎中)에 올랐다. 대력10재자(大曆十才子)의 한 사람이며, 노호부시집(盧戶部詩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