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五侯(오후) : 후한 환제(後漢桓帝) 때 같은 날 후(侯)에 봉한 당형(唐衡), 선초(單超), 서황(徐璜), 구원(具瑗), 좌관(左悺) 등 권력을 독단한 다섯 명의 환관을 가리킨다. 五侯家(오후가)란 말은 황제의 비위를 맞추어 벼락출세한 소인배들을 일컫는다. 또 다른 일설은 한나라 성제 때 왕황후의 다섯 형제를 후로 봉하여서 특별한 은총을 주었으니, 천자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 신하인 王譚(왕담), 王商(왕상), 王立(왕립), 王根(왕근), 王逢(왕봉)을 가리킨다고 한다.
버드나무로 ‘꽃 화’ 자를 반영하고, 바람으로 ‘날 비’ 자를 반영하고, 또 ‘빗길 사’ 자를 바람에 붙였고, 동풍으로 ‘봄 춘’ 자를 반영하고, 궁궐의 버드나무로 한나라 궁궐에 복종하고 또 이 구절에서 특별히 한식을 이끌어내어 꾸미고 겹친 자취가 없다. 때가 비록 불을 금지했으나 궁중에서 촛불로 불을 나누어 전해준 것이다.
오후는 임금과 가까워 교만하고 귀한 분이라 촛불을 전해줌이 반드시 제일 먼저 미치니, 이에 푸른 연기가 날리어 모두 흩어져 오후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후는 한나라 말기에 환관이 권세를 맘대로 부리니, 환제가 선초, 서황, 구원, 좌관, 당형, 다섯 사람을 봉하여, 다섯 후가 같은 날에 후가 되니 이로부터 조정이 날로 어지러워졌다. 당나라가 숙종과 대종 이후로부터 환관의 권세가 중해져 정치가 쇠약해지고 어지러움이 한나라와 비슷하기 때문에 이 시로 풍자를 붙인 것이다.
* 韓翃(한굉) : 대력 십대재자중의 한 사람인 한굉은 당나라 때의 시인이며, 자는 군평(君平)이고, 하남성의 남양인이다. 천보(天寶) 13년(754년)에 진사에 급제하였고, 보응(寶應) 연간에 치청절도사(淄青節度使) 후희일(侯希逸) 막부에 종사하였고, 후에 후희일이 조정에 돌아가니, 장안에서 십 년간 한거하였다. 대력(766-779) 후기에 변송(汴宋)에 들아 가서, 선무절도사(宣武節度使) 막부에서 종사하였다. 건중(780-783) 초에 덕종이 그의 “춘성무처불비화” 시를 감상하고, 가부낭중(駕部郎中), 지제고(知制誥)에 임명되고, 관직은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