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세계 최고의 부호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와 그의 부인 맥켄지(Mackenzie Tuttle)가 갑자기 이혼을 발표했다. 주류 언론의 별다른 구설(口舌)이 없이 당시 금액으로 무려 380억불(43조원 상당) 가량의 재산 분할을 보고 세인(世人)들은 놀랐다. 당시 타불로이드판 주간지 내셔널 인콰이어러(National Inquirer)가 베이조스의 불륜(不倫) 사실을 4개월간 추적하여 보도하려고 하자 전격적(電擊的)으로 이혼을 발표한 것이었다. 그의 불륜상대는 폭스뉴스(Fox News) LA 지역방송국의 앵커 출신인 당시 49세 로렌 산체스(Lauren Sanchez)였다. 그녀는 헬리콥터 조종사로 항공촬영 전문회사 블랙옵스 에비에이션(Black Ops Aviation)을 운영하다가 베이조스의 우주기업인 블루 오리진(Blue Origin)에서 항공촬영을 하고 있다. 그녀는 첫 남편 NFL 미식축구 선수와 아이 하나를 낳고 이혼하였고, 두 번째 남편은 미디어그룹인 엔데버(Endeavour)의 회장으로 헐리우드의 거물이며, 베이조스와 10여년간 친구로 지내온 패트릭 화이트셀(Patrick Whitesell)이다. 둘 사이엔 아이가 둘이 있었다.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산체스에게 “꼭 껴안고 싶다(I want to hold you tight). 내 몸을 보여줄게(I will show you with my body).” 등등의 질펀한 문자메세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올해 초 영국의 가디안(Guardian)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조스의 불륜 폭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왕세자의 휴대폰이 해킹되어 터진 것으로 되어 있다. 왕세자는 베이조스와 자주 만나는 사이로 서로 왓츠앱(Whats)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악성(惡性) 파일이 전송되어 베이조스의 휴대폰이 털린 것으로 밝혔다. 당초 인콰이어러의 모회사인 어메리칸미디어(AMI)는 산체스의 오빠로부터 정보를 받았다고 했으나 베이조스의 정보보안 담당인 개빈 드 베커(Gavin de becker)의 분석에 따르면 해킹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검찰 조사 과정에서 오빠와 AMI간에 그들의 불륜 정보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계약 대가로 20만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베이조스가 CEO로 있는 워싱턴포스트(WP)가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의 글을 게재하고 사우디 왕정(王政)에 비판적인 보도가 이어지자 왕세자와 사이가 틀어지고 WP를 잠재울 카드가 필요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편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에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한편으로 WP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비판적 입장인데, AMI는 트럼프의 지지 입장이라서 AMI가 WP의 소유주인 베이조스를 공격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2021년 5월 11일에 블룸버그통신의 저널리스트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브래드 스톤(Brad Stone)이 <고삐 풀린 아마존 : 제프 베이조스와 세계 제국의 발명(Amazon Unbound : Jeff Bezos and the Invention of a Global Empire)>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의 출간 며칠 전인 5월 5일에 블룸버그 인터넷에 <제프 베이조스가 어떻게 내셔널 인콰이어러를 이겼는가(How Jeff Bazos Beat the National Inquirer)>라는 기사를 자신의 책을 발췌(拔萃)하여 게재하였다. 이 기사에 베이조스의 불륜과 얽힌 알려지지 않은 돈과 섹스, 권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의 억만장자들은 이런 문제를 폭풍이 지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방법을 택하는데 베이조스는 대중들에게 적극 공개하는 방법을 택했다. “벨트아래 셀카(Below the belt selfie)”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인콰이어러의 소유주인 AMI의 데이빗 펙커(David Pecker)와 트럼프 행정부의 관계로 지목하고, 이들이 WP를 향한 공격에 자신을 희생시킨다고 주장했다. 전부터 부인과는 이혼에 관하여 논의 중이고, 네 아이들과도 문제가 없다고 정면 대응한 것이다.
부인과 함께 세계 최고의 기부(寄附)를 이어가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의 이혼과 사생활 문제가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고 있다. 씨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Seattle Post Intelligencer)의 기자인 제임스 월러스(James Wallas)가 1997년에 집필한 <오버드라이브 : 빌 게이츠와 사이버공간 제어 경쟁(Overdrive : Bill Gates and the Race to Control Cyberspace)>이란 책에 게이츠의 방탕(放蕩)한 이력이 나온다. 그는 빌 게이츠와 MS의 성공 스토리인 <하드드라이브(Harddrive)>라는 책도 1993년에 출판했다. 2021년 5월 3일 이혼을 발표한 게이츠 부부는 현재 각각 캘리포니아의 골프클럽과 서인도 제도의 프랑스인 소유 칼리비니(Calibini)섬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섬의 임대료는 하루에 13만 2000달러(약 1억 5000만 원) 정도란다. 여러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됐다. 부인은 2019년부터 변호사를 통해 이혼 준비에 들어갔고, 게이츠는 지인들에게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혼의 명확한 사유에 대한 부인의 증언이 없지만 게이츠의 여성 편력(遍歷)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월러스는 <오버드라이브>에서 게이츠의 난잡(亂雜)한 생활은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게이츠는 멜린다(Melinda Gates)와 만나기 시작한 후에도 스트립 댄서들과 함께 수영장 알몸 파티를 열기도 했고, 멜린다도 그의 여성편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보스턴의 유명한 환락가(歡樂街)를 들락거리며, 그곳에서 포르노쇼, 스트립쇼, 매춘부들을 상대했다. 게이츠는 또한 연상의 전 여자친구였던 벤처사업가 앤 윈블래드(Ann Winblad)와는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만났다. 멜린다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면서 노쓰 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에 있는 윈블래드의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가 폭로한 게이츠의 불미(不美)스러운 행위는 MS와 자선재단의 직원과 관련된 것이다. 2006년, 익명(匿名)의 MS 여직원이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회장인 게이츠로부터 저녁 데이트 신청 이메일을 받았다고 털어 놓았다. 그 외에도 사내 여직원들에게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여러 차례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뉴욕 출장에 동행했던 게이츠 재단의 한 여직원에게 낮은 목소리로 만나서 저녁을 먹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게이츠의 이런 행동은 직원들 사이에서 그의 사생활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 이 밖에도 게이츠가 측근인 재단직원의 성추행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부간에 한 차례 갈등을 빚었다.
한편 게이츠는 뉴욕의 억만장자이자 아동 성범죄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던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과 친분을 유지했다. 그는 10대 소녀들을 성노예로 부리면서 정재계 거물들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유죄를 선고받고 교도소에 복역하던 중 201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게이츠가 엡스타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11년이고, 당시 엡스타인은 이미 미성년자 성관계 청탁(請託)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후였다. 그들은 그 후 수차례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은 엡스타인의 타운하우스에서 이뤄졌고,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TED 컨퍼런스에서 둘의 비밀스런 대화 모습이 목격된 후에 엡스타인의 뉴욕 저택을 한 차례 방문했다. 2013년에는 엡스타인의 개인 전용기를 타고 플로리다 팜비치까지 비행하기도 했었다. 이 전용기는 엡스타인이 어린 소녀들을 실어 나르는 데 사용된 비행기로 알려져 있었다. 자선사업가인 멜린다는 남편이 성범죄자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넘어 분노했다.
서구에서 억만장자들의 여성편력은 아마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가 제일 화려했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 해운업의 양대 산맥으로 경쟁자인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Stavros Niarchos)와 함께 사업과 여성편력에 경쟁적으로 몰두했다. 원래 해운업 부호(富豪)인 스타브로스 리바노스(Stavros Rivanos)는 첫째 딸 유지니아 리바노스를 니아르코스와 결혼시키고, 둘째딸 아시나 리바노스를 오나시스와 결혼시켜서 둘은 동서지간(同壻之間)이었다. 오나시스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첫째 부인과 이혼하고 칼라스와는 결혼할듯하다 말았다. 그리고는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의 여동생인 캘로라인 리 래드윌(Caloline Lee Radwill)을 사귀면서 언니인 재클린을 소개 받는다. 케네디가 암살을 당하자 미망인(未亡人)이 된 재클린을 자기의 선박에 초대했다. 그는 보라는 듯이 칼라스와 어울리면서 재클린에게 무관심을 보임으로서 질투심을 유발하여 그녀와 결혼에 골인한다. 케네디가 암살당할 때 재클린이 “Oh No!”라고 했듯이 그녀가 오나시스와 결혼 발표를 하자 미국 시민들이 “Oh No!”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오나시스는 결혼 후에도 칼라스와 재클린의 여동생과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 등 그녀의 속을 썩였다. 그의 동서(同壻)이자 경쟁자인 니아르코스 또한 만만치 않았다. 첫 부인과 이혼하고 해군제독의 딸,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장손녀 샬롯 포드(Charlotte Ford)와도 결혼 하였고, 처제이자 오나시스의 부인이었던 아시나와 다섯 번째 결혼을 하였다. 그 둘은 초호화 대형 요트의 건조(建造) 경쟁도 요란했다. 오나시스가 100m길이의 ‘크리스티나’를 건조하자 니아르코스는 117m의 ‘아틀란티스’를 만들었다.
근래에 와서 IT업계의 대부호들의 여성 편력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2015년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부인 앤 워지스키(Ann Wojcicki)와 결혼 8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그는 사내 직원인 아맨다 로젠버그(Amanda Rosenberg)와 사내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여직원은 구글 글라스 마케팅 매니저인 휴고 바라(Hugo Barra) 부사장의 연인이었다. 그녀는 8개월간 양다리를 걸쳤다고 한다. 브린의 부인도 유전자 벤처기업 23nMe의 창업자이고 언니인 수잔 보이치키는 구글의 자회사 유튜브의 CEO이다. 휴고 바라는 이일로 인해 구글을 퇴사하고 중국의 샤오미로 이적했다. 브린은 불륜직원 로젠버그와 헤어지고 실리콘밸리 변호사인 니콜 섀넌(Nicole Shannon)과 교제하고 있다. 다른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도 야후의 전 CEO인 머리사 메이어(Marrisa Meyer)가 구글에 재직 중일 때 그녀와 사내 불륜을 저질렀다. 테슬라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2000년 캐나다 출신 소설가 저스틴 머스크(Justine Musk)와 결혼하여 5명의 아이를 낳고 이혼하였다. 당시 그는 영국 배우 털룰라 라일리(Talulah Riley)와 내연(內緣)관계 였다. 다시 그녀와 결혼과 이혼을 두 번씩 반복한 후 17년 연하의 캐나다 출신 가수 클레어 엘리스 부셰(Claire Elise Boucher) 예명(藝名)은 그라임스(Grimes)와 동거중이다.
우리나라의 재벌 총수들은 어떤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삼성과 현대그룹의 창업주들은 지금 모두 작고하였지만 이들의 여성편력도 못지않다고 알려졌다. 이병철회장은 <호암자전(湖巖自傳)>에서 4남 6녀를 두었다고 밝혔다. 본처 박두을과 3남4녀, 대구의 박소저와 1녀, 일본인 구로다와 1남1녀이다. 그 외에 소문으로만 들리는 박소진이라는 아이 셋 달린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모두 전 남편의 소생이고 이회장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훗날 임정제가 본인의 어머니와 이회장과의 관계를 쓴 <혜화동 사모님>이 도서출판 소정에서 발행되어 그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현대의 정주영회장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그는 부인 변중석과의 사이에 공식적으로 8남1녀를 두었다. 그가 작고하기 전에 미국에 거주하던 전 탈렌트 김경희가 두 딸을 데리고 와서 친자(親子) 확인 소송을 하여 친자로 확인받아서 8남 3녀로 확정되었다. 그 외에도 8명의 아들 중 한둘은 배다른 아들이라는 소문도 돌았고, 영화배우·탈렌트·가수 등과 염문(艶聞)을 뿌리고 돈으로 입막음을 했다는 이런 저런 소문들이 많았다. 김경희와 정회장의 만남과 두 딸에 대한 이야기는 2014년 7월호 <우먼센스>에 자세히 실려 있다. 정회장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여인은 세 사람이라고 한다. 첫째가 헌신적인 내조와 사랑을 다한 “살아있는 천사” 본처 변중석여사이다. 집안 살림과 핏덩이 자식을 데려와도 군말 없이 키워냈다. 두 번째가 정회장이 사업자금으로 어려울 때 번번이 큰 규모로 도움을 주고 빚을 감당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요정마담이었다. 세 번째는 강원도 통천의 고향마을 부잣집 딸이었다. 그녀에 대한 짝사랑의 힘으로 정회장은 삶을 성공할 수 있었고, 그 보답을 위해 황소를 끌고 대북사업을 실행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도 세 명의 여인을 두었다. 첫 부인 노순화와의 사이에 1녀, 둘째 부인 일본인 시게미쓰 하쓰코와 2남, 셋째 여인 서미경과 1녀 등 4명을 두었다. 서미경은 미스롯데 선발대회 출신으로 영화배우 겸 롯데껌 전속 모델로서 신회장과 39세 정도의 나이 차이에도 그의 숨은 여인으로 살아왔다. 검찰의 롯데 비리 수사 당시에 그녀와 딸에게 증여된 7천억원 정도의 지분과 롯데홀딩스 증여세 298억원 탈세, 공짜급여 508억원, 시네마 매점 770억원 부당이득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버리지 않는다는 미덕을 지켜서 어지간해서는 본처와 이혼하지 않고 남몰래 내연녀를 두는 정도 였다. 동아제약의 강신호회장도 본처를 두고 있는 상태에서 내연녀와 생활을 하다가 본처와 황혼이혼을 하였다.
세월이 바뀌어 창업주의 2세들이 경영을 맡았지만 그들의 삶도 굴곡진 사례가 많고 조강지처를 내치지 않던 사례는 드물어졌다. 동아그룹의 최원석 회장은 세 여인과 결혼을 했다. 처음에 배우 김혜정과 1남1녀를 두었고, 두 번째 가수 배인순과 3남1녀를 낳았다. 그리고 아나운서 장은영과 염문을 뿌리다가 1999년에 결혼했다. 그는 여성편력도 그렇지만 그룹이 해체당하고, 알짜기업이었던 대한통운을 빼앗기는 말년의 불운을 겼고 있다. 2003년에 배인순이 쓴 자전적 소설 <30년만에 부르는 커피 한잔>이 세인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도 내연녀와 혼외자(婚外子)가 있다고 커밍아웃해서 세간의 눈총을 받으며 부인과 이혼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삼성의 이건희회장도 여성편력에 대한 세간의 소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과거 ‘엘리베이터 걸’ 이라던가, 영문이니셜 MK로 불리던 수행비서 박모씨 등이 세인들의 입소문으로 오르내렸다. 말년에는 뉴스타파가 보도한 안가(安家)에서의 젊은 여성들의 출장 안마 동영상으로 시끄러웠다. 이유야 어떻든 삼성의 이재용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이혼하였고, KCC글라스 정몽익회장이 내연녀와 살면서 축출이혼(逐出離婚) 소송을 진행 중이다.
기업 총수들이 재산을 불리기 위해 탈세나 비자금 조성으로 입방아에 오르는 건 애교 수준인데 반해, 여성편력 이외에도 사내외에서의 ‘갑질’이나 일탈행위를 일으켜 자주 구설수(口舌數)에 오르기도 했다. 한화의 김승연회장과 아들 김동선의 폭행사건, 한진 조현아·조현민·이명희 등의 땅콩회항·물컵갑질·밀수·폭언 폭행 등 사건이 있었다. 대마초나 마약 관련으로 SK가(家) 3세 최영근, 현대가 3세 정현선, CJ가 3세 이선호, SPC가 3세 허희수 등이 있고, 운전기사 폭언 폭행 갑질 사건은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 종근당 이장한회장, 현대 비앤지스틸의 정일선사장, 조선일보 방상훈 손녀,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 항공기 기내 갑질은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야구방망이 매 값 폭행의 SK가 최철원 대표가 연루되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요즘 재벌 2~3세들이나 신흥 졸부들의 엽색행각(獵色行脚)은 몇몇 마음 맞는 그룹을 만들어 강남의 전용바(Private Bar)을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연예인 조달을 위해 채홍사(採紅使)를 두는데 일전에 전북 남원에 한적한 별장을 자주 이용하던 모(謀)씨와 채홍사가 불미스럽게 결별을 해서 폭탄이 터질 수 도 있다고 한다. 5천만명의 인구에 차지하는 재벌가의 식구수가 얼마나 된다고 그들이 저지른 일탈행위(逸脫行爲)가 끊이지 않고 미디어를 장식하는지 한심스럽다. 그들의 일탈행위가 최근에 들어와 더 잦아져서 그런가? 객관적인 통계 수치가 없다보니 비교 불가다. 다만 요즘은을(乙)의 입장인 일반 국민들의 시민의식과 발달한 SNS 정보의 확장성으로 예전처럼 그들의 일탈이 묻히지 않고 드러나기 쉬운 환경이다.
1995년 4월 14일 삼성 이건희 회장이 북경의 특파원 간담회 자리에서 “우리 정치력은 사류, 행정력은 삼류, 기업 경쟁력은 이류 수준이다.”라고 일갈(一喝)했던 적이 있다. 당시 정치권은 발칵 뒤집힐 것 같았지만 그런 데로 규제 개혁의 물꼬를 터서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기업 총수들의 위와 같은 일탈행위가 계속 이어지면 일반 국민들도 위의 발언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이런 행위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창업부터 지금까지 오너 경영 형태이며, 무늬만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경영권은 왕조 권력처럼 세습(世襲)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총수 일가는 금력(金力)에 의한 철옹성(鐵甕城)이 구축되고 그 속에서 나고 자란 2~3세들은 금수저로서 ‘내가 누군데?’라는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기 일쑤다. 이런 의식이 자만심을 키우고 돈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그릇된 행동을 유도한다. 권불십년(權不十年) 부불삼대(富不三代)라지만 돈은 세습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일탈행위에 대한 처벌과 집행의 공정성이 미흡하다. 유전무죄(有錢無罪)와 힘이 곧 정의(Might makes right)의 사례가 반복된다. 과거 비자금 사건이나 뇌물, 횡령, 배임, 탈세 등 대규모 사건에도 불구하고 낮은 형량과 빠른 형 집행정지 또는 사면으로 처벌과 집행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된 사례가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외화 획득과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라는 문구와 함께 처벌을 감해 주었다. 돈으로 권력, 언론, 사법을 적당히 무마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기업총수의 처벌이 기업경쟁력이나 기업가치 하락에 악영향을 미칠까? 경제개혁연구소가 2000년부터 18년간 유죄판결은 받은 총수들의 35개 기업집단의 319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기업가치를 실증 분석한 결과가 있다. 결과는 실형 선고와 기업가치와는 무관한 것으로 나왔다. 오히려 집행유예로 풀려날 경우 유의미(有意味)한 하락 영향이 있었다. 오너 부재 시 대규모 투자 결정을 전문경영인이 할 수 있느냐를 두고 이야기가 있지만 의사결정을 못할 정도의 격리는 아니라고 본다.
플라톤은 그의 마지막 저작인 <법률(Nomoi)>에서 빈부의 차이가 분쟁이나 분열을 초래하기 때문에 빈부의 한계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상(假想) 국가인 마그네시아(Magnesia)는 모든 사람들에게 땅과 집을 똑같이 나눠주고, 누구든 이 기본적인 할당분의 4배가 넘는 부를 축적하는 것은 법률로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발상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부를 성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대물림으로 인한 부의 편중은 언더도그마(Underdogma) 상황의 집단화된 사회적 약자의 눈에는 불합리하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도 열배 부자는 시기 질투하고, 백배 부자는 두려워하고, 천배 부자에게는 그의 노예가 되고자 한다고 했다. 그래서 많이 가진 금수저 사람들의 사회적 기여를 바라는 것이다.
성인(聖人)인 공자도 부의 축적을 부정하지 않았다. 견리사의(見利思義)라고 의롭게 부를 추구하라고 했다. 또한 부이무교(富而無驕) 보다 부이호례(富而好禮) 즉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것 보다 부유하면서 예(禮)를 다하는 것이 최고라고 했다. 일찍이 일본 경제를 설계한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營一)는 한 손에 논어(論語) 다른 손에 주판(珠板)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우주만물이 일체 공(空)이라고 설법(說法)한 석가모니도 본인이 가장 오래 설법한 기원정사란 절을 억만금을 들여 지어준 부자 신도 수닷타(須達 : 수달) 장자를 가장 아꼈다. 또한 별역잡아함경(別譯雜阿含經)에는 벌이 온갖 꽃을 채집하듯이 재물을 모으고,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도 재물을 가지면 한량없는 복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 석가는 아마 수도승이 아니면 도덕적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부를 축적하는 건 무방하다고 본 것이다. 성경(聖經)에도 잠언 13장 11절에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수고하여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 가느니라.”라고 했고, 예레미야 17장 11절에도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鷓鴣)새가 남의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고 했다. 예수 스스로도 처형당한 후에 독수리의 밥이 될 처지였다. 그럼에도 요한복음 19장의 기록을 보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처지인 부자들의 도움으로 경건하게 장례를 치렀다. 부자 요셉이 총독 빌라도에게 부탁해서 시신을 수습하고, 바리새인인 니고데모와 함께 장례를 치른 것이다. 예수의 가난한 제자와 신자들은 줄행랑치기 바빴다.
돈은 쓰기에 따라서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춘추전국 시대 월나라의 대부 범려(范蠡)가 월왕 구천(句踐)을 도와 오나라를 평정한 후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월나라를 떠났다. 제나라로 가서 이름을 치이자피(鴟夷子皮)로 바꾸고 거부(巨富)가 되었다. 사람들이 알아보자 모든 재물을 나누어 주고, 다시 도(陶) 지방으로 가서 도주공이라 하며 또 큰돈을 모았다. 그 시절 둘째 아들이 초나라에서 죄를 지어 사형 당할 처지였다. 막내아들에게 천금을 들고 가서 형을 구해 오라고 하자 맏아들이 굳이 자기가 가겠다고 우겼다. 그러나 맏아들은 아버지와 고생하며 재물을 모았기 때문에 돈을 아끼다가 동생을 못 구하고 시신으로 돌아왔다. 천금지자 불사어시(千金之者 不死於市) 즉 천금을 가진 자의 아들은 저자거리에서 죽지 않는다지만 맏아들이 돈을 잘못 써서 자기 동생을 못 살렸다고 웃었다는 전설이 있다.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대한 귀감(龜鑑)이 바로 경주 최부자 집안이다. 입향조(入鄕祖) 잠와(潛窩) 최진립(崔震立)은 1594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정유재란에 무공을 세워 벼슬이 공조참판과 삼도 수군통제사를 지낸 후 경주에 칩거하다가 병자호란 때 다시 출병하여 전사했다. 그의 아들 최동량 때부터 12대에 걸쳐 300년 넘게 부자로서 모범을 실천해온 것이다. 그 집안은 대대로 스스로의 몸가짐을 바로 하는 수신원칙인 육연(六然)을 기본으로 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행동지침이며 가훈인 육훈(六訓)을 따랐다. 육연(六然)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처초연(⾃處超然 : 혼자 있을 때 초연하게 지내라)
대인애연(對⼈靄然 : 다른 사람을 온화하게 대하라)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내라)
유사감연(有事敢然 : 유사시에는 과감하게 대처하라)
득의담연(得意淡然 : 뜻을 얻었을 때 담담하게 행동하라)
실의태연(失意泰然 : 실의에 빠져도 태연히 행동하라)
가훈인 육훈(六訓)은 아래와 같다.
1.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2.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3.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4.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5.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6.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이러한 마음으로 굳건히 모범을 보이니 부불삼대(富不三代)가 아니라 삼백년을 존경받으며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요즘의 재벌이나 신흥 부자들이 새겨볼 만한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