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운사 Jul 04. 2024

107> 題葉道士山房(제섭도사산방)

漢詩工夫(240622)

題葉道士山房(제섭도사산방) / 섭도사의 산방에서 짓다

 - 顧況(고황, 逋翁 포옹)


水邊楊柳赤欄橋

수변양류적란교

●○○●●○◎

물가 버드나무 밑엔 붉은 난간 다리고


洞裏神仙碧玉簫

동리신선벽옥소

●●○○●●◎

골짜기 속의 신선은 푸른 옥퉁소 부네


近得麻姑書信否

근득마고서신부

●●○○○●●

근래에 마고의 편지는 못 받았는지


潯陽江上不通潮

심양강상불통조

○○○●●○◎

심양강 강가는 조수가 통하지 않았으니

* 麻姑(마고) : 옛적 중국의 선녀 이름.

此(차)는 題道士山房也(제도사산방야)라. 道士所居之地(도사소거지지)에 水邊(수변)에 多種楊柳(다종양류)하고 楊柳之下(양류지하)에 架橋而赤欄(가교이적란)을 端於兩邊(단어양변)하고 洞裏(동리)에 已有神仙(이유신선)하고 神仙之吹(신선지취)는 造簫而碧玉(조소이벽옥)으로 刻以爲之(각이위지)라. 麻姑之書信(마고지서신)을 近或得之否耶(근혹득지부야)아. 潯陽江上(심양강상)에 不通潮水則通信(불통조수즉통신)을 不可得也(불가득야)리라. 上二句(상이구)는 言所渡之橋(언소도지교)에 赤欄之飾也(적란지식야)오. 下二句(하이구)는 言麻姑書信(언마고서신)은 潯陽不通潮則不知得與否也(심양불통조즉부지득여부야)로다.

이 시는 도사의 산방에 대한 글이다. 도사가 거처하는 곳의 물가에 버드나무를 많이 심었고, 버드나무 아래의 다리는 붉은 난간을 양변에 바로 세우고, 골짜기 안에는 신선이 있어서 그 신선이 만들어 부는 퉁소는 벽옥을 조각하여 만든 것이다. 마고의 편지를 근래에 혹시 얻지 못하였을까? 심양 강가에 조수가 통하지 않아 통신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위의 두 구절은 건너는 다리에 붉은 난간이 꾸며졌다는 말을 하였고, 아래 두 구절은 마고의 편지를 심양강에 조수가 통하지 않아 볼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

고황(顧況) : 자는 포옹(逋翁). 호는 화양진일(華陽真逸). 소주(蘇州) 해염현(海鹽縣 지금은 절강성 해염현) 출신이다. 관료, 시인, 화가, 감상가(鑒賞家) 등으로 이름이 높았다. 숙종(肅宗) 지덕(至德) 2년(757) 진사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郎)이 되었으며, 후에 대리사직(大理司直)이 되었다. 정원(貞元) 2년(787)에는 진해군(鎮海軍) 절도판관(節度判官)으로 세금 선박의 운송을 담당하다 재상 이필(李泌)의 추천으로 저작좌랑(著作佐郎)이 되었다. 후에 조정의 권세가를 풍자하는 시를 써서 요주사호참군(饒州司戶參軍)으로 좌천되었다. 천성이 해학적이었던 고황은 폄적되어 가는 길에 소주를 지나면서 위응물(韋應物)과도 수창(酬唱)하였다. 후에 모산(茅山)에 은거하면서 연금술을 단련하였으며, 94세에 집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두보(杜甫)의 현실주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신악부(新樂府)운동의 선구(先驅)라고 평가된다.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중시하였다. 당시의 시대적인 폐단을 폭로하고 풍자하는 <건(囝)> <공자행(公子行)> 등의 시를 썼다. 이 외에도 색조가 명랑한 즉흥 서정 소시(小詩)를 쓰기도 했다. 가행체(歌行體)와 절구(絶句)를 좋아하였으며 육언(六言)과 예스럽고 소박한 사언(四言)체를 쓰기도 했다. 시집으로는 《화양집(華陽集)》 20권이 있다. 산수화에도 뛰어났으며, 《화평(畫評)》, 《문론(文論)》 등의 저작이 있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대표작으로는 <낙양조춘(洛陽早春)>이 꼽힌다.

매거진의 이전글 106> 移家別湖上亭(이가별호상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