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 한 자로 시상을 일으키는 방법이니, 이로 호상정이 좋음을 말했고, 또 이 봄바람이 좋음을 말했고, 다시 이는 의중에 있는 사람이 좋음을 은연중에 말한 것이다. 이 ‘춘풍’이란 호상정을 가리키며 거듭 봄바람을 찬미한 것이다. 호상정은 그 사람이 거처하는 곳인데 봄바람 부니 그 사람이 정자 안에 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래에 말한 버들가지, 등나무 덩굴, 꾀꼬리가 함께 봄바람을 따라 맥이 발동한 것이다. ‘호상정’ 이 세 글자의 말을 냈으니 그 사람을 밝게 찬미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머물러 사는 식구를 거두고는 도리어 다만 정자 밖의 물건을 말하여 거듭 호상정을 말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하였다. ‘계이정’은 이 정자가 나의 정을 맨 것이 아니라 이 정자 밖의 춘풍 속의 버들가지나 등나무 덩굴이 나의 이별의 감정을 얽매였다는 말이다.
‘오래 머물러 온전히 서로 안다’는 것은 꾀꼬리와 내가 오래 머묾으로 인하여 반대로 나를 알고 나도 꾀꼬리를 알아 쌍방이 완전히 서로 알게 된 것이다. ‘욕별’은 ‘지금 내가 여기를 이별하고 떠나가려 한다.’는 말과 같다. ‘자주 사오 번씩 소리 내어 운다.’는 것은 꾀꼬리가 차마 나와 이별을 참지 못하여 이에 자주자주 사오 번씩 소리 내어 울면서 서로 전송하니, 그 실은 꾀꼬리가 등나무와 버드나무에게 가는 곳을 말해주니, 모두 호상정이 좋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 호상정이 좋은 곳이라는 말은 바로 의중에 있는 사람이 좋아하는 곳이라는 말이니. 구절구절 미루어 펼치고, 구절구절 연관 지음이 절묘하다.
* 戎昱(융욱) : 당나라 형남(荊南, 지금의 호북湖北 강릉현江陵縣 부근) 사람.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응시했지만 낙방하고 일찍이 안진경(顔眞卿)의 막료를 지냈다. 위백옥(衛伯玉)이 형남에 주둔했을 때 종사(從事)를 맡았다. 덕종(德宗) 건중(建中) 연간 어사대(御史臺)로 보직을 받았는데 일이 생겨 진주자사(辰州刺史)로 강등되었다. 나중에 다시 건주자사(虔州刺史)가 되었다. 문집 5권이 있었지만 없어졌고, 명나라 때 집성된 『융욱시집(戎昱詩集)』이 있다. 『전당시(全唐詩)』에 시가 1권으로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