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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Jul 06. 2024

108> 宿昭應(숙소응) / 소응에 묵으며

漢詩工夫(240622)

宿昭應(숙소응) / 소응에 묵으며

 - 顧況(고황)


武帝祈靈太乙壇

무제기령태을단

●●○○●●◎

한 무제가 태을단에서 신령님께 빌 적에


新豊樹色繞千官

신풍수색요천관

○○●●●○◎

신풍지방의 나무 빛 만조백관을 둘렀네.


那知今夜長生殿

나지금야장생전

○○○●●○●

어찌 알랴? 오늘밤 장생전이


獨閉空山月影寒

독폐공산월영한

●●○○●●◎

홀로 닫혀 빈산에 달그림자만 찬 것을.

* 以武帝(이무제)로 比於唐皇(비어당황)하다. 殿(전)은 唐所建(당소건)이라. / 한 무제로서 당 황제를 비유하고, 전각은 당의 전각이다.

* 昭應(소응) : 당나라 때 지명이름으로 지금의 섬서성(陜西省) 시안(西安) 남쪽에 위치한 임동현(臨潼縣)으로 여산(驪山) 온천(溫泉) 화청지(華淸池)가 있다. 사람들이 이곳의 온천을 이용한 것은 약 6,000년 전부터라고 하며 약 3,000년 전 서주(西周)의 유왕(幽王)이 이곳에 궁을 지으면서 역대 왕실의 보양지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진(秦) 나라 시황제(始皇帝), 한(漢) 나라 무제(武帝) 등 여러 황제들도 별궁을 두고 이용했다고 한다. 특히 화청지는 당(唐) 현종(玄宗)과 양귀비가 생활했다는 당나라 왕실 원림으로 유명하다. 화청지라는 이름도 당 현종이 이곳에 궁을 만들어 화청궁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서 유래한다. 현종은 이곳에서 양귀비와 함께 겨울을 지냈다고 한다.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에도 화청지가 등장하는데 ‘봄날 쌀쌀한데 여산 화청궁에서 목욕하니 온천물은 매끄러이 고운 살갗 씻었네’라고 노래하였다. 이 구절 외에도 화청지는 백거이의 시에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만큼 현종과 양귀비는 이곳에 자주 발걸음하였다.

* 武帝(무제) : 한(漢) 나라 황제 유철(劉徹 BC156~70년)을 가리키며, 여기선 당(唐) 현종(玄宗)(685~762)을 비견(比肩)하여 읊었다.

* 太乙壇(태을단) : 하늘 최고의 신인 태을신(太乙神) 또는 태일신(太一神)을 모신 단(壇)으로 섬서성(陝西省) 임동현(臨潼縣) 여산(驪山)에 있다.

* 新豊(신풍) : 한(漢) 나라 때 지명으로 당나라 때의 소응(昭應)과 같은 지역이다.

* 長生殿(장생전) : 수많은 에피소드를 낳은 당(唐)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가 사랑을 나눈 궁전을 가리킨다.

此(차)는 漢武帝祈靈于太乙壇之時(한무제기령우태을단지시)에 新豐樹色(신풍수색)이 繞於千官而威儀之盛(요어천관이위의지성)과 劒佩之聲(검패지성)이 當年天子之氣勢矣(당년천자지기세의)러니, 今則長生之殿(금즉장생지전)이 獨閉於空山而明月之影(독폐어공산이명월지영)이 一是寒冷(일시한랭)하니 豈非愴然者耶(기비창연자야)아?

이 시는 한 무제가 태을단에서 신에게 빌 때에는 신풍의 나무 빛이 많은 관리를 둘러싸고 있는 중에 위엄의 성대함과 칼찬 병사의 소리가 당시 천자의 기세였는데, 지금은 장생전이 홀로 빈산에 닫혀있어 밝은 달그림자가 한결같이 한랭하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고황(顧況) : 자는 포옹(逋翁). 호는 화양진일(華陽真逸). 소주(蘇州) 해염현(海鹽縣 지금은 절강성 해염현) 출신이다. 관료, 시인, 화가, 감상가(鑒賞家) 등으로 이름이 높았다. 숙종(肅宗) 지덕(至德) 2년(757) 진사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郎)이 되었으며, 후에 대리사직(大理司直)이 되었다. 정원(貞元) 2년(787)에는 진해군(鎮海軍) 절도판관(節度判官)으로 세금 선박의 운송을 담당하다 재상 이필(李泌)의 추천으로 저작좌랑(著作佐郎)이 되었다. 후에 조정의 권세가를 풍자하는 시를 써서 요주사호참군(饒州司戶參軍)으로 좌천되었다. 천성이 해학적이었던 고황은 폄적되어 가는 길에 소주를 지나면서 위응물(韋應物)과도 수창(酬唱)하였다. 후에 모산(茅山)에 은거하면서 연금술을 단련하였으며, 94세에 집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두보(杜甫)의 현실주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신악부(新樂府)운동의 선구(先驅)라고 평가된다.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중시하였다. 당시의 시대적인 폐단을 폭로하고 풍자하는 <건(囝)> <공자행(公子行)> 등의 시를 썼다. 이 외에도 색조가 명랑한 즉흥 서정 소시(小詩)를 쓰기도 했다. 가행체(歌行體)와 절구(絶句)를 좋아하였으며 육언(六言)과 예스럽고 소박한 사언(四言)체를 쓰기도 했다. 시집으로는 《화양집(華陽集)》 20권이 있다. 산수화에도 뛰어났으며, 《화평(畫評)》, 《문론(文論)》 등의 저작이 있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대표작으로는 <낙양조춘(洛陽早春)>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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