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밝은 밤에 금가 소리가 슬프고 처량하여 변방에 있는 객이 근심스러운 잠자리에 몽롱한 가운데에도 깨닫고 먼저 알아 집안의 연연한 정이 마음속에 배회하는 것이다. 전날엔 관산월색이 두루 선우의 성에 비추더니 오늘 중원의 땅에서도 문득 관산월을 불 줄 아는 것이다. 위의 두 구절은 달빛 아래 어디선가 슬픈 피리소리가 들려오니, 변방의 객이 또한 꿈에 먼저 깨달아 알았다는 말을 하였고, 아래 두 구절은 이 금가 소리는 선우성의 달밤 관산에서 부는 것인데, 오늘 뜻하지 않게 중원의 변주의 땅에서 들었다는 말을 했다.
* 武元衡(무원형) : 당나라의 인물. 자는 백창(伯蒼). 출신지는 병주 문수이고 783년에 진사가 되었고, 여러 차례 옮겨 감찰어사가 되었다가 후에 화원현령이 되었으며, 경사 근처에서 진군독장이 자신의 공을 믿고 백성들을 어지럽히자 병을 핑계로 벼슬을 떠났다. 덕종의 부름을 받고 비부원외랑이 되었다가 1년 후에는 좌사낭중으로 옮겼고, 804년에는 어사중승이 되었다. 이어서 좌서자, 산릉의장사를 역임했으며, 왕숙문의 사람됨을 가벼이 여겨 거칠게 대우했고 왕숙문이 자신의 편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이를 거절해 805년 3월에 우서자로 좌천되었다. 헌종이 즉위하자 다시 어사중승에 임명되었다가 이부시랑을 지내면서 문하시랑평장사가 되어 호부의 일을 겸했다가 807년에 검남서천절도사에 임명되었다. 검남서천절도사를 지내자 여러 가지 규제를 풀어주고 자신에게 엄격하면서 백성들에게는 관대한 정치를 했다. 813년에는 지정사가 되었고 814년 11월에 이길보가 죽자 무원형이 군대의 일을 맡게 되었다. 무원형은 반란군에 대한 토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815년 6월 3일에 입궐하려다가 습격을 받고 왼쪽 넓적다리를 맞았고, 적에게 말을 붙잡혀 동남쪽 10여 보를 가서 머리뼈를 맞고 살해당했다. 무원형의 암살 배후를 구당서에는 왕승종이 보낸 자들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나왔지만, 신당서에 따르면 이사도가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한 것으로 보인다. 시를 짓는 것에 뛰어나 사람들은 그에 대해 벼슬이 높아져서 시에 뛰어난 자는 오직 무원형일 뿐이라고 했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