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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凉州詞(양주사) - 2

금삿갓의 漢詩工夫(240729)

by 금삿갓

凉州詞(양주사) - 2

- 張籍(장적) * 국내에 일부 劉禹錫(유우석) 작으로 표기한 것이 있으나 중국 서적에는 장적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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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林關裏水東流

봉림관리수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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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관鳳林關) 안의 물은 동으로 흐르고


白葦黃楡六十秋

백위황유육십추

●●○○●●◎

흰 풀과 누런 느릅나무는 60년 세월이네.


邊將皆承主恩澤

변장개승주은택

○●○○●○●

변방의 장수는 모두 임금의 은혜를 받았는데


無人解道取凉州

무인해도취량주

○○●●●○◎

아무도 양주 찾을 방법을 아는 이 없구나.

* 凉州(양주) : 당나라 시대 농우도(隴右道)에 속했던 주군(州郡)으로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무위(武威)를 말한다. 당(唐) 대종(代宗 : 재위 762-779) 재위 시에 토번에게 함락되었다.

* 鳳林關(봉림관) : 지금의 간쑤성(甘肅省) 린샤현(臨夏縣) 동북 황하(黃河) 남안(南岸)에 있다. 신당서·지리지에 “허저우(河州) 펑린현(鳳林縣) 북쪽에 봉림관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책에 봉리궐(鳳林闕)로 표기된 것이 있다.

* 白葦(백위) : 다른 책에는 백초(白草)로 표기된 것도 있다. 백위는 중국 북부에서 자라는 풀로 잡초와 같으며 건조하고 익으면 흰색으로 소와 양이 즐겨 먹는다.

* 黃楡(황유) : 나무 이름. 껍질은 황갈색이고, 잎과 열매는 모두 먹을 수 있다.

* 六十秋(육십추) : 안녹산의 난 이후에 토번이 그쪽 땅을 점령한 이래 시인이 시를 쓸 때까지 회복을 못하고 걸린 세월이 60년이란 뜻이다.

* 解道(해도) : 아는 것. 중국어로 어떤 사물에 대한 이해나 숙달을 묘사할 때 쓰인다.

樂府(악부)에 涼州宮詞曲(양주궁사곡)은 開元中西凉府都督郭之運所進也(개원중서량부도독곽지운소진야)라하고, 西域記(서역기)에 龜玆國王(구자왕국)이 與臣庶知樂者(여신서지악자)로 於大山(어대산)에 閒聽風水之聲(한청풍수지성)하고 約節成音(약절성음)이러니 後翻入中國(후번입중국)하야 如伊州凉州甘州(여지주양주감주)가 皆龜玆之境也(개구자지경야)라. 一云涼州(일운양주)는 卽漢月支國(즉한월지국)이니 武帝置酒泉郡武威張掖(무제치주천군무위장액)이요. 後魏曰涼州(후위왈양주)니 玉門關(옥문관)이 卽在此處(즉재차처)라하더라.

악부의 양주궁 노랫말은 개원(당현종) 중 서양부 도독 곽지운이 올린 것이다. <서역기>에 구자국 왕이 여러 신하들과 음악을 아는 자들과 더불어 대산에서 한가히 바람소리를 듣고 박자를 요약하여 소리를 만들었는데, 후에 뒤집어 중국에 들어가니 이주, 양주, 감주 같은 경우가 모두 구자국의 경내라 하였다. 한편 양주는 곧 한나라 때의 월지국이니, 한나라 무제가 주천군, 무위, 장액을 두었다. 후에 위나라가 양주라고 불렀는데 옥문관이 바로 이곳에 있다.


○ 此(차)는 言鳳林關裡水東流則歲月迅速之謂也(언봉림관리수동류즉세월신속지위야)요. 白葦黃楡六十秋則於邊城(백위황유60십추즉어변성)에 將卒(장졸)이 勞苦而閱盡六十秋之謂也(노고이열진60추지위야)요. 邊將(변장)이 皆承主恩澤則在邊(개승주은택즉재변)에 積年有戰功者(적년유전공자)가 皆承恩澤而褒顯之謂也(개승은택이포현지위야)요. 無人解道取凉州則自歎言何人取凉州而爲國盡忠乎(우인해도취양주즉자탄언하인취양주이위국진충호)아. 邊將皆被國恩而取凉州者(변장개피국은이취양주자)는 無一人耳(무일인이)라.

이는 봉림관 안의 강물이 동으로 흐른다고 말한 것은 세월이 빠르다는 말이고, 흰 갈대 누런 느릅나무가 60년이 됐다는 말은 변방의 성에서 장졸들이 수고로운 고생하는 것을 60년이나 보아왔다는 말이고, 변방의 장수가 모두 임금의 은택을 입어 변두리에 있을 적에 해가 거듭됨에 따라 전공이 있는 자가 모두 은택을 입어 포상으로 현달했다는 말이고, 양주를 취할 방법을 알아낼 사람이 없어 스스로 탄식하여 말하기를 “누가 양주를 취해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겠는가? 변방의 장수들이 모두 국은을 입었지만 양주를 취할 자가 한 사람도 없구나!”

* 장적(張籍, 약 767~약 830) : 당나라 오군(吳郡) 사람. 화주(和州) 오강(烏江)에서 살았고, 자는 문창(文昌)이다. 덕종(德宗) 정원(貞元) 15년(799) 진사가 되고, 헌종(憲宗) 원화(元和) 원년(806) 태상시태축(太常寺太祝)에 올랐는데, 10년 동안 승진을 못하고 안질에 걸린 데다 집안까지 빈한하여, 맹교(孟郊)가 조롱 삼아 “궁핍하고 애꾸인 장태축(窮瞎張太祝)”이라 불렀다. 나중에 수부원외랑(水部員外郞)과 국자사업(國子司業)을 지내 ‘장사업(張司業)’ 또는 ‘장수부(張水部)’로도 불린다. 당시 명사들과 많이 교유했고, 한유(韓愈)의 인정을 받았다. 시의 발전과정에서 볼 때 두보(杜甫)와 백거이(白居易)의 연계선상에 있는 시인이다. 악부시(樂府詩)로 이름이 났다. 현전 하는 시 418수 가운데 7~80수가 악부시여서 서사(敍事)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악부시가 아닌 것도 대부분 민간의 고통을 반영하는 데 성공했다. 왕건(王建)과 이름을 나란히 해 ‘장왕악부(張王樂府)’로 병칭 되었다. 유명한 시편으로는 「새하곡」, 「징부원」, 「채련곡」, 「강남곡」이 있다. 저서에 『장사업집(張司業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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