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기오의 명소라고 해 봐야 몇 개 되지도 않고,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을 것 같아서 우리는 하루를 잡아서 택시를 빌려 한꺼번에 모두 돌기로 했다. 숙소 주인장의 소개로 택시 기사를 한명 섭외했는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1일 4,000페소라고 했다. 기꺼이 합의를 해서 오늘 하루 명소를 돌기로 했다.
마닐라와 바기오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인 마르코스 하이웨이의 일부 구간 즉 바기오의 산악 구간을 일명 케논 로드(Kennon Road)라 일컫는다. 이는 이 도로를 효율적으로 건설한 Lyman Walter Vere Kennon 대령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여기에 전말대가 있는데, 이 전망대에서 보면 바기오 시내가 얼마나 높은 산 위에 건설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도로는 당초 45Km로 34Km가 산악지형이었다. 1901년에 4년간의 공사 계획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케논의 지도력으로 18개월 만에 완공을 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미군의 여름 휴양지 건설을 위한 것이었다. 가파른 산악지형을 지그재그로 절개하여 도로를 개설하자니 엄청난 난 공사였고 많은 사고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사 기간 동안 투입된 인부들의 사망자가 222명인데, 당시 일본인 97명, 필리핀인 83명, 중국인 30명, 미국인 12명이었다. 사망자는 대부분 사고와 풍토병인 말라리아에 의한 것이었다.
<계곡 밑에서 산꼭대기까지 사람들이 산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아득하게 골짜기가 보이고 구름이 산 중턱에 걸려서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바로 밑을 내려다보면 아슬아슬한 절벽의 높이이다. 사진으로는 잘 구분이 안 되지만 아무튼 120년 전에 이런 산악지형을 개발하여 도시를 건설하였으니 대단한 일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자기들을 무력으로 지배한 스페인, 미국, 일본에 대하여 우리처럼 그런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무력의 지배는 지배이고 개발의 이익은 자기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세가 침략해서 이룩해 놓은 것도 모두 자기들의 유산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인식 구조와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이 케논 로드 전망대에도 아주 아이러니 한 기념물이 조성되어 있다. 바로 메모리얼 마커(Memorial Marker)이다. 당시에 건설 중에 사고나 질병으로 죽은 일본 이민 노동자들 2,300명을 추모하는 기념물을 새워 놓은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만이 아니라, 필리핀인, 중국인, 미국인들이 희생을 했는데, 유독 일본인에 대한 기념물만 세워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