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기오에서의 저녁 식사는 대부분 숙소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해결했다. 그러니 자연히 주방장인 금삿갓 운사(芸史)의 일거리가 많이 몰리자 동료들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래서 잠깐이나마 주방장의 짐을 덜어 준다고 자기들이 돌아가면서 저녁식사로 위로의 한 턱을 내겠다고 한다. 무한한 우정에 감사를 보낸다. 먼저 소운(素雲)이 무한 리필 고깃집 Korean Palace(궁전)에서 한 턱을 쏘았는데, 궁전 식당은 일찍이 소개를 했기에 생략했다. 이번에는 송재(松齋)가 한 턱을 쏜단다. 장소가 SM City Mall에 있는 Wood Nymph(숲 속의 요정)의 시내에 있는 본점에서 하겠단다. 이럴 땐 유식한 문자로 불감청(不敢請) 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고 해야 하는 거다. 친구들에게 밥을 잘 사서 훌륭한 호를 가진 덕은(德隱)이야 말할 것도 없다.
송재로부터 Wood Nymph와 얽힌 추억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저녁을 맛있게 먹어보자.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음식점으로 향했다. 숲 속의 요정은 밀리터리 컷오프 로드에 있다. 송재는 젊은 시절에 필리핀이랑 거래가 있었고, 어학연수도 다니면서 오래전에 바기오에 한번 와 본 경험도 있었다. 당시 1박 2일로 바기오에 왔는데 우기라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로지 우리가 오늘 가는 이 음식점에서 맛있게 한식을 먹은 추억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새론 맛을 음미하자는 차원에서 장소를 여기로 정한 거다. 셋이서 송재에게 서슬 퍼런 공안 검사처럼 어떤 묘령의 여자와 단둘이 왔는지, 무슨 추억이 있었는지 집요하게 추궁을 하였지만 모(某) 야당대표가 검찰에서 대응하듯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버렸다.
대역죄를 지은 피의자도 아니고, 평소의 송재의 성품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농담으로 추궁한 것이지 뭔가 있을 거나 나올 것이 없는 장난이다. 이곳 음식점은 일별(一瞥)해 보니까, SM Mall점처럼 한식의 단품도 팔고, 무한 리필점처럼 삼겹살 같은 육류를 뷔페식으로 서브하기도 했다. 손님이 원하는 바에 따라 다양하게 주문하여 즐길 수 있는 좀 더 폭넓은 선택 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아주 한적하고 좋았다. 메뉴는 서울에서 먹을 수 있는 한식 메뉴 중 대부분이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탕, 찌개, 볶음, 무침, 김밥, 비빔밥 등등 무척 많았다. 우리는 그냥 간편하게 삼겹살과 감자탕을 시켰다. 우선 삼겹살로 소주를 마시다가 식사 차원에서 감자탕을 먹으려고 한 것이다. 무한 리필이 아닐 경우는 삼겹살을 1인분씩 소분해서 서브도 했다. 삼겹살 3인분을 참이슬과 같이 먹고, 추가로 2인분을 더 주문하여 먹었는데,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감자탕이 나왔는데 먹을 수도 없고, 분량이 장난이 아니게 많았다. 할 수 없이 감자탕에서 뼈다귀를 다 제거하고 리필되는 야채를 추가해서 다시 끓여서 숙소에서 먹으려고 포장을 해 왔다. 그런데 삼겹살은 좋았는데, 감자탕은 맛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서 포장해 온 것도 숙소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지다가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비운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