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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Dec 18. 2024

149> 吳宮(오궁) / 오나라 궁궐

漢詩工夫(241004)

吳宮(오궁) / 오나라 궁궐

 - 李商隱(이상은)

龍檻沈沈水殿淸

용함침침수전청

○●○○●●◎

용무늬 난간은 침침하고 물가 궁궐은 맑은데


禁門深掩斷人聲

금문심엄단인성

●○○●●○◎

궁궐 문 깊이 닫히고 사람의 소리 끊기었다.


吳王宴罷滿宮醉

오왕연파만궁취

○○●●●○●

오왕의 연회 끝나니 궁에 취객들 가득하고


日暮水漂花出城

일모수표화출성

●●●○○●◎

날 저무니 꽃잎 물에 떠 성 밖으로 나가네.

此(차)는 以吳宮(이오궁)으로 爲題而作也(위제이작야)라. 言吳宮之水殿(언오궁지수전)이 淸凉(청량)하고, 畫龍之檻(화룡지함)이 沈沈而昏(침침이혼)하며, 九重之禁門(구중지금문)이 深深掩鎖(심심엄쇄)하야. 人聲(인성)이 斷絶(단절)이라. 此時(차시)에 吳王(오왕)이 罷宴而滿宮之人(파연이만궁지인)이 方在醉鄕(방재취향)하고, 西日(서일)이 已暮而花浮於水(이모이화부어수)하야. 泛泛而出宮城(범범이출궁성)이라. 此(차)는 見吳宮感古而似亦有諷諫於當時者然(견오궁감고이사역유풍간어당시자연)이나. 未可知也(미가지야)로다.

이는 오나라 궁궐로 제목을 삼아 지은 것이다. 오나라 궁궐의 수전이 청량하고, 용을 그린 난간은 침침하여 어둡고, 아홉 겹의 금문이 매우 깊게 가리고 잠기어 사람소리 끊긴 것이다. 이때에 오왕이 연회를 끝내니 궁궐에 가득하던 사람들이 한창 취해있고, 서산의 해는 이미 저물고 꽃은 물에 떠서 범범히 궁성을 나간다. 이 시는 오궁을 보고 옛 감흥을 일으킨 것이니, 이 또한 당시를 풍간한 것 같으나 맞는지 모르겠다.

* 李商隱(이상은) : 813년 ~ 858년(추정), 자는 의산(義山)이고, 호는 옥계생(玉溪生), 번남생(樊南生)이다. 허난(河南) 싱양(滎陽) 출신이다. 조부 이보(李俌)는 후베이(湖北)성 징저우(邢州)의 녹사참군(彔事參軍)을 지냈으며, 부친 이사(李嗣)는 중시어사(中侍御史)를 맡았다. 이상은이 태어날 때 부친은 가현령(嘉縣令)으로 임명되었으나 이때부터 가세가 몰락했다. 이상은은 10세에 아버지 이사를 병으로 잃었고, 그와 어머니, 동생들은 허난의 고향으로 돌아왔고, 빈곤하게 생활하며 친척들의 도움에 의존해 살아갔다. 이상은은 장자로서 집안을 지탱하는 책임을 졌다. 25세에 令狐楚(영호초)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進士(진사)가 되고 校書郎(교서랑), 東天節度書記(동천절도서기), 檢校工部郎中(검교공부낭중) 등 높지 않은 벼슬을 역임했다. 영호초의 반대파인 王茂元(왕무원)의 사위가 되어 두 정파 사이를 내왕하여 절조를 비난받기도 했다. 그의 시는 서정적인 작품이 많고 修辭(수사)를 중히 여기어 정밀하고 화려하다고 하며, 典故(전고)를 많이 인용했다. 시를 지을 때는 참고 서적이 자리를 꽉 차지해 물개가 물고기를 늘어놓은 것 같았다고 한다. 당 나라 말기와 五代(오대)를 통하여 그의 시는 크게 유행했다. 溫庭均(온정균)과 함께 ‘溫李’로 불리웠으며, 이들의 시파를 西崑體詩派(서곤체 시파)라 했다. 그는 일생을 불우하게 지냈지만, 杜甫(두보)의 전통을 이은 만당의 대표적 시인으로 높이 평가받으며 저서에 ‘義山詩集(의산시집 6권)’과 ‘西崑唱酬集(서곤창수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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