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고갱이 타히티로 간 까닭의 애로서(曖露書)

뽕도 따고 님도 보고

by 금삿갓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공산주의 슬로건을 누가 최초로 내 걸었을까? 아마 대부분은 1848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최초로 쓰였으니까 마르크스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사회주의자 카를 샤퍼(Karl Schapper)라고 거론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보다 5년 전 사회운동가 플로라 트리스탕(Flora Tristan)이 쓴 《노동자 연합(Workers’ Union)》에 등장했다. 트리스탕이 누구냐고? 그녀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폴 고갱(Paul Gauguin)의 페루(Peru) 출신 외할머니다. 그녀는 사회주의 활동가로서 프랑스와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파리아의 방랑》(1838), 《런던 산책》(1840), 《노동자 연합》(1843) 등의 저서를 냈다. 고갱은 어릴 때 아버지의 필화(筆禍) 사건으로 파리에서 추방당하여 외할머니의 고향 페루에서 생활했고, 그녀의 집안은 페루 대통령 가문이었다. 고갱은 활동적이었던 외할머니를 우상화했고, 죽을 때까지 그녀의 저서를 간직하고 있었다. 페루 내전으로 외갓집이 몰락하자 다시 파리로 돌아와서, 상선의 선원과 해군으로 복무했다. 그 시절에 다양한 해외 경험을 한 것이다. 인도에 있을 때 모친이 사망하자 귀국하여 주식 및 미술중개인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덴마크 여성 Mette-Sophie Gad와 결혼하여 5명의 자식도 두었다. 그림은 취미 생활 정도로 했다.

1.jpg <Ancien Culte Mahorie>

그런데, 1882년에 파리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미술 시장도 위축되자 직업을 포기하고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잘 나가던 주식중개인이 가난한 화가로 생활한다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파리를 떠나, 시골로, 처갓집 덴마크로, 이탈리아, 파나마, 마르티니크 등등을 전전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고, 아내로부터도 결별하자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1892년 파리에서 그림 경매와 자선 이벤트를 성공시켜 그 자금으로 그의 정신적 고향인 타히티(Tahiti)로 떠난다. 그가 타히티로 떠난 까닭은 무엇일까? 그의 표현에 따르면 “유럽의 문명과 인위적이고 관습적인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정말 그걸까? 금삿갓이 보기에는 그 말도 약간 맞지만, 그의 내면에 있는 진실한 생각은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성의 세계를 탐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그림 <Ancien Culte Mahorie>를 자세히 보라. 문학적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여성의 꽃봉오리가 남성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사랑의 행위가 연꽃 봉오리 속에서 열렬히 뿜어지고 있다. 연꽃도 열락의 세계를 환영하듯이 두 손을 활짝 벌여 번쩍 들고 환영하는 모습이다. 발그레한 얼굴의 여인은 다리로 남성의 허리를 바싹 조여 밀착한다. 고갱의 스케치와 생각들을 메모하여 정리해 놓은 수첩에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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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大家)들의 스케치 수첩은 그것 자체가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Leonardo Da Vinci의 자필 수첩 중 극히 일부인 <Codex Leicester>가 1994년에 노트북을 만드는 기업가 Bill Gates에게 3천만 불에 낙찰되었다. 지금은 아마 몇 배로 올랐을 거다. 고갱의 수첩도 재미있는 것이 많다. 그의 기록물인 <노아 노아(Noa Noa)>에는 위의 그림과 같은 타히티에서의 그의 체험과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의 수첩에 적힌 글과 스케치를 중심으로 보아서 그는 정말로 아무런 거리낌 없는 성의 자유를 추구하려고 타히티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모든 타히티 여인들은 피 속에 사랑만이 들어 있다.”라고 표현했다. 진한 향이 풍기는 순백색의 티아레(Tiare) 꽃같이 타히티의 여인들은 그에게 무한한 자유로운 성의 세계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표지 그림과 비슷한 스케치이다. 여인의 팔목에 팔찌가 없고 머리 모양도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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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도 스케치 수첩의 일부분이다. 타히티의 젊은 남녀가 거침없는 사랑을 나누는 모습니다. 화가들의 여성편력이야 누구를 막론하고 문란하기 마찬가지다. 그런데 고갱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고, 특히 그가 문란한 성생활로 인하여 매독이 걸려 있음에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거리낌 없이 수많은 여성 특히 어린 소녀들과 관계를 가진 것이 놀라운 것이다. 아내와 결별하고 타히티에서 어린 소녀들과 관계를 가지다가 13세인 테하마나(Tehamana)와 결혼한다. 아내와 이혼하지 않았기에 중혼(重婚)이다. 아이까지 출산했는데, 그들을 버리고 파리로 돌아가 버렸다. 파리에서는 안나 자바네스(Ana Javanese)라는 동남아계 소녀와 동거했다. 다시 타히티로 돌아가서 14살의 파후라(Pahura)와 살면서 두 아이를 출산했다. 또 그는 마르케사스 제도의 아투오나(Atuona)에 살면서 집을 튼튼하게 지어서 살았다. 그때 태풍 피해를 입고 임시 거주하러 온 원주민들의 어린 소녀들을 마구 건드렸다. 이때 배히네(Vahine), 배오호(Vaeoho) 등 원주민 소녀와도 동거를 했다. 베히네는 딸도 출산했다. 그 집의 문설주는 <Maison du Jouir(쾌락의 집)>이라고 명명했고, 목조 조각품 <Soyez amoureuses vous serez heureuses(사랑에 빠지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장식했다. 벽은 그가 프랑스에서 나오는 길에 포트사이드에서 구입한 45장의 음란 사진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그가 조각한 나무 조각이 1,130만 불에, 그의 작품 <언제 결혼하니(Nafea Faa Ipoipo)?>가 3억 불에 경락되는데, 정작 그는 살아생전에 성적 판타지를 즐기던 어린 소녀들과 그녀가 낳은 자녀들에게 그의 조그마한 유산도 하나 남기지 않아서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아래 그림들은 해변에서 사랑을 나누고 탈진하여 누워서 쉬고 잇는 연인들 처럼 보인다. 그림의 제목이 <어머나, 너 질투하니?>다. 사랑을 자유롭게 나누는게 질투할 대상이냐?

5.jpg <What! Are you jealous?>


6.jpg <What! Are you jeal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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