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의 최고를 지향하려면 수파리(守破離)를 해야 한다. 수파리(守破離)는 원래 일본 선불교(禪佛敎)의 수행 방법이었는데.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에서 검도와 다도(茶道)에 도입한 개념이다. 3단계의 성장 방법이다. 수(守)는 스승이나 유파(流派)의 가르침·틀·기술을 충실히 지켜 확실하게 익히는 단계. 파(破)는 다른 스승이나 유파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연구하여 좋은 것을 도입해 발전시키는 단계. 이(離)는 스승의 유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새로운 일가(一家)를 이루는 단계이다. 오늘 말하는 괴짜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 1760~1849)가 바로 수파리를 이루었다. 스승으로 부타 파문을 당하고 전국을 유랑하면서 자기만의 유파를 형성하여 세계적인 대가가 되었다. 그는 30번 이상 자신의 호(號)를 바꿨으며, 93번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호쿠사이는 아흔 살에 임종을 맞으며 유언을 말한다. “하늘이 나에게 5년을 더 주면 진정한 화공이 되리라.” 그는 그림 그릴 시간이 아까워 청소도 않고, 식사도 <배달의 민족>만 이용하고, 술 담배도 멀리하며 휴식 없는 예술세계를 살았다. 1999년 미국의 <라이프> 잡지에서 발표한 지난 밀레니엄 중 세계적인 인물 100명을 선정했는데, 유일한 일본인으로 호쿠사이가 86위에 올랐다.
위의 그림이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부옥(富獄) 36경> 중의 하나인 <가나가와 앞 파도(神奈川沖浪)>이다. 이 그림에 영감을 받은 반 고흐(Van Gogh)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으리라 추정한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파도의 집게발 같은 표현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악마의 발톱을 영상 하게 하는 파도의 모양은 그가 해변에 장기간 동안 앉아서 관찰한 결과란다. 그의 시력과 관찰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당시에는 사람들의 웃음거리였지만, 2019년 옥스포드대와 에든버러대의 큰 파도(Freak Wave) 연구에 따르면 비슷한 현상이 생긴다고 했다. 그의 그림은 일본 1,000 엔화와 여권에도 이용되고, 도에이영화사의 로고에도 활용되었다.
애로서(曖露書)의 본론으로 들어가자. 글도 전희(前戲) 단계이니까 그림도 전희 단계부터 시작이다. 아주 정상적인 자세로 정상위의 전희에 몰두하는데, 여성의 반응은 비교적 느리다. 표정도 눈을 감지 않고 약간 심드렁하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춘화(春畫)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존재했다. 중국은 물론, 동방예의지국 유학의 나라 조선도 마찬가지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운우도첩(雲雨圖帖)>, 혜원(惠園) 신윤복(申潤福)의 <건곤일회도첩(乾坤一會圖帖)>, 정재(鼎齋) 최우석(崔禹錫)의 <운우도화첩(雲雨圖畵帖)>이 양반들에게 은밀히 유행된 ‘빨간책’이었다. 물론 일본의 춘화가 조선의 춘화에 비하여 훨씬 노골적(露骨的)이고, 적나라(赤裸裸)하다. 성기의 극단적인 과장이나 터무니없고 유머러스한 장면의 묘사 등 성적 행동의 현실적인 표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춘화가 서양에 많이 유입되어서 한동안 서양인들은 일본 남성의 성기가 그렇게 거대한 것으로 오해했을 정도이다. 위의 그림은 <츠마가사네(つま重ね)> 연작(連作) 작품이다. 츠마가사네란 유부녀와 외간 남자의 간통을 말한다. 이 것은 강제로 겁탈을 하려는 상황이다. 여기도 성기의 묘사는 거대하다. 여자는 한 손으로 안간힘을 쓰며 남자의 얼굴을 밀치며, 다른 한 손으로는 중요 부위의 침입을 결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기모노 차림에 속옷을 입지 않는 것은 남성의 침입을 용이하게 하여 인구 증가에 기여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특명이라는 낭설이 있지만, 사실무근이다. 기모노의 옷가지 수가 워낙 많아서 전통적으로 팬티가 불필요하고, 근래 호텔 대화재시에 속옷 없는 여성이 탈출을 거부해서 사상자가 많았다. 그래서 요즘은 입는다. 허리띠인 오비도 담요 역할을 위해서만든 아니다.
위의 그림은 훔쳐보는 구도의 그림이다. 제목은 <참견하는 여인>이다. 불구경과 싸움 구경보다 정사 장면을 훔쳐보는 것이 제일일 것이다. 일본의 춘화는 전투에 참여하는 사무라이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사용되며, 재앙을 막기 위한 부적, 젊은 커플을 위한 성교육 자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시 많은 여성들에게도 사랑받은 것 같다. 기록에 따르면 원래 춘화 한 두루마리는 은 50몬(文)으로 콩 300리터 가격과 같아서 매우 비쌌다. 그래서 목판화로 대량 제작하면 대량 유통이 가능했다. 1719년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신유한(申維翰)이 지은 <해유록(海遊錄)>에서 “일본 남자들마다 품속에 운우도(雲雨圖)를 넣어 갖고 다닌다.”라고 할 정도로 인기도 많고, 유통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그림이 서양으로 팔려나가는 도자기의 완충재로 쓰였다. 그런데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춘화의 유통을 단속해서 2015년까지 소위 "성진국(性進國)"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춘화의 전시회가 열리지 못했다.
이것은 <아름다운 오르가슴>이다. 호쿠사이 작인지 Kitagawa Utamaro의 작품인지 불명확하다. 열락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지그시 감은 여인의 눈과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만으로 느낄 수 있는데, 화가는 한 수 더 뜬다. 속치마 위로 흥건히 흘러내린 애액(愛液)이 제대로 증명해 준다. 호쿠사이는 만년까지도 화법의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인물을 그릴 때 골격을 모르면 진실을 묘사할 수 없다.”며 접골(接骨) 전문가 나구라 야지베(名倉弥次兵衛) 문하에 입문하고, 접골 기술이나 근골의 해부학을 깊게 연구한다. 이로써 그는 겨우 사람의 몸을 그리는 진정한 방법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는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인체의 해부도를 상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과 다름이 없다. 위대한 예술가의 눈은 당시로 보면 현미경이고 망원경이었다. 다빈치는 인체의 순환계·골격계·근육계·생식계 심지어 신경계까지 그렸는데 현대 의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호쿠사이의 파도는 초고속 카메라가 잡아내는 순간 포착을 그린 것이다. 반면 다빈치는 X-Ray가 발명되지 않았던 그 옛날, 그의 눈은 CT나 MRI역할을 한 모양이다.단순 상상 만으로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춘화는 아니고 그가 그린 인체 해부도의 하나인데 남녀의 성교 장면을 CT로 찍은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해부도중 일부 : 성교 모습>
이것도 <츠마가사네(つま重ね)>의 하나인 <위험한 불륜>이다. 이제 막 불을 지펴서 천국으로 들어가려는 찰나이다. 훔쳐 먹는 사과가 더 달 듯이 딥키스의 진한 감미로움에 두 사람의 눈은 살며시 감긴다. 두 몸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완벽하게 밀착되었고, 여인의 양다리는 남성의 엉덩이와 허리를 옥죈다. 마음 보다 몸이 급한 여인의 바른 손은 황급히 남성의 귀두(龜頭)를 잡아 열락의 문전으로 인도한다. 문밖에서 저승사자가 날 선 칼을 들고 분기탱천(憤氣撑天)한 얼굴로 문지방을 넘으려는 것이 그들의 눈이나 귀에는 아랑곳이 없다. 이외로 현장을 단죄하러 오는 남편은 도리어 벌거벗은 상체이다. 본인도 부인 몰래 딴짓을 하다가 자기 부인의 밀회 사실을 밀고받아서 헐레벌떡 달려온 것일까? 맞바람도 빙정 상하기는 매일반이고, 시앗이 시앗 꼴을 더 못 보는 법이다.
이 작품은 <가슴 큰 미인의 성교 후>이다. 일본인들은 옛날부터 가슴 큰 여인들을 선호했나 보다. 요즘도 일본 성인 야동이나 에로 비디오 등에는 거유(巨乳) 미인들 관련 제작물이 많다. 거유 에로 스타들이 인기이다. 제목은 큰 가슴인데 여인의 가슴보다 남성의 물건을 더 크게 강조하고 있다. 역시 일본 춘화의 특색은 못 말린다. 여성은 만족했는지 손수건을 물고 있다. 열락의 신음 소리를 참기 위해 손수건을 물고 있었나 보다. 다른 손수건으로 금방 끝난 사랑의 흔적을 뒤처리하고 있다. 남성은 향기로운 꽃배를 타고 쉼 없이 노를 저어 그 여성을 홍콩 아니 천국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오느라 땀깨나 흘린 모양이다. 손수건으로 뒤처리는 하는 둥 마는 둥 갈증으로 주전자의 오차를 단숨에 벌컥거리고 있다.
위의 작품이 호쿠사이 춘화의 대표작 <어부 아내의 꿈>이다. 200여 년 전에 어떻게 이런 그림을 상상이나 했을까? 마치 현대의 미국 화가 타비타 베버스(Tabitha Vevers)의 초현실적인 그림을 보는 것 같다.(https://brunch.co.kr/@0306a641d711434/620)참조바람. 필자 금삿갓은 2004년에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나가노에 출장 가서 나가노시에 있는 호쿠사이미술관에 들렸다. 당시 그의 생애와 작품 중의 일부, 특히 만화(일본 만화의 원조임)를 보고 무척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90 평생을 살면서 인간의 모든 행동과, 기생·스모선수·배우 등을 포함한 역사상의 인물, 후지산·폭포·다리등의 풍경, 벌레·새·화초·건물, 불교 도구나 요괴·코끼리·호랑이·용 등의 가공 생물, 파도·바람·비 등의 자연현상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을 그려 생애에 3만 4천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다작이면서 천재적인 화가 피카소도 그림, 판화, 조각, 도자기 등 일생동안 3만여 점을 남겼다는데, 그래도 정말 어마 무시한 숫자이다. 피카소는 다양한 여자들과 줄기차게 사랑을 나누면서 재미있게 90세를 넘겼느데,이 괴짜 화가는 너무 재미었게 살면서 그림만 그렸는데 90세 가까이 살았으니 환쟁이 직업이 좋은가 보다. 아래는 호쿠사이가 아니라 이케다 데루카타의 작품이다. 현대의 에로 비디오에서나 볼 법한 과감한 '69(Six Nine)' 자세이다. 여기도 여지 없이 성기는 과장되어 있다. 그에 비해 여인의 입과 혀는 앙증맞다. 대비의 미학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