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를 치명적인 상태로 만들면 옴므파탈(Homme fatale)이다. 세기(世紀)의 천재적인 화가 피카소가 바로 그다. 그는 평소 말하기를 "여자는 두 부류가 있는데, 여신(女神)과 현관 발깔개(Door mats)로 나뉜다."라고 했으니, 필자 금삿갓이 괜히 거장을 흉보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금삿갓은 언제나 팩트체크를 하여 사실에 기반한 글만 쓰려고 노력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는 그림만큼 여자를 잘 유혹했지만, 그가 진정 사랑한 것은 예술이고 여자는 영감을 얻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어릴 때 미술교사인 아버지 호세 루이스(Jose Ruiz)에게 그림을 배울 때부터 여자는 그냥 노리개 감으로 배웠다. 혹독한 아버지는 그림만 혹독하게 가르친 게 아니고 여자 맛을 알아야 한다고 13살짜리 아들을 바르셀로나 매음굴에 데려가서 성기술을 가르쳤다. 비둘기를 해부시키고 사체를 이용하여 설치작품을 만들게 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극도로 원망하여 아버지의 성(姓) 루이스를 안 쓰고 어머니 성(姓)인 피카소를 썼다. 그의 본명은 스페인 사람들 이름 방식에 있는 전치사나 관사 같은 것을 빼더라고 14개 단어라서 풀네임으로 부르기도 힘들다. 칼럼의 대문 그림은 <붉은 팔걸이 의자 위의 벗은 여인>로 한 때 영국 에딘버러 공항에 포스터로 게시했는데 공항측이 외설적이라고 철거하려다가 박물관의 항의로 주저 앉았다. 외설의 기준이 뭔지 대가의 그림을 너무 쉽게 폄훼하는 건 아닌지? 먼저 이런 옴므 파탈의 그림을 보자.
그의 이른 시기인 청색시대의 <앵겔 페르난데즈와 여인(Angel Fernandez de Soto mit einer Frau)>이다. 이 시기에 그는 바르셀로나 아비뇽거리의 홍등가가 미술 교실이었다. 친구 카를로스 카사헤모스와 같이 매춘녀 제르맹 피쇼(Germaine Gargallo Pichot)와 늘 함께했다. 남녀가 서로를 열심히 희롱하는 분위기. 포도주에 흠뻑 취해 얼굴이 홍당무가 된 여인이 도발적으로 남자의 무릎에 앉아 있다. 왼손에는 마시다 만 와인 잔을 추켜들고 오른손으로는 남성의 중심을 꽉 움켜쥐고 오늘 포획한 힘찬 고래를 놓칠 새라 성급하게 쾌락의 축배를 든다. 그녀는 역시 금삿갓의 애로서(曖露書)를 알고 있다. 가릴 것은 가리고 노출할 것은 노출하는 것이 더 흥미가 있는 법. 프로답게 최소한 몸을 가려, 그래서 완전한 나신보다 더 섹시하게 보이도록, 스타킹과 빨강구두로 무장을 하고 있다. 한껏 점잖을 뺀 얼굴이지만 남자는 이미 성의 탐욕에 마음 보단 몸이 먼저 행동한다. 앙다문 입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두 눈에 힘을 주고 있지만 여자 옆으로 살짝 가린 왼팔과 손은 열락의 문을 찾아서 낮은 데로 임하소서이다. 욕망의 길이만큼이나 긴 손가락은 이브를 유혹한 뱀의 혀처럼 동굴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남성의 위신과 체면치레는 이미 여성의 손에 잡혔고, 은밀한 욕망은 꿀단지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위는 같은 시기의 <두 사람과 고양이(Two Figures and a Cat)>이다. 두 남녀의 질탕한 방사(房事) 장면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고양이다. 여성은 이미 남성의 Cunnilingus(구강애무)로 정상에 한번 도달한 듯 얼굴이 홍당무이고, 눈은 게슴치레를 넘어 완전 감겼다. 피카소가 흥취에 겨워 슥슥 그려낸 이런 그림은 현장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생생한 스케치다. 해보지 않았다면 표현할 수 없는 순간 포착의 긴장과 두 남녀가 벌이는 진한 분위기를 작가의 단순한 상상력만으로 표현하기에는 사실감이 덜어질 수 있겠다. 그는 어릴 때부터 홍등가의 후미진 구석을 누비고 다녔고, 동행했을 친구의 모습에서 피카소는 자신을 대입시켰을지도 모른다.
또한 청색시대에서 장미시대로 넘어가는 즈음의 그림 <고등어(The Mackerel)>이다. 그렇다고 필자 금삿갓의 고향 간고등어는 아니다. 그림 구도로 보아서 간고등어보다 더 비린내가 날 것 같다. 그가 끊임없이 품고 있었던 소재 중의 하나가 이런 남녀 간에 벌어지는 성관계였다. 그는 자신과 누드모델의 직업적 관계에서, 때론 친구들과 즐기는 밤의 향연에서 얻은 많은 성적 모티브를 작품으로 남겨 놓았다. 이것도 홍등가의 발가벗은 여인의 그곳으로 고등의 혀(? : 아니 고등어도 혀가 있는가?) 아니면 낚시 바늘 같은 것이 날름거린다. 이 그림에서 금삿갓의 눈에는 고등어는 피카소의 연인이고 여인은 피카소 같다. 그는 생애 동안 무수한 여인을 유혹하고는 버렸다. 그의 생애에 접속하거나 접촉하고, 소통하고, 관계한 여인이 몇 명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중 중요한 여인들은 대충 몇 명 정도 추려본다. 초창기 만난 친구 카사헤모스(Carlos Casagemos)와 삼각관계였던 제르맹 피쇼(Germaine Gargallo Pichot)는 피카소와 한 살 차이다. 카사헤모스가 사랑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는 그녀를 죽이려고 하다가 자살하자, 피카소가 차지했다. 그녀와 함께 몽마르트르 어귀에서 산다. 그곳 레스토랑 카바레 <라팽 아질>에 있는 그림의 주인공이 그들이라는 설이다. 술값 외상으로 잡혔단다. 금삿갓이 그곳에 갔을 때도 빛바랜 토끼 그림은 건재했다. (https://brunch.co.kr/@0306a641d711434/181) 참고. 그녀는 무수히 덧칠한 <아비뇽의 처녀들(본인 모습, 카사헤마스 모습 등)>의 영감을 주고, 피카소의 바람기에 정신적 스트레스로 자살한다. 다음이 화가이자 모델인 페르낭드 올리비에(Fernande Olivier)인데, 사실 이 여자를 만나기 전에 모델인 마들렌(Madeleine)을 만나서 임신까지 시키고 낙태한다. 행적은 밝혀진 것이 없다. 올리비에는 그에게 입체파에 대한 영감을 주었고 7년 만에 피카소의 바람으로 헤어진다. 바람의 상대가 올리비에의 친구 에바 구엘(Eva Gouel)이다. 구엘이 암인지 폐결핵인지 걸렸는데, 버리고 간다. 그 후 그녀는 죽는다.
<거의 춘화에 해당하는데 해석이 불가하다>
그리고 가수 겸 댄서 가비 드페이르(Gaby Depeyre)를 시인인 앙드레 살몽(André Salmon)의 소개로 만나서 남프랑스에서 불같은 연애를 한다. 그녀는 사랑만 하고 미국 화가와 결혼하자, 15살 연하인 모델 파케레트(Pâquerette)와 6개월간 교제한다. 그리고 작품 <연인들(The Lovers)>의 소재가 된 이렌 라구(Irène Lagut)와 사귀지만 곧 헤어진다. 그리고 10년 연하의 러시아 출신 발레리나 올가 고콜로바(Olga Khoklova)와 사귀다가 36살에 그녀와 결혼한다. 그녀는 귀족 출신이라서 피카소에게 상류층을 많이 소개해 주며, 10년간 살다가 아들도 두었는데, 피카소는 한 여자에 만족하지 못한다. <칼을 든 여인>이 그녀의 테마다. 그녀가 이혼 소송을 했으나 거부하여 1955년 암으로 죽을 때 법적 부인이었다. 그는 46살에 17살인 영계 마리-테레즈 발터(Marie-Thérèse Walter)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유혹했다. 그녀가 피카소가 누군지 모르고 늙은 아저씨가 추근대는 줄 알자, 그녀를 데리고 서점에 가서 자기의 책을 보여 주고 꼬셨다. 올가가 알고 난리를 치고 삼자대면도 하고 난리였다. 딸 하나 놓고 헤어져서 사진작가인 26살 연하 도라 마르(Dora Maar)를 만난다. 7년간 사귀지만 결국 틀어지고 작품 <우는 여자>의 주인공이 된다. 그녀는 정신병으로 고생한다.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그린 것 같다. 제우스가 황소로 변한 모습일까? 신화에서 여성은 이렇게 도발적인진 않다.>
피카소가 62세 때에 대찬 여자를 만난다. 그가 62세이고 손녀뻘인 40년 연하인 법대생 프랑수아즈 질로(Françoise Gilot)를 만나서 아이 둘을 낳지만 늙은 피카소의 바람기에 진저리가 났다. 그녀는 당차게 먼저 피카소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씩씩하게 떠나서 미국으로 가서 피카소와의 삶을 책으로 써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돈도 엄청 벌었다. 수많은 여자 중에 이렇게 당당하게 헤어진 사람은 그녀가 유일하다. 마지막으로 만난 여자는 자클린 로크(Jacqueline Roque)다. 피카소가 72세 때 46살 연하인 이혼녀를 만났다. 그녀는 전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친척의 마두라 도자기 공장 직원이었다. 피카소가 끈질기게 찾아가서 구애한 끝에 사귀게 되었고, 8년 후인 1961년에 80살로 결혼했다. 결혼 후 12년간 살면서 그녀를 주제로 4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후 피카소는 사망한다. 피카소가 사망하자 그의 엄청난 유산에 벌떼와 파리 떼가 마구 덤벼들었다. 90 평생을 끊임없이 여자를 바꾸었으니 얼마나 복잡했을까? 하지만 자클린 로크는 유산을 무난히 잘 처리하고, 1986년 리비에라의 성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2명이 자살하고 여러 명이 정신질환이나 고통 속에서 생을 마치게 한 정말 옴므파탈의 천재이다. 아무튼 “창조의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시작된다.”는 그의 주장처럼 많이 파괴한 그가 많이 창조했음은 틀림없다.
<대략 난감이다>
필자 금삿갓이 20여 년 전에 지중해 연안 쪽으로 자주 다녔다. 물론 바르셀로나 피카소미술관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에 1946년쯤부터 피카소가 살았던 곳인 앙티브에 미술관이 있다. 그가 살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들었고, 바다와 바로 붙어 있다. 매우 전망이 좋은 곳이다. 앙티브는 멋진 전망의 백만장자만(百萬長者灣)을 끼고 있는 정말 훌륭한 휴양지다. 이곳에 두세 번 들렸는데, 갈 때마다 칸느에서 열리는 콘텐츠 마켓 입장 카드인 <MIP-TV ID-Card>를 목에 걸고 가게 되었다. 의식적이 아니라 벗는 것을 깜빡하고 갔는데, 그곳 학예사가 방송사에서 나온 줄로 알고 무료입장에, 사진 촬영에, 설명에 온갖 정성을 다해 주기에 너무 당황스럽고 고마웠다. 몇 번을 그 수법을 썼는데 담당자가 바뀌었는데도 매번 유효해서 정말 놀라웠다. 금삿갓의 치기 어린 옛 에피소드이다. 어쨌든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고, 한국의 6·25 전쟁 당시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을 프랑스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부탁을 받고 그려서 우리를 살짝 비하한 전력도 있다. (https://brunch.co.kr/@0306a641d711434/641) 참조.
<The brutal embrace>
피차소의 청색시대 작품인 <잔혹한 포옹(The brutal embrace)>이다. 남성은 그야말로 약간 폭력적 도전을 하고 있다. 왼손으로 여자의 허리를 도망 못 가게 강력하게 감아 안고, 오른손으로는 치마를 걷지도 않은 채 힘이 잔뜩 들어간 모양으로 깊숙이 공략한다. 19살의 그가 이런 강렬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굉장한 관심거리이다. 그 당시 바르셀로나의 아비뇽 거리 사창가를 주름잡았던 실력이 아닐까? 여자가 강렬히 밀어내지만 역부족이다. 침대 머리맡에서 강렬한 눈빛을 쏘면서 노려보는 고양이가 이채롭다. 여성의 초록 상의와 붉은 치마가 그림의 완결성을 보조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거장(巨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