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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Feb 07. 2023

(9) 악의 화신 - 블랑빌리에

 18禁 역사 읽기  (230207)

허영과 사치에 뿅 가길 잘하는 우리 조선 백성들은 모든 물건의 내용이나 성능보다 럭셔리한 이름이나 뽀대 나는 디자인에 잘 들 뻑이 간다. 이번에 얘기할 악(惡)의 화신(禍神) 또한 이름과 외모만 보면 강남의 물 좋은 클럽을 전전(轉轉)하던 돈 많은 남자 놈들이 군침을 질질 흘린 퀸카처럼 보인다. 이름이 브랑빌리에 후작(侯爵) 부인, 본명은 마리 마들렌 도브레이다. 본명이나 남편을 따른 것도 마치 프랑스산(産) 고급 와인이나 양주(洋酒)인 코냑에 어울리는 멋진 이름이다. 아니면 서울의 명품 아파트 브랜드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판이(判異)한 색(色)․독(毒)․전(銭)에 미친, 눈물도 콧물도 없는 기가 차고 코가 막히는 희대(稀代)의 악녀의 이름이다. 그러니 이름이나 얼굴 보고 사람 속마음을 지레 짐작하지 마시길.

그녀는 1630년 프랑스의 저명(著名)한 가문에서 사법관(司法官)의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다. 그녀는 아담하고 볼륨감 있는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하는데, 어린 나이 때부터 스스로의 선택인지 남자 형제들의 강요인지는 모르나, 근친상간(近親相姦)인 자신의 남동생들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자신의 일기에 기록하고 있었다. 그녀가 17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사교계에 청순(淸純)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장안(長安)에 난다 긴다 하는 귀족자제들이나 잘 나가는 아이돌(Idol)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덤벼들었단다. 그 친구들은 이 청순한 소녀가 사실은 속이 엄청 발라당 까진 음탕녀(淫湯女)이고 악독녀(惡毒女)인지 꿈에도 몰랐을 거다. 그 시기에 벌써 그녀는 남동생들과 쓰리 썸인지는 몰라도 육체적인 쾌락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고, 그러한 갖가지 음락(淫樂)과 쾌락적인 것을 일기장에 상세하게 적어서 후일의 참고서로 쓸 요량이었는지, 그것을 곱씹어 보면서 혼자 있을 때 활용할 용도였는지는 모르겠다. <난중일기(亂中日記)>나 <열하일기(熱河日記)> 같은 위대한 일기를 쓰진 못해도 그나마 여성으로서 조신하게 문학적인 <안네의 일기>나 <한중록(閑中錄)>, <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 같은 걸 써야지 말이야. 그런 야설(夜說)하고 야설(野說)한 외설(猥褻) 일기(日記)를 써 놓았으니 나중에 재판의 증거로 되는 거다. 나쁜 짓을 하려면 일기나 수첩은 무조건 불태워 없애야 한다. 아무리 총명(聰明)이 둔필(鈍筆) 보다 못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적자생존(適者生存) 보다 적는 놈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이라지만 그건 아니다. 전(前) 여박통(女朴統) 시절의 안모(安謀) 비서관처럼 수첩 수권을 통째로 검찰이 넘기는 짓을 브랑빌리에가 한 것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사교계인지 화류계(花柳界)인지 파리의 최고로 핫한 무대에 데뷔하여 밤무대, 낮 무대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몸을 굴려 인기가 절정(絶頂)에 오른다. 몇 년간 집에서 낮 무대는 동생들과 밤무대는 나가서 단련한 결과 드디어 22살에 적당한 놈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은 안트와 고블랭 드 브랑빌리에라는 후작(侯爵)이고, 직업은 육군 장교 출신인데 거의 건달 수준으로 허우대만 멀쩡하고 머리에 든 것은 없고, 그저 도박·섹스·동성애 등이 꽉 찬 친구였다. 애시당초 그놈은 여자보다는 물려받을 그녀의 재산에 관심이 많은 속물(俗物)인 데다, 남색(男色)을 더 즐겨하는 동성연애자였다. 남편이라는 놈이 특이하게 몸이 뜨거운 신부는 본체만체 내 팽개치고 밖으로만 싸돌아다니자 그녀 또한 열불이 날 수밖에 없다. 남편은 도박(賭博)과 여색(女色)·남색(男色)을 즐겼기 때문에 주변에 나쁜 친구들이 많았으며, 이 친구들을 종종 집으로 데려오곤 했었다. 그 가운데 남색 상대인 고단 드 산트 크로와라는 기병대의 장교가 있었는데, 이놈이 브랑빌리에 부인의 일생의 궤도(軌道)를 어긋나게 하는 단초(端初)를 제공하게 된다. 고단은 머리가 좋고 여자의 비위를 잘 맞추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브랑빌리에 부인은 곧바로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둘은 공공연하게 사교계나 극장에 모습을 보여 금세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남편은 자기 좋아하는 일만으로도 바빠 부인의 행동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추잡(醜雜)한 소문을 들은 보수적인 그녀의 아버지는 둘의 관계에 눈살을 찌푸렸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아버지는 사법관(司法官)인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괘씸한 딸의 연인인 고단을 바스티유 감옥에 감금해 버린다. 나쁜 짓거리는 그녀와 남편이 더 허벌나게 했는데도 끗발 없고 재수 없는 고단이 잡혀 들어간 것이다. 아버지 생각에 분란(紛亂)의 불씨인 고단만 잡으면 가정이 다시 원위치될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그런데 고단은 바스티유 감옥에서 세상을 떠다니며 악행을 일삼아 온 기괴(奇怪)한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의 하인이었던 엑질리라는 이탈리아인으로, 일찍이 교황 이노센트 10세 때 150명 이상을 독살한 적도 있는 악인 중의 악인(惡人)이었는데 요행(僥倖)이 도망쳐 와서 파리에서 다른 범죄로 감방살이를 하고 있었단다. 고단은 이 독약(毒藥) 전문가 엑질리에게 감옥에서 이론 강의를 듣고, 열성(熱性) 제자가 되어 출소 후 그를 집으로 불러 독약 제조법을 배웠다. 복수심이 강한 그는 자신을 감옥에 가둔 브랑빌리에 부인의 아버지를 죽이고자 한 것이다. 고단에게 푹 빠져 있던 후작부인도 아버지의 처사를 원망해 생부(生父)를 빨리 죽이고 유산을 손에 넣고 싶어졌다. 그래서 둘은 배운 대로 독약을 제조하는 실험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녀와 그놈은 그동안 꾹꾹 참았던 욕정을 남김없이 풀게 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두 년 놈은 그녀의 아버지를 독살할 계획을 꾸민다. 완전 범죄를 꿈꾸던 그들은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으로 하여금 파리 시립 자선병원(慈善病院)에서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척하면서, 독약의 성능과 효과를 시험하기도 하고 예행연습을 한 것이다. 그녀는 동점심 많은 귀부인(貴婦人)으로 자신을 꾸미며 자선병원에서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는 척하였고, 빈자(貧者)들은 아름다운 그녀를 천사로 부르며 따랐지만, 그녀는 조금씩 장기간에 걸쳐 독을 타서 사람들이 쓰러져가는 것을 확인하였다. 완벽한 준비를 한 그녀는 마침내 8개월에 걸쳐서 독을 타서 그 아버지를 죽였다. 자선병원에서 독살은 그 규모가 처음에는 1~2명이었으나 점차 커진 것은 나중에 그녀의 일기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살인에서 얻는 쾌락 자체를 섹스의 쾌락에 비유하여 즐긴 듯하다.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의 평생 독살한 인물은 50명이 넘었다. 그중 대부분이 이렇게 자선병원에서 희생된 이들로 그중 상당수는 또한 무연고자(無緣故者)였고, 이런 시설에 있던 빈자(貧者)의 사인(死因)에 대한 조사는 그녀의 아버지와 같은 명사(名士)에 대한 사인의 조사보다 훨씬 덜 엄격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이 점을 노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계획대로 아버지를 독살하였으나 유산(遺産)만은 그녀 맘대로 되지 않았다. 남동생들과 상속의 다툼이 있었으나, 그 당시 법은 아들이 출가외인(出嫁外人)인 딸보다 우선이기에 한 푼도 건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본인만의 특유의 방법을 이용하여 남동생들을 서서히 처리하여 모든 재산을 차지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위장병으로 사망 진단이 되었다. 걸리적거리는 아버지도 남동생들도 없어져 홀가분한 그녀는 이제 본격적인 남자사냥에 나선다. 거들떠보지도 않는 남편과 애인 고단 한 놈으로는 도저히 만족을 못했던 뜨거운 그녀였으니까. 남편의 사촌 동생을 후려서 침실로 끌어 드린다. 이 여자는 전공과 취미가 아무래도 근친상간 쪽에 있는 거 같다. 뒤이어 아이들의 가정교사도 꼬여서 육욕(肉慾)의 제물로 삼는 등 국산 싸구려 포르노 비디오나 일본판 애로물에나 나오는 짓은 죄다 해본 것이다.

전(錢)은 챙겼지만 색(色)에 미치고, 독(毒)에 빠져버린 그녀는 이제 그 마수(魔手)를 최고의 걸림돌인 남편에게로 뻗치게 된다. 남편이라고 해 봤자 밖으로 싸돌아 나다니며 허구한 날을 남색(男色) 질로 바람을 피우니 뭔 소용 있겠나? 그녀는 남편을 죽이고 남편의 동성애 상대이며, 현재 자기의 애인인 고단과 결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단은 남편의 독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자 그녀는 그에게 배운 독약 솜씨로 남편에게 약을 먹인다. 그런데 고단이 가만히 생각하니 남편이 죽고, 이 여자와 결혼하면 끔찍한 생각이 든다. 뻑 하면 남자 갈아치우고, 툭하면 사람 죽여 버리는 독한 여자와 결혼하면 정말 제 명(命)에 못 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고단은 독약 먹은 그녀의 남편에게 해독제(解毒劑)를 먹이곤 했으나, 그녀가 얼마나 지독한 독약을 썼는지 완전해독이 안 돼, 남편은 평생 식물인간이 되어 겨우 숨만 깜빡깜빡 쉬는 처지가 되었다. 믿었던 애인 고단이 배신을 때리고 남편을 살려내자 뿔따구가 난 그녀는 그의 부하를 유혹해 고단을 독살하려 한다. 하여튼 남자 유혹하는 데는 도가 튼 여자임에 분명하다. 부하의 실토로 사실을 전해 들은 고단은 다시 그 부하에게 그녀를 죽이도록 명령한다. 한때 서로 죽고는 못 사는 관계였던 둘의 사이가 이제는 원수가 되어 어느 한쪽이 죽어 나자빠져야 되는 운명이 된 거다. 그런 와중(渦中)에 우연히 고단이 자기 실수로 사고사를 당하게 된다. 새로운 독약을 제조하다가 질식(窒息)해 숨지게 된다. 그러자 사고사 현장을 수색하던 경찰이 유품(遺品)들을 압수하였다. 그중 고단이 개봉(開封) 하지 말고 그가 죽거든 브랑빌리에 부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쓰여 있는 상자도 있었다. 그것은 편지함으로 브랑빌리에 부인으로부터 온 편지가 수두룩 있었고, 그 편지 내용은 아버지, 동생 독살사건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경찰의 수사망(搜査網)이 좁혀오자, 그녀는 꼬랑지에 불붙은 여우처럼 영국으로 밀항(密航)을 해서 냅다 튀어 버렸다. 그 당시 프랑스 경찰들은 우리나라 문정권(文政權) 시절의 검찰보다 우수했는지, 영국과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었는지 영국에 그녀의 체포를 요구했다. 그러자 그녀는 재빠르게 또 네덜란드(지금의 벨기에 지역)의 수녀원으로 잠적(潛跡)해 버린다. 그러나 프랑스 경찰들은 거의 인터폴 급이라서 포기를 모른다. 강력 범죄자도 미국이나 중국, 동남아 등으로 튀었다 하면 손 놓고 열중쉬어하는 우리나라 견찰(犬察)들과는 격이 다르다. 승려로 변장한 경찰이 그 수녀원(修女院)에 들어가서 그녀를 꼬여서 만나자고 유혹한다. 피신기간 동안 남자 맛을 못 봐 몸이 찌뿌둥한 그녀는 이게 웬 떡이냐면서 얼싸 좋다 하고 수도원 바깥에서 만나기로 한다. 간만에 화끈하고 시원하게 떡 한 번 쳐보길 기대하며, 가슴이 콩닥콩닥, 숨이 할딱할딱, 아랫도리가 싱숭생숭 거리며 데이트 장소로 나갔으나, 그녀를 기다린 건 프랑스 경찰들의 포승줄이었다. 드디어 1676년 7월 그녀는 단두대(斷頭臺)에 걸쳐져 목이 뎅그렁 잘린다. 하지만 독한 그녀가 마지막으로 발악(發惡)하듯 내뱉은 말이 있는데, “나쁜 짓한 놈들이 어디 세상에 나뿐인가? 그런데 왜 나만 갖고 그래?” 그녀의 잘린 시신은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던져졌는데, 타고 남은 그녀의 뼈는 사람들에게 악마(惡魔)를 쫓는 액막이로 비싸게 팔렸다고 한다. 그녀가 한 짓이 너무나 간악(奸惡)하여 어지간한 악마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미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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