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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Feb 05. 2023

(8) 아버지를 미투한 베아트리체

 18禁 역사 읽기  (230205)

스탕달 신드롬(Stendal Syndrome)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유명한 미술품을 감상하다가 가끔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거나 정신적 일체감, 격렬한 흥분이나 감흥, 우울증, 현기증(眩氣症), 전신마비(全身痲痹) 등 각종 이상증세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바로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고 한다. 기록상 이러한 현상을 처음으로 체험한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Stendhal, Marie Henri Beyle)의 이름에서 따온 용어다. 이탈리아의 심리학자인 그라지엘라 마제리니가 쓴 《스탕달 신드롬》에서 이렇게 명명했다. 스탕달은 그의 책 《나폴리와 피렌체-밀라노에서 레조까지의 여행》에서 “나는 천상의 희열(喜悅)을 맛보는 경지에 도달했다. 모든 것들이 살아 일어나듯이 내 영혼에 말을 건넸다.”, “산타크로체 성당을 떠나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걷는 동안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라고 기록했다. 스탕달이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가 그린 초상화(肖像畵) 즉,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의 초상화(1633년,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소장)〉를 보고 정신이 혼미해졌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그의 문헌(文獻)이나 나타난 증상(症狀) 등을 보면 사실이 아닐 것 같다. 스탕달은 13세기말부터 14세기 초 중세 고딕의 마지막과 르네상스의 시작이 겹쳐지는 시대에 활동했던 피렌체 출신의 화가 지오토(Giotto di Bondone 1267~1337)의 벽화를 보고 그런 증상이 발생했을 것이다. 지오토는 이탈리아 회화(繪畵)의 아버지라 불리는 치마부에(Cimabue)의 제자로 아시시와 피렌체, 파도바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는데 르네상스 원근법(遠近法)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거장(巨匠)이다. 단테는 “치마부에(Cimabue)의 시대는 갔다. 지금부터는 지오토의 시대다.”라고 평했다.《데카메론》의 작가 보카치오도 그의 저서에서 지오토를 최고의 화가로 평했다. 지오토의 대표작으로는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의 프레스코화와 산타 마리아 델피오레 대성당의 종탑 설계 외에도 파도바에 있는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현대 의학적 상식으로 천장화(天障畵)나 높이 있는 벽화를 보고자 고개를 오래도록 젖히고 있으면 뇌로 올라가는 혈관이 압박되어 뇌혈류(腦血流)가 줄어들기 때문에 현기증이 오기 때문이다. ‘베아트리체의 초상’은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가 그린 것이 있고, 그의 제자 지오반니 안드레아 시라니(Giovanni Andrea Sirani 1610~1670)의 딸인 엘리사베타 시라니(Elisabetta Sirani 1638~1665)가 그린 것이 있다. 귀도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얼굴이 동그랗고 볼 살이 좀 도통하게 찌고 불그레한 얼굴이지만, 시라니의 작품은 살짝 살이 빠진 현대적인 얼굴에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으로 필자가 보기에 훨씬 미인형이다. 당시 시라니도 베아트리체처럼 자기 아버지로부터 그림 공부에 대해 심하게 학대(虐待)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베아트리체의 모습에서 본인을 투영(投影)해서 그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구나 그녀도 그런 스트레스 때문인지 27살에 훌륭한 재주를 더 많이 펼치지 못하고 요절(夭折)하고 만다.13세기말부터 14세기 초 중세 고딕의 마지막과 르네상스의 시작이 겹쳐지는 시대에 활동했던 피렌체 출신의 화가 지오토(Giotto di Bondone 1267~1337)의 벽화를 보고 그런 증상이 발생했을 것이다. 지오토는 이탈리아 회화(繪畵)의 아버지라 불리는 치마부에(Cimabue)의 제자로 아시시와 피렌체, 파도바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는데 르네상스 원근법(遠近法)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거장(巨匠)이다. 단테는 “치마부에(Cimabue)의 시대는 갔다. 지금부터는 지오토의 시대다.”라고 평했다.《데카메론》의 작가 보카치오도 그의 저서에서 지오토를 최고의 화가로 평했다. 지오토의 대표작으로는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의 프레스코화와 산타 마리아 델피오레 대성당의 종탑 설계 외에도 파도바에 있는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현대 의학적 상식으로 천장화(天障畵)나 높이 있는 벽화를 보고자 고개를 오래도록 젖히고 있으면 뇌로 올라가는 혈관이 압박되어 뇌혈류(腦血流)가 줄어들기 때문에 현기증이 오기 때문이다. ‘베아트리체의 초상’은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가 그린 것이 있고, 그의 제자 지오반니 안드레아 시라니(Giovanni Andrea Sirani 1610~1670)의 딸인 엘리사베타 시라니(Elisabetta Sirani 1638~1665)가 그린 것이 있다. 귀도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얼굴이 동그랗고 볼 살이 좀 도통하게 찌고 불그레한 얼굴이지만, 시라니의 작품은 살짝 살이 빠진 현대적인 얼굴에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으로 필자가 보기에 훨씬 미인형이다. 당시 시라니도 베아트리체처럼 자기 아버지로부터 그림 공부에 대해 심하게 학대(虐待)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베아트리체의 모습에서 본인을 투영(投影)해서 그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구나 그녀도 그런 스트레스 때문인지 27살에 훌륭한 재주를 더 많이 펼치지 못하고 요절(夭折)하고 만다.

그림 얘기하자고 한 건 아니고, 오늘의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자. 첸치(Les Cenci)家는 이탈리아 굴지(屈指)의 귀족 가문으로 명문가였다. 원로원 의원과 추기경(樞機卿) 등 방귀깨나 뀌는 명사를 배출한 유서(由緖) 깊은 집안이었다. 아버지인 프란체스코 첸치는 귀족이지만 폭력적인 기질과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말썽을 피웠기 때문에 이미 교황에게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 가문은 로마의 유대인 게토 끝에 중세풍으로 지은 궁전의 폐허 위에 세운 첸치 궁전에 살았다. 이런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예쁜 소녀 베아트리체 첸치(1577~1599)는 수줍은 듯한 미소와 앳된 얼굴의 청초(淸楚)하기 그지없던 모양이다. 따라서 당시 로마의 귀족 자제들로부터 흠모(欽慕)와 연모(戀慕) 대상 1위로 늘 랭크되고, 로마 패션잡지의 표지 모델을 줄 곧 장식하던 던 그녀였다. 아버지 프란체스코와 어머니 에르시아의 여러 남매 중에 차녀인 베아트리체는 어렸을 때부터 소문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끗발 있는 가문, 부유한 재산, 타고난 미모 등으로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가정의 대명사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기구한 운명은 뒤이어 등장한다. 베아트리체 나이 겨우 7살 때 어머니가 사망한 뒤 그녀는 명문 기숙학교에 들어가 생활을 하게 된다. 8년간의 학교생활에서 얻은 다방면의 기품 있는 교양에 더하여 날로 활짝 피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눈부실 정도로 빛이 났다. 어느 날 학교를 무작정 찾아온 아버지 손에 끌려간 그녀는 그녀가 어릴 적 자랐던 아버지의 고성(古城)으로 돌아가게 된다. 당시 그 집에는 오빠 자코모와 프란체스코의 두 번째 아내 루크레치아 페트로니 그리고 그녀가 낳은 어린 사내아이 베르나르도가 있었다.

그러나 객지 생활 8년 만에 돌아온 그곳은 그야말로 “Home sweet home”이 아닌 “악마의 소굴” 그 자체였다. 계모(繼母) 루크레치아와 재혼한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라 술주정뱅이에 완전 개망나니로 변해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그 많던 재산으로 반반한 여자들을 침실로 끌어들여 성벽이 무너지도록 교성(嬌聲)을 질러대고, 딸인 베아트리체 보는 앞에서 시녀들을 겁탈(劫奪)하는 것도 모자라 어떨 때는 베아트리체 면전에서 계모와 벌거벗고 성관계를 갖기도 했다. 가족들과 부리는 하인들에게 휘둘러대는 마구잡이 폭력은 도를 넘었다. 하인들은 버러지 취급하고, 포학(暴虐)·야만(野蠻)·난잡(亂雜)·괴기(怪奇) 등 정신 이상자 이상의 막가파 짓거리만 골라했는가 보다. 돌아온 집에서 베아트리체는 절망과 불안에 빠져 어찌할 줄 모르는 가운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아버지의 음흉(陰凶)한 눈길과 손길에 전율(戰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 나이 16살인 1593년 꽃피는 춘 삼월에 매혹적이고, 그토록 순결한 육체와 깨끗한 영혼은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처참하게 능욕(凌辱) 당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 와서 미성년자 성추행 등 아동학대 사례들이 각종 미디어에서 보도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국민들은 저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연간 3만 명이상의 아동이 학대를 당하고 있단다. 또 아동 학대를 하는 가해자의 연령을 보면 40대가 46.8%, 50대가 15.5% 등 40대 이상이 총 66.8%에 달한다니 주로 아동들의 부모 정도의 수준인 것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다. OECD 국가 중 아동사망률이 최고인 것도 땅을 칠 노릇인데, 개선될 여지는 안 보이고 망조(亡兆)가 걱정된다. 아무튼 아동학대 신고는 일반 범죄 신고와 같이 국번 없이 112번이다. 익명으로도 신고가 가능하니, 주위에 학대(虐待)로 의심되는 아동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신고하길 부탁드린다. 112에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과 아동 전담공무원이 현장에 출동하여 학대 여부를 조사하고, 아동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 아동을 분리하여 보호하게 된다. 로마시대에 이런 제도가 있을 리 만무(萬無)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신고했다는데 도리어 되치기를 당했단다. 지금도 성추행 사건은 신고 조사 과정이 피해자에게 험난한 가시밭길이만 그 당시엔 더 했을 거다. 탈출구조차 보이지 않고 생지옥(生地獄) 같은 나날이 계속되자, 그녀가 생각한 유일한 탈출이 무엇이었겠는가.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바로 아버지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러나 16살의 연약(軟弱)한 소녀인 자기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동조자(同調者)를 한 명 한 명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폭군 같은 가장(家長)에 대항하여 그를 살해할 살 떨리고, 가슴 무거운 위험한 공작(工作)에 누가 쉽게 가담하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짓기 힘든 절이 우여곡절(迂餘曲折)이라는 ‘아재개그’도 있지만, 그녀는 이 절 한 채를 지으면서 아래와 같은 살인 공범을 만든다.

① 올림피오

그는 첸치가(家)의 충실한 집사(執事)였다. 하지만 매일 폭행을 휘두르는 프란체스코의 행위에 반감을 갖고 있었고, 아름다운 딸 베아트리체가 학대당할 때마다 늘 동정(同情)의 눈길로 바라봤다. 그런 눈치를 챈 그녀가 이왕 버린 몸인데, 한 번이나 두 번이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로 생각하고, 용감하게 올림피오를 유혹해 육체의 포로로 만들어 버린다. 그녀는 자신이 당했던 육체의 성(性)을 적절히 이용하여 필요한 걸 얻어내는 도구로 성(性)을 쓸 만큼 그녀는 이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옛날의 청초한 그녀가 아닌 거다.


② 자코모

그녀의 오빠로 여동생 베아트리체가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하고 겁탈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자코모는 아버지를 증오(憎惡)하고 있던 차에, 살인 공범 제의가 들어오자 단번에 수락해 버린다. 인간 같지도 않은 아버지에 대한 원한도 크려니와 아버지가 죽으면 유산으로 그동안 허랑방탕(虛浪放蕩)하게 써서 생긴 자신의 엄청난 빚을 갚기 위해 아버지의 죽음이 필요했던 거다.


③ 루크레치아

그녀의 계모(繼母)이다. 남편을 죽이는 거대한 음모(陰謀)에 가담한 이유가 없을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많았을 거다. 계속되는 남편의 망나니 짓거리(창녀들을 불러들여 자기 침대에서 질펀하게 놀아나는 등)에 진절 넌덜머리가 나 있던 터이고, 또 저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면 아직 어린 전처(前妻) 소생들 또한 적당히 처리하고, 모든 재산을 가로채어 지중해 경치 좋은 곳으로 도망가서 힘 좋고 깔삼한 영계랑 살아 볼까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④ 마르치오

아버지의 프란체스코의 마부이다. 이 친구는 정세 판단에는 별 신경을 안 쓰고 그냥 힘 만 쓰는 놈이어서 역시 베아트리체가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꼬여서 공범으로 참여시킨다.


장기간의 내밀(內密)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드라마가 드디어 시작된다. 1598년 9월 8일 D-Day에 베아트리체와 계모가 성내(城內)에 모든 준비를 갖춰놓고, 알리바이까지 짜 맞췄다. 베아트리체는 아편을 술에 타서 먹여 아버지를 헤롱헤롱하게 만든 뒤 자기 몸을 탐하게 하고, 뻗어서 늘어져 누운 프란체스코를 계모와 같이 망치로 살해한다. 그리고는 올림피오와 마르치오를 시켜 발코니로 들고 가서 아래로 떨어뜨려 실족사(失足死)로 위장(僞裝)하여 완전범죄를 기도했다. 이 살인사건은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미궁(迷宮)에 빠져 완전범죄로 종결될 뻔했지만 엉뚱한 일로 인해 꼬투리가 잡힌다. 그 꼬투리의 제공자는 바로 첸치가 의 집사이자 살인 사건의 공범인 올림피오다. 이 놈은 감쪽같이 살인이 성공하자 아주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콧대를 높여 마치 자기가 마치 베아트리체의 서방(書房)이라도 된 양 틈만 나면 베아트리체에게 달려들어 맘껏 육체를 주물러대면서 욕망을 채우는 것이다. 베아트리체로서는 늑대 피하려다 도리어 호랑이 만난 꼴이 되었다. 차기 가장(家長)이 된 오빠 자코모가 이런 꼴값을 보다 못해 올림피오를 죽여 버린다. 모든 일은 성사된 후 사후 관리를 잘해야 끝까지 성공한다. 정변 후의 논공행상(論功行賞)이나, 전리품(戰利品)의 배분, 하다못해 도둑이 장물(贓物)의 배분도 공정해야 싸움이 안 나는 법이다. 하물며, 최고의 도적인 도척(盜跖)도 공자 앞에서 문자를 썼다. 도둑도 도(道)가 있으며, 다섯 가지 덕목(德目)을 갖추고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큰 도둑이라고 했다. 첫째, 털려는 집에 어떤 물품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알 수 있는 좌견천리(坐見千里)하는 예견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성(聖)이라 하고, 둘째, 그 집의 방범시설 등을 감안(勘案)하여 성공 가능성 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지(智)라 하며, 셋째,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동요보다 선진입(先進入)하는 모험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용(勇)이라 하고, 넷째, 나올 때는 반대로 동료를 위하여 제일 나중에 나와야 하는데 이를 의(義)라 하며, 끝으로 물품을 배분함에 있어 공과(功過)를 불문하고 참여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야 하는데 이를 인(仁)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 가지 원칙이란 도둑질하는 과정에 여하(如何)한 일이 있어도 살상(殺傷)을 하여서는 아니 되며, 궁핍(窮乏)한 집의 재물은 피해야 하고, 넉넉한 집이라 하더라도 싹 쓰리해서는 아니 되나니 당장 먹고 입을 것은 남겨두는 인(仁)을 베푸는 것이란다.

아무튼, 잇따른 연쇄살인을 심상(尋常)치 않게 생각한 교황청 부속 특수수사국이 프란체스코 집안의 모든 가족과 하인들을 소환(召喚)해 추궁해 가자 그 혐의(嫌疑)가 ‘까도혐’처럼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하나하나 드러났다. 중세 유럽의 고문(拷問) 수법은 악랄(惡辣) 잔혹(殘酷)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문도구가 등장한다. 최고의 고문 기술자들인 일제(日帝) 고등계 형사들이나 3공, 5공 때의 고문 기술자들은 게임도 안 된다. 이 고문을 배겨 낼 재간이 없는 가족과 하인들은 살인극의 주범(主犯)이 베아트리체임을 자백하고야 만다. 참고(參考) 삼아 고문 도구를 몇 개만 예를 들면, 철의 처녀(Iron Maiden)는 소녀 얼굴이 조각된 쇠통 속에 못이 박혀 있는데 이 통 속에 사람을 넣고 닫아 놓는 것이다. 영국의 헤비메탈 그룹 Iron Maiden을 상상하면 큰 오산(誤算)이다. 사람꽂이(Impalement)는 그야말로 오뎅·핫도구·생선꽂이 하듯이 하는 거다. 유다 의자(Juda’s Chair)는 알몸으로 피라미드 모양의 의자에 항문이 맞춰지게 천천히 앉힌다. 못이 박힌 고통의 의자(Torture Chair)도 있고, 관(棺) 고문(Coffin Torture), 엄지 분쇄기(Thumbscrew), 이단자(異端者)의 포크(Heretics Fork) 등등 무수히 많다. 모든 사람이 고문에 못 이겨 술술 자백했지만, 기록에 의하면 고문대(拷問臺)에 오른 베아트리체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고, 무시무시한 고문에도 비명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사형이 집행될 때도 단두대(斷頭臺)에 제 발로 걸어가 마지막 기도로 ‘주님! 성모마리아 님!’을 외치며 선뜻 목을 디밀었다 하니, 친부(親父)에게 능욕(凌辱) 당하고 세상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나를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를 죽인 날로부터 일 년이 흘러 1599년 9월 11일 베아트리체는 바티칸 옆, 산탄젤로 요새(要塞)를 마주 보고 있는 산탄젤로 다리 위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처형 당일 슬프고도 괴이한 사연을 지닌 비운(悲運)의 절세미녀의 처형 장면을 보기 위해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화가들도 많이 왔다. 귀도도 아마 현장에 참여해서 그녀를 본 후에 그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친오빠인 자코모는 사지(四肢)가 찢기는 형을 받아 4등분이 사거리에 걸리었고, 계모 또한 참수형(斬首刑)을 당했다. 막내아들은 목숨은 건졌지만, 이 처형을 지켜보아야 했고, 감옥에 갇혔다가 성장하자 갤리선의 노예로 팔려갔다. 당시 로마 시민들이 정당방위로 무죄 또는 동정론으로 처벌하지 말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교황 클레멘스 8세는 첸치가의 막대한 재산에 욕심이 있었는지 막내만 남기고 모두 사형하고 전 재산을 몰수하였다. 그녀의 시신은 라치오주에 있는 산 피에트로 인 몬토리오 성당에 매장(埋葬)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불명확하다. 당시 죄인의 시신을 성당에 매장했을 수가 있을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이 우리나라의 영숙이 마냥 흔해서, 가끔 혼동(混同) 하는 사례가 있어서 동명이인 몇 사람을 같이 밝혀 두고자 한다. 젤 오래된 베아트리체 디 폴코 포르티나리(Beatrice di Folco Portinari)란 미녀다. 1266년경 피렌체에서 출생하여 1290년에 사망했는데, 신곡을 쓴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가 평생을 두고 사모한 여인이다. 귀족의 딸이었다고 하며 단테가 9살 때 첫눈에 반해 평생을 맘속에서 짝사랑했다. 결국 그의 평생의 대작 <신곡>에서 단테를 인도하고 구원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단테가 이 인물을 평생 그리워했던 것을 두고, 그의 아내는 ‘만약 그녀와 맺어졌으면 평생 그렇게나 그리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범하게 말했다니 부인도 대단하다. 이 베아트리체는 피렌체 출신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로, 20살쯤 시모네 디 발디의 아내가 되었으나, 24살인 1290년에 요절(夭折)했다. 단테는 조숙(早熟)하게도 9세 때 한 살 아래인 그녀를 만나 사랑과 찬미(讚美)의 감정을 품게 되었고, 9년 후에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 그녀의 정중한 인사를 받자 지극한 행복을 느꼈으며, 그 후로는 영원한 여성으로 그의 마음속에 살아남게 되었단다.

또 다른 베아트리체는 오페라의 주인공이다. 작곡가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의 <텐다의 베아트리체>라는 오페라의 주인공인 베아트리체 라스카리스 디 텐다(1372-1418)는 비안드라테의 백작 파치노 카네의 부인이었다. 남편인 파치노 카네의 영지(領地)는 알렉산드리아, 노바라, 토르토나 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당시 그는 밀라노 공국(公國)의 실질적인 통제력을 지니고 있었다. 1412년에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남편 휘하의 군사들과 엄청난 재산 모두 그녀의 소유가 되었다. 신임 공작(公爵)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가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고 그녀에게 눈독을 들였다. 그래서 자신보다 20세나 연상(年上)이고 40살이 넘은 그녀와 기꺼이 결혼을 하였다. 일설에는 남편이 영지를 지키기 위해 그와 결혼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도 한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필리포는 점점 베아트리체의 손발을 묶어놓고, 대신 젊은 정부(情婦) 아네세 델 마이노를 가까이하였고,테달디 베아트리체이게는 결국 1418년 간통의 혐의를 씌워서 참수형(斬首刑)에 처하고 만다. 베아트리체의 비극적인 최후를 다룬 카를로 테달디 포레스의 희곡(戲曲) ‘Beatrice di Tenda’를 토대로 펠리체 로마니가 리브레토를 각색(脚色)하였다. 이 오페라의 작곡가인 벨리니는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였던 주디타 파스타와 밀월관계를 갖고 있었는데, 특별히 그녀를 염두(念頭)에 두고 완성했던 것이 이 작품이다. 베아트리체를 생각하면서 이 오페라를 감상하기 곤란한 분은 차라리 가왕(歌王) 조용필의‘슬픈 베아트리체’라도 들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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