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릉은 바로 한나라 황제의 능이니, 장릉, 안릉, 양릉, 무릉, 평릉을 말한다. 호협이 이곳에 집안이 많고, 낙양의 세 시장 중에 금시가 가장 크다. 기구에서 먼저 소년이 출락(出落 : 성장한) 곳을 묘사한 것이다. 다음에서 소년의 안장과 말의 부유함을 묘사하였다. 度春風(도춘풍)은 봄바람이 가운데로 건너간다는 말이니, 바로 굽혀 떨어진 꽃을 밟는 근원이다. 銀(은) 자는 위 구의 金(금) 자에 비춘 것이다.
셋째 구절은 낙화를 밟는 것도 이미 다하였다면 노는 곳이 세 곳뿐만이 아니니, 완연하게 젊은이의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의 가는 곳이 있으니, 옆 사람을 따라 그를 보면 그들의 가다 멈추고, 가고 멈춤이 어느 곳에서 놀려하는지 알 수 없다. 넷째 구절은 여인이 술집 안에 술청에 있어서 소년이 저도 모르게 기뻐 웃고 드디어 술집 안에 들어가 나오지 않으니, 이에 옆 사람이 그의 노는 것을 보면 바로 이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 시는 악부체로 지은 시로 유협 31곡 중의 하나다.
* 이백(李白) :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시인. 자(字)는 태백(太白)이고. 호(號)는 주선옹(酒仙翁)·해상조오객(海上釣鰲客)·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꿈에 태백성(太白星)을 보았다고 한다. 성품이 호방하여 세속에 매이지 않아 천하를 유람하며 시주(詩酒)로 생활하였다. 시풍이 웅기하고 호방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언어의 흐름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음률의 조화와 변화가 다양하다. 천보(天寶) 원년(元年: 742년) 가을에 처음 장안(長安)에 나와 하지장(賀知章)을 만나 적선인(謫仙人)으로 찬양되면서, 그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다. 그 뒤 현종(玄宗)을 알현하여 시문의 재능을 인정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으로 임명되고 궁정 시인이 되기도 했으나, 일생을 불우하게 방랑하며 보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 되며 한시(漢詩)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져 이백(李白)은 시선(詩仙), 두보(杜甫)는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성당(盛唐) 시기 시가(詩歌) 예술의 최고봉에 올랐다. 지금까지 전하는 시가 1천여 편에 달하고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30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