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성은 촉 지방의 어복(물고기 배) 안에 있다. 공손술이 촉을 점거하고 있을 적에 우물 속에서 흰 용을 발견하고는 백제라고 불렀다. 백제성 못이 매우 높으므로 채운간이라 하였다. 셋째 구절은 협곡의 길이가 700 리요, 양쪽 언덕이 산으로 이어져 원숭이가 가장 많이 울어대는 곳이라는 말이다. 不住(부주)는 아침 일찍이라는 말이다.
넷째 구절은 새벽 원숭이의 울음소리가 나서 그치지 않으니, 이는 아침이 아직 지나지 않았고, 가벼운 배가 이미 만산을 지났다는 말이다. 이는 매우 빠르다는 말이다. 啼不住(재부주 : 울음을 그치지 않음)는 已過(이과 : 이미 지났음) 두 자와 호응한다. 啼不住(제부주)에서의 住(주)자는 혹 書(서)자로 되어 있다.
< 이백이 757년 57세에 귀양길을 떠나 759년 백제성에 다다랐을 때 사면 소식을 듣고 강릉으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쓴 시다.>
* 이백(李白) :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시인. 자(字)는 태백(太白)이고. 호(號)는 주선옹(酒仙翁)·해상조오객(海上釣鰲客)·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꿈에 태백성(太白星)을 보았다고 한다. 성품이 호방하여 세속에 매이지 않아 천하를 유람하며 시주(詩酒)로 생활하였다. 시풍이 웅기하고 호방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언어의 흐름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음률의 조화와 변화가 다양하다. 천보(天寶) 원년(元年: 742년) 가을에 처음 장안(長安)에 나와 하지장(賀知章)을 만나 적선인(謫仙人)으로 찬양되면서, 그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다. 그 뒤 현종(玄宗)을 알현하여 시문의 재능을 인정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으로 임명되고 궁정 시인이 되기도 했으나, 일생을 불우하게 방랑하며 보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한시(漢詩)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져 이백(李白)은 시선(詩仙), 두보(杜甫)는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성당(盛唐) 시기 시가(詩歌) 예술의 최고봉에 올랐다. 지금까지 전하는 시가 1천여 편에 달하고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30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