橫江浦(횡강포)는 和州(화주)에 있는데, 采石(채석)과 마주하여 왕래할 때 건너는 곳이다. 津吏(진리)란 손님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일을 담당한 관리다. 津吏(진리)가 한편으론 말하고 한편으로는 동으로 해운이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니, 곧 날씨가 변하여 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郞(랑)’자는 잘못되었으니 ‘卽(즉)’자가 마땅하다. 이미 그가 건너려는 것이 의아하여 또 묻기를 “무슨 급한 일 때문에 건너가려 하는가?”라고 한 것이다. 또 손으로 강을 가리키며 말한 ‘如此風波(여차풍파 : 이 같은 풍파)’는 바로 나를 향하고 동쪽을 가리키는 구절에 응답한 것이고, ‘不可行(불가행 : 갈 수 없음)’은 그 가는 것이 꽉 막혔으니 깊이 경계하라는 말이다.
<‘郞(랑)’자는 잘못되었으니 ‘卽(즉)’자가 마땅하다.>라는 주석은 도리어 잘못되었다. 국내 제반 자료와 중국 인터넷 바이두(百度)를 검색하여도 모두가 ‘랑(郞)’으로 되어 있다. 이 시에서 ‘랑(郞)’은 이백을 지칭하는 말이고, 옛날 중궁에서 관리들을 그렇게 불렀다.
* 이백(李白) :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시인. 자(字)는 태백(太白)이고. 호(號)는 주선옹(酒仙翁)·해상조오객(海上釣鰲客)·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꿈에 태백성(太白星)을 보았다고 한다. 성품이 호방하여 세속에 매이지 않아 천하를 유람하며 시주(詩酒)로 생활하였다. 시풍이 웅기하고 호방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언어의 흐름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음률의 조화와 변화가 다양하다. 천보(天寶) 원년(元年: 742년) 가을에 처음 장안(長安)에 나와 하지장(賀知章)을 만나 적선인(謫仙人)으로 찬양되면서, 그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다. 그 뒤 현종(玄宗)을 알현하여 시문의 재능을 인정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으로 임명되고 궁정 시인이 되기도 했으나, 일생을 불우하게 방랑하며 보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한시(漢詩)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져 이백(李白)은 시선(詩仙), 두보(杜甫)는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성당(盛唐) 시기 시가(詩歌) 예술의 최고봉에 올랐다. 지금까지 전하는 시가 1천여 편에 달하고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30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