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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Feb 11. 2023

(12) 구미호 같은 미녀 - 달기

★ 18禁 역사 읽기 ★ (230211)

하(河)나라의 17대 걸왕(桀王)은 성은 사(似), 이름은 이계(履癸)로 발왕(發王)의 아들로, 은(殷)나라 즉 상(商)나라 최후의 왕인 주왕(紂王)과 함께 걸주(桀紂)라는 용어로 포악(暴惡)한 임금의 대명사로 거론된다. 걸주(桀紂)는 흔히 이상적 천자(天子)로 추앙받는 요순(堯舜)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희대(稀代)의 요녀(妖女)이며 경국지색(傾國之色)인 말희(妺喜)에게 빠져, 웅장한 궁전을 건조하여 천하의 희귀(稀貴)한 보화와 미녀를 모았으며, 궁전 뒤뜰에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어 배를 띄워 즐겼고, 장야궁(長夜宮)을 짓고 거기서 남녀 합환(合歡)의 유흥에 빠졌다고 전한다. 《사기(史記)》에는, “걸왕(桀王) 때 하(夏)나라의 국세는 이미 쇠약하여 많은 제후(諸侯)가 떨어져 나갔다. 걸왕은 부도덕하였고, 현신(賢臣) 관용봉(關龍逢)과 이윤(伊尹)의 간언을 듣지 않았으며, 백성을 억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덕군자로 알려졌던 은나라(상나라)의 탕왕(湯王)을 하대(夏臺)에서 체포하는 등 폭정을 자행하였다. 그가 탕왕(湯王)의 토벌을 받고 도망가다가 죽음으로써 하(河)나라는 멸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망가던 걸왕(桀王)은 하대(夏臺)에서 탕왕(湯王)을 죽이지 못한 것을 한탄한 뒤 사망했다고 한다.

탕왕(湯王)은 사람 좋기가 비단결 같아서 흉악무도한 걸왕을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지 않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니, 이 나라가 바로 은(殷)나라이다. 정통 역사가들은 요순(堯舜)이나 하(河)나라는 전설이고, 중국의 실제 역사를 은(殷)나라 때부터 라고 인정한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유적의 발굴로 요순(堯舜)이나 하(河)나라 시대의 유물들이 발굴되기도 해서 그 시대가 그저 신화나 전설로 취급되는 것이 맞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거다. 아무튼 탕왕(湯王) 이후 5백여 년의 찬란한 왕업을 이어가던 은나라가 오늘의 주인공 주왕(紂王)을 맞이했다. 주왕(紂王)은 힘이 장사인 데다 흉포(凶暴)함까지 겸비했다고 전해진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고 힘이 넘치는 남자는 당근 여자를 찾게 돼 있다. 주왕(紂王)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미녀 찾아 삼만리’, ‘꽃보다 미녀’, ‘미녀와 함께 춤을’ 이 따위 콘텐츠의 감독(監督), 연출(演出), 주연(主演), 각색(脚色), 제작(制作), 배급(配給) 등을 총지휘한다.

주왕(紂王)의 이름은 신(辛) 또는 수(受)이다. 아버지 을왕(乙王)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상(商)나라의 29대 왕이 되었다. 그는 신체가 장대(壯大)하고 외모가 준수(俊秀)하며, 총명(聰明)하고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군사적 재능이 있어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어느 날 주왕(紂王)이 문무백관을 이끌고 어양원(御陽苑)을 찾아 제(祭)를 올리는데, 어양원(御陽苑)에 있던 아리따운 여인의 조각상을 보고 주왕이 몽롱(朦朧)해진다. 궁전에 있는 어떤 미인도 저 여인상의 발뒤꿈치에 미치지 못하니, 궁으로 돌아온 뒤로 주왕은 눈에 삼삼한 그 여인상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 참고로 희랍신화(希臘神話)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하나 있다. 키프로스의 조각가인 피그말리온(Pygmalion)은 성적(性的)으로 문란(紊亂)한 키프로스의 여인들에게 혐오감(嫌惡感)을 느껴 여인들을 멀리한 채 조각을 하는 데만 몰두하다가, 갈라테아(Galatea)라는 이름의 이상적인 여인상을 조각했다. 그는 자기가 만든 조각상의 너무나 아름답고도 정교한 자태에 그만 사랑에 빠진다. 옷을 입히고 장신구(裝身具)를 해주고, 마치 아내라도 된 양 보듬는다. 급기야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상을 자기의 아내로 점지(占指)해 달라고 빌자, 아프로디테(Aphrodite) 여신이 이를 가상히 여겨 조각상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실제 여인이 된다. 그리하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신화다. 이후로 심리학에서는 자기가 바라는 바를 이미지화해서 닮아 가는 현상을 피그말리온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표현한다. 주왕(紂王) 이놈도 그때 벌써 그리스 신화를 탐독(耽讀)했는지 이 따위 상상을 하며 식음전폐(食飮全廢)를 하고 난리일까.

아무튼 어양원(御陽苑)에 다녀온 뒤 내내 울적해있는 주왕의 심기(心氣) 때문에 신하들은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대개 간신(奸臣)들은 윗사람 눈치 살피는데 가히 선천적, 천부적 신통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간신들이 알랑방귀를 뀌어 댄다. “폐하. 미인이 눈에 밟혀서 그런 병이 생긴 게 제 눈에 환히 보입니다. 듣건대 유소(有蘇: 지금의 하남河南 초작시焦作市 온현溫縣) 지방의 소후(蘇侯)에게 딸이 있는데 천하일색(天下一色)이라는 소문입니다.”라고 건의하자 즉각 징발령(徵發令)이 내려졌다.  그러나 유소의 소후는 강직한 사나이로서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주왕의 비위를 건드리고 만다. “궁중에는 미녀가 이미 수천을 헤아리는데 뭐가 또 부족합니까? 간신배(奸臣輩)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국정(國政)이나 잘 돌보십시오. 훗날 충남 안모(安謀) 지사(知事)처럼 되지 말고요.”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주왕은 옳거니 싶어 대군(大軍)을 동원해 유소를 에워싸고 협박한다. “너희 성(城)과 백성들 모조리 쑥대밭을 만들어 줄까? 아님 딸내미 내놓을래?” 이때 스스로 죄인 복장(服裝)을 한 여인이 주왕 앞으로 등장한다. “소녀가 아버님을 대신해서 용서를 비옵니다.”라면서 교태롭게 절을 오렸다. 그냥 가만히 보기만 해도 요염(妖艶)하고 교태(嬌態)가 좔좔 흐르는 그녀는 바로 달기(妲己)이다. 주왕은 눈이 튀어나오고, 입이 째지며 침이 질질 흐르며, 덥석 안고 싶어 안절부절못한다.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되는 법이지. 목욕재계(沐浴齋戒)는 했겠지? 얼른 내 침상에서 하늘에 감사의 육제(肉祭)를 올리자.” 대군의 포위망을 풀고, 뒤도 안 돌아보고 환궁(還宮)한다. <좌전(左傳)>에 따르면 달기는 성(姓)이 기(己)이고, 씨(氏)는 소(蘇)이며 이름(名 또는 字)은 달(妲)이다. 유소씨(有蘇氏)의 여인으로 세상은 그녀를 소달기(蘇妲己)라고 불렀다. 이 무렵 중국에서 여성 인명의 표기는 자(字)를 앞에 적고 성(姓)을 뒤에 적는 것이 풍습이었다고 한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하(河)나라의 말희(妺喜)와 약간 비슷해서 어느 것이 각색인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아무튼 이렇게 두 사람의 랑데부가 시작되어 은(殷)나라의 폐망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사마천 <사기(史記) · 은본기(殷本紀)>에 따르면, 주왕의 초기부터 정치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이 있었는데, 그 세 사람은 구후(九侯), 악후(鄂侯), 서백(西伯)이었다. 구후(九侯)는 자신의 예쁜 딸을 주왕에게 시집보냈는데, 딸이 남편인 주왕의 음탕한 짓에 따르지 않고 도리어 주왕의 지나친 음행(淫行)을 지적하며 멈추어 줄 것을 청하였다. 화가 난 주왕은 구후(九侯)의 딸을 죽이고, 또한 장인인 구후(九侯)도 죽여 버렸다. 그리고 구후(九侯)의 시체로 젓갈을 만들었다. 이러한 악독한 짓을 보고 삼공 중의 한 명인 악후(鄂侯)가 잘못된 처사라면서 간언하자, 주왕은 악후(鄂侯) 마저도 죽여 버렸다. 그리고 악후(鄂侯)의 시체로 육포(肉脯)를 만들었다. 마지막 남은 서백(西伯)이 이를 듣고 탄식을 하자 곁에서 그 모습을 본 숭후호(崇侯虎)가 이를 주왕에게 고자질하였다. 주왕은 서백을 유리(羑里) 땅에 있는 옥에 가두어버렸다. 서백(西伯)의 신하들이 미녀와 재물을 바쳐서 서백(西伯)이 풀려나서 나중에 주(周)나라의 문왕이 된다. 이 모든 게 달기(妲己)의 사주를 받아 주왕이 저지른 일이다.

달기(妲己)는 하(河)나라의 말희(妺喜) 못지않게 음란(淫亂)한 여자였으며, 왕이 폭정을 일삼게 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요녀(妖女)였다. 달기(妲己)는 서글서글한 큰 눈을 가졌으며, 얼굴은 홍도(紅桃)와 같은 색이었고, 피부는 백옥(白玉)같이 희고 비단결처럼 부드러웠다고 한다. 특히 달기(妲己)는 도화장(桃花裝)이란 요즘으로 치면 연예인 화장술을 발휘하였는데, 이는 여러 종류의 복숭아 꽃잎으로 즙을 짜서 연지(燕脂)라는 걸 만들어 얼굴에 바르는 화장법이었단다. 명(明)나라 때 봉신방(封神榜)을 지은 허중림(許仲琳)은 달기(妲己)가 방중술(房中術)에 능하여 주왕을 꼼짝 못 하게 하였다면서, 그를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술하였다. “달기(妲己) 방중술(房中術)의 비밀은 바로 음부(陰部)의 오묘함에 있었다. 그곳은 자유자재로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겹겹의 주름으로 이루어졌다. 남자의 성기(性器)가 들어오면 피스톤 운동을 안 해도 저절로 사정(射精)하게끔, 미끈거리면서 쪽쪽 빨아들이고, 부드럽게 조이고, 감미롭게 마찰하고, 수백 마리의 지렁이가 꿈틀거리듯 하였다. 주왕의 물건이 한번 들어가면 쾌감이 극에 달해 빠져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달기(妲己)의 음부(陰部)는 명기(名器)중의 명기(名器)였다.”라고 묘사했다. 중국에는 고대로부터 남녀 성기를 평판하는 5호(五好)라는 기준이 있었다. 여자의 경우에는 긴(緊 : 질이 좁고 팽팽게 질긴 것), 난(暖 : 질속이 온화하고 따뜻함), 향(香 : Cunnilingus를 할 때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것), 건(鍵 : 성기가 열쇠처럼 남성을 잠글 것), 천(淺 : 질 길이가 짧아 곧장 자궁에 도달하는 것) 등을 명기(名器)로 꼽았는데, 달기는 그 조건에 하나도 부족함이 없었다. 한편 남성의 명품(名品)에도 대(大 : 크기), 경(硬 : 경직도), 혼(渾 : 정액의 량), 견(堅 : 발기 각도), 구(久 : 지속도) 등을 갖춰야 여성을 잠자리에서 홍콩으로 보내서 천상의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중국은 예로부터 특히 방중술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옥방지요(玉房指要)’, ‘현녀경(玄女經)’, ‘소녀경(素女經)’, ‘대청경(大淸經)’, ‘옥방비결(玉房祕訣)’ 등 많은 비술(祕術)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왕실 권력 다툼의 대부분이 권력자와의 밤무대를 독차지하려는 여인들의 암투(暗鬪)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 싸움에서 그녀들의 주 무기가 대부분 방중술이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달기(妲己)는 하(河)나라 말희(妺喜)가 한 것처럼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어 주왕과 음탕(淫湯)하게 즐겼다. 백성의 세금과 노동으로 호사스러운 궁궐과 각종 보석으로 치장된 녹대(鹿臺)라는 누각(樓閣)을 짓도록 하였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은 술로 가득 채운 연못(酒池)의 주변에 나무를 비단으로 휘감은 뒤 고기를 매달(肉林)아 놓고, 달기와 함께 배를 타고 노닐면서 손이 가는 대로 고기를 따서 먹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주지육림이 완성되자 주왕은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남자는 반드시 여자를 업고 과인(寡人)이 있는 곳까지 와야 한다.”고 명했다. 잔치에 참가한 천여 명의 남녀가 전라(全裸)의 몸으로 숲속에서 서로 엉켜 붙었단다. 이러한 환락(歡樂)의 날이 120일 동안 이어졌으므로 이를 ‘장야(長夜)의 음(飮)’이라 일컬었다. 녹대(鹿臺)의 크기는 넓이가 1리(里)나 되었고, 높이는 1천 척(尺)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였고, 거교(鉅橋)라는 창고에 곡식을 채우고 개, 말과 기이한 물건들로 궁실을 가득 채웠다. 또한 7년에 걸쳐 경궁(瓊宮)과 옥문(玉門)을 만들었는데 그 크기가 3리(里)에 달하고, 높이는 이천 척(尺)이나 되었다. 사구(沙丘)의 원대(苑臺)를 넓히고 들짐승과 날짐승을 모아 그 안에 풀어 길렀단다. 달기가 주왕에게 하늘의 별을 따서 갖고 싶다고 하자, 녹대(鹿臺) 위에 적성루(擿星樓)를 만들어 주었다. 별을 따는 누각이다.

그 후 주왕과 달기의 환락은 점차 도를 넘어 변태적(變態的), 가학적(加虐的)으로 변해갔다. 그들은 포락(炮烙)의 형벌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웃고 즐겼다. 포락(炮烙)이란 뜨거운 불에 통째로 지지거나 태우는 것을 말한다. 장작불 위로 구리로 만든 큰 기둥에 기름을 칠한 후 가로로 걸어놓은 다음, 그 위로 벌거벗은 사람을 걸어가게 하였다. 미끄러워서 떨어지면 그대로 불에 타서 죽게 되는 형태이었다. 만약 구리 기둥을 끝까지 걷는다면 죄인을 용서해 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떨어지지 않고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채분지형(蠆躉之刑)이라는 형벌은 사람들을 깊은 구덩이에 밀어 넣어놓고, 그 속에 독사와 전갈을 함께 넣어 처형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형벌을 달기가 고안했다니 가히 세기(世紀)의 사디스트(Sadist)가 아닐까 한다. 어느 날 주왕과 달기는 녹대(鹿臺)에서 비빈(妃嬪)들을 모아놓고 함께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달기의 꼬임에 빠진 주왕이 갑자기 모든 비빈(妃嬪)에게 옷을 벗고 나체로 춤을 추라고 명하였다. 비빈들은 부끄러움에 주저하였지만, 왕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하나둘 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주왕과 달기는 그런 보습만 보고도 크게 웃으며 즐거워하였다. 그러나 정비(正妃)의 후궁이었던 72명은 옷을 벗지 않고 얼굴을 가린 채 울면서 명령을 거두어 달라면서 버텼다. 달기가 크게 화를 내면서 주왕에게 고(告)하였다. “적성루(擿星樓) 앞에 웅덩이를 판 후 거기에 독사와 전갈 등을 집어넣은 다음 저들을 같이 밀어 넣으십시오. 이것이 바로 채분지형(蠆躉之刑)이라는 것입니다.” 달기는 사람들이 구덩이에서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한 번은 달기가 임신부를 보고는 주왕에게 태아의 성별을 감별(鑑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녀가 교접(交接)할 때에 남자의 정액(精液)이 먼저 여혈(女血)에 닿은 후 내려가면 음이 양을 안는 형태가 되어 반드시 아들을 낳으며, 반대로 여혈(女血)이 남자의 정액에 먼저 이른 다음 내려가면 양이 음을 안는 형국이 되어 딸을 낳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왕이 도성(都城)의 임산부 십여 명을 잡아오게 하여, 일렬로 세운 다음 달기로 하여금 성별을 맞추어 보라고 하였다. 달기는 차례로 살펴본 후 태아의 성별을 말하고, 주왕은 그때마다 임산부의 배를 갈라 달기의 말을 확인하였다. 임산부들은 고통과 자식을 잃은 슬픔에 목 놓아 울었다. 주왕과 달기는 피투성이가 된 채 비명을 지르는 임산부들을 보면서 깔깔거리며 즐거워하였다. 주왕과 달기의 만행(蠻行)과 변태적(變態的) 행위는 끝이 없었다. 달기는 주왕의 충신 구후의 딸을 데려다 알몸둥이로 침대기둥에 묶어 놓고 미꾸라지를 그녀의 음부에 집어넣게 했다. 미꾸라지는 습한 곳을 좋아해 음부 속으로 파고 들어가 몸부림치는 그녀의 모습을 달기는 묘한 웃음마저 지으며 즐겼다. 그러나 조정에는 잘못을 지적하는 신하들이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한 사람만이 주왕의 잘못을 두고 충언을 하였는데, 그는 주왕의 숙부인 비간(比干)이었다. 비간은 주왕에게 달기를 멀리하고 국정에 전념해야 한다는 직언을 자주 하였다. 그래서 세간에서 그를 성인(聖人)으로 추앙하였다. 그러자 달기는 자신을 음해(陰害)하는 비간을 죽이고자 마음먹고는 주왕에게 자신이 심장이 좋지 않는데 심장병을 낫게 하려면 성인(聖人)의 심장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비간이 진실한 충신이라면 증거를 있을 겁니다. 옛날 말에 성인은 심장에 구멍이 일곱 개가 있다고 합니다. 과연 그러한지 비간의 심장을 한번 꺼내 보세요.” 주왕은 가뜩이나 사사건건 직언하는 비간을 귀찮게 생각하고 있던 차, 달기의 말을 듣고는 숙부인 비간의 가슴을 갈랐다. 또 다른 주왕의 숙부인 기자(箕子)가 앞일을 도모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일부러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며 다른 사람의 노예로 들어가 은둔(隱遁)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주왕은 기자를 잡아서 옥에 가두었다. 옥에 갇혀 있다가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킬 때 풀려나서, 동쪽으로 와서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세운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기자조선의 실체는 아직까지 오랜 논쟁이 이어질 뿐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수는 없다.

하여튼 달기와 주왕의 폭정(暴政)으로 희생된 사람은 부지기수이다. 그중에서 굵직한 사건들 몇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① 두원선(杜元銑)

두원선(杜元銑)은 태사(太史)이라는 직책의 노대신인데, 주왕의 황음무도(荒淫無道)한 것을 보고 “색(色)을 멀리 하고 정사(政事)에 힘을 쓰시옵소서.” 간언 했다. 달기가 아재 개그를 시전(示轉)하면 충동질해 댄다. “어머나, 폐하는 저와 정사(情事)에 힘을 있는 대로 쓰는데, 또 무슨 정사(政事)를 돌보란 말이죠?” 그래서 말 한마디 건의로 두원선(杜元銑)의 목은 잘려서 성문에 걸리게 된다. 워낙 싫증을 잘 내는 달기라서 끊임없이 재미있는 것을 추구한다. 달기가 궁정의 정통음악이 지루하고 싫다고 하자, 주왕은 즉시 음악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쌈박한 다른 음악을 만들게 하였다. 악사(樂師) 사연(師涓)이 끈적끈적하고 흐느적거리는 관능적(官能的)이고 자유분방한 음란(淫亂) 가요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비지무(北鄙之舞 : 북방 변경의 비천한 춤)와 미미지악(靡靡之樂 : 음탕하고 퇴폐적인 악곡)이라 불린다.

② 매백(梅伯)

매백(梅伯)은 주왕 시절의 제후(諸侯) 겸 상대부(上大夫)였는데, 사람됨이 정직하고 주왕의 폭정에 대한 간언을 올렸다. “요물을 멀리 하소서”라는 한마디에 매백(梅伯)은 포락(炮烙)이라는 형을 받고 불에 타 죽는다. 일설에는 주왕이 매백(梅伯)을 죽여서 토막을 내어 소금에 절여 젓갈로 담가 처벌했다고도 한다.


③ 주왕의 정실부인 강황후

정실부인 강황후는 삼공(三公)인 구후(九侯)의 딸로서 현숙(賢淑)하여 남편인 주왕에게는 뭐라 하지 않고 후궁 신분인 달기를 불러 야단친다. “너 때문에 왕이 국사를 멀리하고, 충신들을 죽이고 있다. 너 따위가 예쁘면 다냐? 너 나중에 알겠지만, 조선 땅 5공 때 여배우 장모(張謀)가 당한 거 알게 될 거야. 함부로 까불지 마.” 그 당시 자객 강환이 주왕을 습격한 사건이 있었는데, 달기는 이를 강황후에게 덮어씌웠다고 한다. 강황후의 자백을 받기 위해 눈을 파내는 등 악행을 저질렀고, 강황후를 변호한 황귀비 또한 사형을 받았다. 달기의 역공에 휘말려 강황후는 눈알이 뽑힌 채 포락형(炮烙刑)으로 죽임을 당한다.

④ 강황후의 궁녀들

강황후를 처형하고 달기가 주왕과 술을 마시다 기분이 업(Up) 되어서 한바탕 테크노댄스를 추는데 모든 궁녀들이 하트를 그리며 기립박수를 치는데, 영 반응 없이 훌쩍거리는 궁녀들이 있었다. 기분이 영 잡친 달기가 족쳐서 물어보니 강황후를 모시던 궁녀들 아닌가? 그래서 달기는 또 하나의 끔찍한 형벌인 채분지형(蠆躉之刑) 또는 돈분지형(躉盆之刑)을 추천한다. 구덩이 안에 독사와 전갈 떼를 넣은 뒤 사람을 발가벗겨 밀어 넣어 죽이는 혹형(酷刑)이다.


⑤ 삼공(三公)

삼공(三公)은 구후(九侯), 악후(鄂侯), 서백(西伯)인데, 서백만 유폐되고 둘은 처형된다. 구후(九侯)는 강왕후의 아버지로 주왕의 장인이다. 구후(九侯)는 주왕의 호색을 알아서 그래서 조신한 미녀를 골라 주왕에게 바쳤다. 그런데 주왕은 그 미녀가 음란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여 홧김에 그녀를 죽였다. 그리고 미인을 바치고 간언한 장인 구후(九侯)를 소금에 절이는 해형(醢刑)에 처했다. 악후(鄂侯)는 이러한 주왕의 비행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조리 있게 죄를 추궁하였는데, 주왕은 크게 노하여 그를 포를 떠서 말려 죽였다.

⑥ 삼현(三賢)

삼현(三賢)은 모두 왕족인데, 주왕의 숙부인 비간(比干)과 기자(箕子), 배다른 형제인 미자(微子)이다. 미자(微子)는 주왕의 학정을 간(諫)하다 포기하여 도망치서 주(周) 무왕에게 주왕을 치라고 한다. 비간(比干)은 심장을 드러내도록 처형되고, 기자(箕子)는 주왕의 난행을 두려워하여 일부러 미친 척하고 노예가 되었으나,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주왕이 그를 옥에 가두어버려 목숨을 살렸다. 참고로 중국 역사에 나오는 참혹한 형벌의 종류를 보면 달기가 고안하고, 주왕이 실행했다는 포락지형(炮烙之刑), 채분지형(蠆躉之刑), 소금에 젓갈 담그는 해형(醢刑) 이외에도 많다.

① 팽형(烹刑) : 펄펄 끓는 물이나 기름 가마에 산 사람을 넣어 삶아 죽이는 형벌.

② 능지형(凌遲刑) : 원(元)나라 때부터 시작된 능지형(凌遲刑)은 죄인을 기둥에 묶고 산채로 포(脯)를 뜨는 형벌로 백 번, 천 번 칼질해 죽인다고 해 백각형(百刻刑), 또는 살천도(殺千刀)라고도 한다. 언덕을 천천히 오르내리듯 사람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인다고 해 능지(凌遲)라는 이름을 얻은 이 형벌은 대역죄(大逆罪)를 범한 자에게 내려졌던 최대 극형이다. 능지형(凌遲刑)은 대개 팔다리와 어깨, 가슴 등을 먼저 베고 마지막에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어 죽였는데, ‘능지 500도’, ‘능지 1000도’와 같이 구체적인 횟수를 지정해 처했으며, 지정된 횟수를 채우기 전에 죄인이 죽을 경우에는 집행자(執行者)에게도 엄벌이 내려졌다고 한다.

③ 거열형(車裂刑) : 목과 팔, 다리를 소나 말이 끄는 각각 다른 수레에 매고 끌어 죄인을 찢어 죽이는 형벌이다. 소나 말의 힘을 사용한다 해서 ‘오마분시(五馬分屍)’나 ‘오우분시(五牛分屍)’라고도 부른다.

④ 요참형(腰斬刑) : 거대한 작두로 허리를 자르는 형벌로 진(秦)나라 승상(丞相)이었던 이사(李斯)가 이 형벌을 받았다.

⑤ 박피형(剝皮刑) : 살가죽을 벗기는 형벌로 처음에는 죽은 다음 벗겼으나 갈수록 잔인해져서 산 채로 벗겼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선호했다.

⑥ 액수형(縊首刑) : 교수형과 비슷하지만 이는 천천히 목을 졸라 죽인다. 송나라 명장인 악비(岳飛)가 당했다.

⑦ 청군입옹형(請君入甕刑) : 항아리에 넣고 불을 때서 태워 죽이는 형벌로 당나라 때 내시인 내준신(來俊臣)이 고안했던 형인데 본인이 당했다.

⑧ 활매형(活埋刑) : 산 채로 땅에 파묻는 형이다. 근대에 와서 일제(日帝)가 많이 활용했다.

⑨ 궁형(宮刑) : 엄형(嚴刑) 또는 엄할(閹割)이라고도 하는데,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이다. 사마천이 사형 대신 이 형벌을 자청했다.

⑩ 기타 : 머리, 팔, 다리, 귀를 자르고 눈알을 파내는 구오형(俱五刑), 손자병법을 쓴 손빈(孫矉)이 받은 무릎의 슬개골을 잘라내는 빈형(臏刑), 화씨벽(和氏璧)을 바쳤다가 받은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 등이 있다.

순리(順理)를 역행하고 천리(天理)를 거역(拒逆)하는 주왕의 폭정은 많은 이웃 제후(諸侯) 나라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이윽고 주(周)나라의 무왕(武王) 희발(姬發)이 천하의 제후를 모아 은(殷)나라를 궤멸시킨다. 이때가 기원전 1122년으로 은나라는 끝나고, 무왕이 일으킨 주나라가 시작된다. 주나라 무왕의 군사에게 패한 은나라 주왕은 수많은 보석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스스로 녹대(鹿臺)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죽었단다. 한편 달기는 무왕의 군사에게 사로잡혔는데, 처형장을 끌려갈 때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이 마치 배꽃이 봄비를 흠뻑 머금은 것 같았다고 한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들은 팔에 저절로 힘이 빠져나가서 칼을 떨어뜨렸으며, 혹은 팔이 마비되어 아예 칼을 들기조차 하지 못하였다. 또 젊은 형리(刑吏)들은 아랫도리가 뻣뻣해져서 차마 처형을 못하고 머뭇거렸단다. 이때 고자나 나이 70세가 넘은 늙은 형리가 나와 칼을 잡았는데, 달기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져 그 얼굴을 보자기로 가린 후에야 목을 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다. 다른 일설은 무왕을 도운 강태공(姜太公)이 몰래 빼돌려 첩으로 삼았다는 것도 있는데, 낭설(浪說)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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