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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暮春滻水送別(모춘산수송별)

漢詩工夫(241218)

by 금삿갓

暮春滻水送別(모춘산수송별) / 늦은 봄 산수를 떠나며

- 韓琮(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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綠暗紅稀出鳳城

녹음홍희출봉성

●●○○●●◎

녹음 짙어지고 붉은빛 드물 무렵 궁궐을 나오니


暮雲宮闕古今情

모운궁궐고금정

●○○●●○◎

저녁노을의 궁궐은 예나 지금이나 정겹네.


行人莫聽宮前水

행인막청궁전수

○○●●○○●

가는 사람이여, 궁 앞 물소리 듣지 마오.


流盡年光是此聲

류진년광시차성

○●○○●●◎

흘러가 버린 세월이 바로 저 소리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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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暮春(모춘) : 늦은 봄.

* 滻水(산수) : 滻河(산하). 산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서남쪽 진령(秦嶺)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파수(灞水)와 합류한 후에 대명궁(大明宮)을 지난 뒤 위수(渭水)와 합해져서 동쪽으로 흐른다.

* 綠暗紅稀(녹암홍희) : 잎이 무성해지고 짙어지니, 붉은색으로 대표되는 꽃은 거의 드물어진다. 즉 늦봄 초여름의 전형적인 자연현상을 묘사한 구절이다.

* 鳳城(봉성) : 수도의 미칭. 궁궐.

* 行人(행인) : 길 떠나는 사람.

* 年光(연광) : 시기.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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綠暗紅稀(녹암홍희)는 正是暮春時候(정시모춘시후)라. 鳳城(봉성)은 長安城也(장안성야)라. 許琮(허종)이 於此送別(어차송별)이라. 當今(당금)에 客(객)이 日暮而望雲中宮闕(일모이망운중궁궐)하니 古今來人情(고금래인정)이 誰不於此(수불어차)에 瞻戀(첨연)이리오. 行人莫聽宮前水(행인막청궁전수)는 言行人(언행인)은 泛指行路之人(범지행로지인)이요. 宮前水(궁전수)는 盖從宮中流出(개종궁중류출)하야. 其聲(기성)이 晝夜不息者(주야불식자)라.

綠暗紅稀(녹암홍희 : 녹음은 짙어지고 붉음은 옅어지고)는 바로 늦봄의 계절이다. 鳳城(봉성)은 장안성이다. 許琮(허종)이 여기서 송별한 것이다. 지금 객이 해 질 녘 멀리 구름 속의 궁궐을 바라보니 옛날에서 지금까지 온 인정으로 누군들 이에서 사모하지 않겠는가? 行人莫聽宮前水(행인막청궁전수)의 行人(행인)은 두루 길가는 사람들을 가리킨 것이요. 宮前水(궁전수)는 아마 궁궐 안에서 흘러나와 그 소리가 밤낮으로 쉬지 않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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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盡年光(류진년광)은 言水流不息(언수류불식)하고 年光如駛(연광여사)하니 是年光(시연광)이 若彼此水流盡了(약피차수류진료)하고 人在流水聲中離別(인재류수성중리별)하니 少年人(소년인)은 不知做多少白頭(부지주다소백두)라. 水聲(수성)이 雖妙(수묘)나 聽之(청지)에 無乃移情故莫聽(무내이정고막청)이라. 琮(종)의 送別(송별)이 未知何人而綠暗紅稀(미지하인이녹암홍희)는 別時之景也(별시지경야)요. 暮雲宮闕(모운궁궐)은 望之之情也(망지지정야)요. 莫聽水(막청수)는 光陰(광음)이 如流水而人生之離別(여류수이인생지리별)이 尤可悲也(우가비야)라.

流盡年光(류진연광)은 물이 흘러 쉬지 않고 세월이 달리는 것이니 세월이라는 말이니, 피차간에 물 흐르듯 모두 흘러가 버린 것과 같아서, 사람이 그런 소리 나는 가운데에서 이별하니 나이 젊은 사람은 흰머리가 얼마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물소리가 비록 묘하나, 그것을 듣고 정을 옮길 수 없으므로 듣지 말라는 것이다. 한종의 이별이 누구와 이별하는지 모르겠지만 녹음이 우거지고 꽃이 드물다는 것은 이별하는 시기의 풍경이다. 저녁노을의 궁궐은 멀리 바라보는 정경이요. 물소리를 듣지 말라는 것은 세월이 물 흐르듯 하여 인생의 이별이 더욱 슬퍼할 만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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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종(韓琮) : 자는 성봉(成封)이다. 初唐(초당)의 시인. 魏州(위주) 사람. 당(唐) 문종(文宗) 태화(太和) 말년을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인물로 고향과 생몰연도 모두 알려져 있지 않다. 장경(長慶) 4년(824) 진사에 급제한 뒤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 등을 지냈고, 시집 1권이 전한다. 호남관찰사로 있을 때, 아랫사람인 석재순(石載順) 등에게 쫓겨났는데 선종(宣宗)이 한종에게 군대를 보내 반군을 진압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우금오장군(右金吾將軍) 채습(蔡襲)을 한위 대신 호남관찰사로 보냄으로써 한종이 관직을 잃게 되었고, 그 뒤로 그에 대해 알려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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