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궁인을 위해 가탁하여 버들을 읊은 노래이므로 장궁문이 잠겼다고 말한 것이다. 交影(교영 : 그림자가 엇갈리는 것)은 그 은밀함을 말한 것이다. 柳(류 : 버들)는 자신의 젊음을 비유했고, 雨露(우로 : 비와 이슬)는 임금의 은혜를 비유했다. 鳳輦不來春欲盡(봉련불래춘욕진 : 임금의 수레 오지 않고 봄은 다하려는)은 “임금은 행차하지 않고 또 남은 봄에 걸맞게 꽃다운 향기가 다하고 세월이 흘러 봄빛을 등진 것을 허물한다.”는 것을 말하니 참으로 슬퍼할 만하다. * 韶光(소광) : 春光(춘광). 봄 경치.
부질없이 꾀꼬리 말을 듣느라 황혼에 이른 것은 이 꾀꼬리의 울음을 말한 것이니, 대체로 붉음을 원망하고 푸름을 근심한 것일 뿐이다. 황혼에서의 사사로운 말을 누가 알아줄 것인가? 그러므로 공연히 머물렀다고 한 것이다. 이는 대개 임금의 맘을 얻지 못한 자가 있어서 궁녀의 원망을 가탁한 것이다. 이 시는 버들가지를 꺾음으로 제목을 삼았다. 위 두 구절은 버들이 드러나 있고, 아래 두 구절은 버들이 내면에 숨어있을 뿐이다.
* 段成式(단성식) : 당나라 제주(齊州) 임치(臨淄) 사람. 대대로 형주(荊州)에 살았고, 자는 가고(柯古)다. 단문창(段文昌)의 아들이다. 음보로 교서랑(校書郞)이 되었다. 박학(博學)이라는 영예를 안으면서 연구에 정진하여, 비각(秘閣)의 책은 모두 읽었다고 전한다. 특히 불서(佛書)에 정통했다. 거듭 승진하여 상서랑(尙書郞)이 되고, 길주자사(吉州刺史)와 태상소경(太常少卿) 등을 역임했다. 의종(懿宗) 함통(咸通) 초에 외직으로 나가 강주자사(江州刺史)가 되었다. 사직하고 양양(襄陽)에 살면서 한가롭게 자적(自適)했다. 이상은(李商隱), 온정균(溫庭筠)과 함께 사륙문(四六文)을 잘 지었고, 장주공문(章奏公文)에도 능해 당시 ‘삼십륙체(三十六體)’로 불렸다. 저서에 필기소설집(筆記小說集) 『유양잡조(酉陽雜俎)』 20권과 『속집(續集)』 10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