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교가 하남부 성 밖에 있어서, 낙수에 놓인 다리니 수양제가 세운 것이다. 첫 구절은 진교(나루의 다리)를 일으켜 모자로 삼았고, 봄 강물 속에 붉은 노을이 비치는 것이 마치 거꾸로 잠긴 것 같다는 것은 여기서 바라보는 중에 깨달은 것이다. 烟柳(연류 : 안개 버들)는 안갯속에 보이는 버드나무요. 風絲(풍사 : 바람의 실가지)는 바람 속에 흔들리는 실같이 늘어진 실버들가지다. 拂岸斜(불안사 : 언덕을 비껴 스침)는 버드나무가 푸르름과 함께 천진교 언덕을 스치니 이 또한 바라보고 얻은 것이다. 그러나 볼 수 있는 것은 다만 이와 같음이 있을 뿐이다.
金殿閉(금전폐 : 궁전의 닫힘)는 이런 적막한 풍경과 상황을 말한 것이다. 당나라가 낙양으로 동경을 삼고 전성시기에 자주 유람차 행차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내시들이 권세를 부리어 천자가 다시는 놀러 올 수 없었기 때문에 천자의 翠輦(취련)을 다시 볼 수 없었다고 하였으니 궁이 오래도록 닫힌 것이다. 上陽花(상양화)는 상양궁에 사람이 없고, 다만 앵무새만이 출입하며, 궁의 꽃 역시 구경하는 사람이 없어 도리어 앵무새의 물고 나옴을 당하여, 다리의 머리에서 한번 바라봄에 흥하고 쇠함이 슬퍼할만하니, 다만 이런 봄물, 붉은 노을,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가지, 안갯속에 보이는 버들 따위만 있어서 옛날도 이와 같았을 것이고, 지금도 이와 같을 뿐인 것이다.
* 雍陶(옹도) : 당나라 성도(城都) 사람. 자는 국균(國鈞)이다. 문종(文宗) 대화(大和) 8년(834) 진사가 되었다. 일찍이 시어사(侍御史)를 역임했다. 선종(宣宗) 대중(大中) 6년(852) 국자모시박사(國子毛詩博士)를 지냈고, 8년(854) 외직으로 나가 간주자사(簡州刺史)를 맡았다. 나중에 관직을 사양하고 귀은(歸隱)했다. 장적(張籍)과 왕건(王建), 가도(賈島), 요합(姚合) 등과 친했다. 시를 잘 지었는데, 여행의 정서를 담은 작품이 많다. 저서에 『당지집(唐志集)』 5권이 있다. 『전당시(全唐詩)』에서는 시를 1권으로 편집했고, 『전당문(全唐文)』에는 문장 2편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