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途中寒⻝(도중한식) / 가는 중에 한식

금삿갓의 漢詩工夫(250427)

by 금삿갓

途中寒⻝(도중한식) / 가는 중에 한식

- 宋之問(송지문)


⾺上逢寒⻝

마상봉한식

●●○○●

말 위에서 한식을 만나니


途中屬暮春

도중속모춘

○○●●◎

가는 길에 늦봄(3월)이 되었네.


可憐江浦望

가련강포망

●○○●●

강 포구를 바라보니 가련하구나.


不⾒洛橋⼈

불견낙교인

●●●○◎

낙교(고향) 사람들은 보이질 않네.

Screenshot 2025-04-27 at 12.51.30.JPG

寒⻝(한식)은 ⾃冬⾄(자동지)로 ⼀百五⽇之佳節也(일백오일지가절야)오. 暮春(모춘)은 三⽉也(3월야)라. ⾃洛城(자낙성)으로 乘⾺下鄕(승마하향)하여 適値寒⻝(적치한식)하니, 乃三⽉之候也(내삼월지후야)라. 此時(차시)에 思家之懷(사가지회)가 尤切故(우절고)로 乃於江浦(내어강포)에 遙遠望之則不⾒洛橋之⼈(요원망지즉불견낙교인)하야. 是以悵歎之不已也(시이창탄지불이야)러라.

한식(寒⻝)은 동지(冬⾄)로 부터 105일째 되는 좋은 명절이다. 모춘(暮春)은 음력 삼월이다. 낙양(洛陽)으로 부터 말을 타고 고향에 내려가는데, 마침 한식(寒⻝)을 만나니, 이에 삼월 달이다. 이때에 고향집을 생각하는 회포가 더욱 간절하므로, 이에 강가 포구에서 멀리 그곳을 바라보았으나 낙교의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이 슬픈 탄식을 마지못하노라.

Screenshot 2025-04-27 at 12.56.16.JPG

<위의 시는 오언절구인데, 중국의 각종 자료에는 오언율시로 되어 있다. 생략된 나머지 구절은 다음과 같다.>

北極懷明主(북극회명주) / 북녘 궁의 영명한 임금을 생각하며

南溟作逐臣(남명작축신) / 남쪽 바다로 쫓기는 신하가 되었네.

故園腸斷處(고원장단처) / 고향 생각으로 애끓는 그곳은

日夜柳條新(일야유조신) / 밤낮으로 버들가지가 새로워지네.

* 宋之問(송지문, 650?~712) : 송지문은 분주(汾州) 출신이거나 괵주(虢州) 홍농현(弘農縣) 출신이라는 기록이 있다. 자(字)가 연청(延淸) 또는 소련(少連). 당 고종(⾼宗) 상원(上元) 2년(675)에 진사. 심전기(沈佺期)와 함께 초당(初唐)의 대표적인 시인. ʻ심송(沈宋)’이라고 불렸다. 20세경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총신인 장역지, 장창종 형제의 눈에 들어 습예관(習藝館) 상문감승(尙⽂監丞)이 된 것이 벼슬길에의 시발이었다. 무후의 사후에 농주(瀧州) 참군으로 좌천되었다. 다시 돌아오자 역시 그때의 권력자 무삼사(武三思)에게 아첨하여 관직을 차지하는 등 파렴치한 행실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재주를 아끼고 사랑하던 중종(中宗)은 그를 수문관(修⽂館) 직제사(直學⼠)로 기용, 문학의 좋은 상대로 삼아, 군신(君⾂)의 신분을 망각한 주연(酒宴)에 빠졌었다고 한다. 그 후에 현종(⽞宗)이 즉위하자 광동성(廣東省) 흠현(欽縣)으로 유배되어 사사(賜死)되었다. 특히 오언시(五⾔詩)에 훌륭한 재능이 있었는데, 율시체(律詩體) 정비에 진력하여 심전기·두심언(杜審⾔) 등과 더불어 초당 후반의 문단에서 율시 유행의 선구로 공이 컸다. 문집에 ≪송지문집(宋之問集)≫이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5> 天津橋春望(천진교춘망) / 천진교의 봄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