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명절을 맞아 집에 내려왔다. 일찍 올라가는 바람에 집에 머무는 날이 많지는 않았다. 서울에 올라가기 전날, 요즘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있는 엄마를 위해 아이가 영어책을 낭독해 주겠다고 했다.
"어, 이 책은 엄마가 노래로 불러줬던 책이네요."
"The bear went over the mountain~, The bear went over the mountain~♪♬, 이렇게 노래로 불렀던 책이잖아요."
"어, 이 책은 엄마가 이렇게 소리 내서 읽어줬던 책이네요~"
아이는 어렸을 적 내가 읽어줬던 책을 보며 신이 나서 눈이 반짝거렸다.
"그게 다 기억나니?"
런투리드 'The bear went over the mountain'
그날 아이가 본 책들 대부분은 5세 이전에 읽어줬던 것이었다. 책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내가 읽어줬던 흉내를 내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엄마, 사람의 기억이란 게 정말 신기한 것 같아요."
"기억하려고 한 게 아닌데, 책을 보자마자 그때 책을 읽어줬던 엄마 목소리가 떠올랐어요. 노래로 불러줬던 책들은 저도 모르게 노래가 나오는데요."
"그래서 어려서 기억이 정말 중요한가 봐요."
아이가 올해 22살이 되었으니 벌써 17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 아이가 막 말을 시작하고 배워가던 시절 매일 밤 읽어줬던 영어 동화책의 기억이 아이에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작은 아이에게도 책을 보여주니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 읽어주었던 책과 엄마의 목소리를 아이들이 따뜻한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유아기는 아이들의 자아가 형성되고 인성의 기초가 만들어지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그래서 유아기에 영어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영어가 학습이 아닌 따듯한 엄마의 목소리와 사랑으로 기억된다면 어떨까?
유아기의 영어가 걱정이나 고민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영어를 '학습'이 아닌 아이와 '소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부모의 태도가 중요하다. 영어 동화책을 고를 때 역시 아이에게 영어 단어나 문장을 가르치는 교재가 아니라 아이와 소통을 위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동화책을 고른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에릭칼 영어동화책 'Papa, please get the moon for me' 중에서
요즘 블로그에 엄마표 영어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유아기 영어 교육에 대해 걱정하시는 부모님들의 질문을 자주 보게 된다.
'너무 어렸을 때 영어를 접하게 되면 모국어 습득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닐까요?'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영어까지 하면 아이가 스트레스받지 않을까요?'
'너무 어려서 그런지 아이가 영어 거부 현상을 보여요'
하지만 유아기 영어 교육은 그 자체보다 영어 교육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와 자세가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이제 막 말을 배우고 부모와의 유대관계를 형성해 가기 시작하는 유아기의 아이들에게 부모와 교감이나 소통은 무시한 채, 영어 단어와 문장을 가르치는데 초점을 둔 학습으로써의 접근은 아무리 좋은 교육 시스템과 교재를 활용한다 해도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유아기에 엄마의 목소리로 듣는 한글 동화책은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되고 부모와의 유대 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영어 동화책도 마찬가지이다. 영어 동화는 영어를 가르치는 교재가 아니라 부모와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동화책이라는 생각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내가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와 문장을 강요하며 영어를 가르쳤다면, 17년이 훨씬 지난 지금 책을 보며 즐겁게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해 낼 수 있었을까?
엄마표 영어는 엄마표 학원이 아닌 부모와 아이가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