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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슈슈 Jul 03. 2024

모로 가도 산티아고 (prologue)

10년 뒤에 쓰는 나홀로 여행기

 산티아고 길은 스페인의 유명한 성지순례길로 유럽의 여러 출발지에서 스페인 북부 갈라시아 지방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800km에 달하는 길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단순한 끌림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전투적인 삶을 살고 있던 이십 대 후반의 나에게 산티아고 길은 죽기 전에 한 번은 해보고픈 막연한 ‘버킷리스트’였다. <손미나의 여행기,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에서 작가는 ‘산티아고 길을 언제 가는지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때가 되면 산티아고 길이 나를 부른다.’고 말했다. 

나는 분명히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던 먼 북소리를 들었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던 그 울렁거림에 응답을 해야만 했다. 

<해바리기 밭이 끝없이 이어지던 카미노>

2013년 3월 나는 첫 직장이던 암 전문병원을 퇴사했다. 직장에서 꽤 인정받았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하던 상황이었다. 병원은 항상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는 업무들이 주어졌다. 그것은 육체적인 부담이기도 했지만 그때의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정신적인 부담을 넘어서는 양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던 와중에도 병실의 호출벨들은 끊임없이 울려 됐으며 누군가는 병실을 바꿔달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잘못도 나의 모자람도 아니었다. 내 머리는 항상 "할 수 있다!"를 외쳤고 그것은 엇나가면 안 되는 인생의 공식과도 같이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난 구멍은 통장에 박힌 숫자들이나 사회적 안정감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항상 무언가에 목이 말랐고 20년, 30년 뒤의 나를 생각했을 때 아득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중에서야 나는 그것이 번아웃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시엔 뭔가 그만두기도, 시작하기도 애매한 나이라 생각했는데 스물여덟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쇠도 씹어먹을 나이였다. 


여행의 끝을 산티아고로 잡고 시작했지만 애초에 여행의 콘셉트는 '퇴직금 탕진 여행'이다. 파워 J는 기절할 만한 여행 계획을 짰는데, 그것은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첫 번째 입국 국가와 도시만 정하는 것이었다. 

파워 P였던 나는 길을 걷다 우연히 Coldplay의 크리스 마틴이나 radiohead의 톰 요크를 마주치지나 않을까! 그라피티 아티스트인 뱅크시의 그림을 길가 담벼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무식한 생각으로 런던을 첫 여행지로 정했다. 여행 전에 런던 이후의 스케줄이나 어디로 갈 것인지 최소한의 루트도 일부러 정하지 않았다. 좋으면 한 달이건 그 도시에서 녹아들어 살아보고 싶기도 했고 상황에 따라 최대한 자유로운 여행이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퇴직금을 탕진해야 돌아오는 여행이었으므로 런던행 티켓만 구매한 채 돈 떨어지면 귀국하자는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출국 당일 일찍 도착해 남자친구와 지구 반대편으로 팔려가는 사람처럼 오열을 하며 눈물의 이별을 했다. 빠듯한 시간을 남겨둔 채 입국 수속을 하러 갔는데 대충대충 여행이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항공사 직원: "돌아가는 티켓은요?"
                                                                                              
나: "아... 없는데요? 편도행 티켓 있으면 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항공사 직원: "돌아가는 티켓 없으시면  불법체류자로 판단되어 도착과 동시에 한국으로 돌아오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수속하시겠어요? 지난주에도 한 분이 가셨다가 그대로 돌아오셨습니다."  
<나를 지리게 만든 문제의 편도행 티켓>

런던행을 단순히 KTX 타고 서울에서 부산 가는 걸로 생각한 나는 편도행 티켓만 있으면 어디든 프리패스인 줄 알았다. 

"차표 한장~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아니, 두장이 필요했다. 

역시 이래서 고생 안 하려면 사람들이 계획이라는 걸 하는구나 번뜩 느끼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티켓을 당장 구매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수속대에서는 티켓 구매를 없다는 말에 나는 공항 지하에 여행사가 몇 군데 있던 것을 기억하고 미친 듯이 뛰어가 아무 날짜나 대충 정해 귀국행 티켓을 샀다. (무계획 여행이므로 어디서 출국할지 몰라서 여행하며 환불했다.) 사이 흐르던 눈물은 들어갔다가 남자친구를 다시 오열을 하며 출국을 하게 됐다. 


영국-아일랜드-크로아티아-헝가리-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체코-스위스-이탈리아

그렇게 4개월간 구석구석 혼자 무계획 여행을 하고 있던 나는 원 없이 여행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긴 여행으로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무거운 배낭과 캐리어를 끌며 국가와 숙소를 계속 옮겨 다니다 보니 발목 상태가 안 좋아져 땅에 디딜 때마다 왼쪽 발목에서 찌릿한 통증이 지속됐다.

 ‘이 발목으로 과연 내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왕복 거리인 800km에 가까운 산티아고 길을 완주할 수 있을까?’ 

여행 중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산티아고에 다녀온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들의 여행기를 들을 때마다 내 심장은 다시 두근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관광객으로서의 여행은 무의미하다 생각한 어느 날,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갖고 있던 짐을 몽땅 한국으로 부치고 스페인으로 가는 티켓을 예약했다. 


 베니스에서 바르셀로나로 넘어가는 비행기에서 10년 전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는 백발 할머니를 만났다. 자고로 순례자의 가방은 가벼워야 하는데 내 배낭이 무거워 보인다며 직접 들어보고는 가방 무게를 더 줄여야 한다며 웃으신다.

8kg 남짓한 내 배낭 안에는 최소한의 세안용품과 위생용품, 일기장, 충전기, 갈아입을 옷 두 벌과 혹시나 모를 행사를 위한 블랙 미니 원피스가 들어있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Buen camino!!”(카미노 길 위에서 순례자들끼리 만나면 나누는 응원의 인사, 직역: 좋은 길!!)라고 외치며 힘껏 안아준 그 순간, 나의 순례길은 이미 시작되었다. 

“Buen camino!!”



이 여행기는 필자가 2013년 카미노를 걸은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1년이라는 시간적인 괴리가 있으므로 2024년 현재의 카미노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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