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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슈슈 Nov 07. 2024

방구석 기타리스트의 귀환

엄마여 기타를 잡아라!

 십여 년 만에 창고 구석에 처박혀있던 기타를 꺼냈다. 

한때는 내 자취방 침대 옆에서 항상 스탠바이하고 있던 녀석이었다. 두 아이가 더 어릴 적엔 장난감 삼아 바디를 두들기고 현을 튕기며 놀았고 언젠가 보니 기타의 줄감개가 부서져 악기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가방을 다시 열어 본 것이 몇 년 만인지 먼지를 하얗게 얹고 있는 기타가 세삼 낯설게 느껴졌다.

 

 ‘버릴 것인가? 새로 살 것인가’ 창고에 있는 기타 가방을 볼 때마다 들곤 했던 생각이었다.

기타를 들고 여기저기 훑어보다 줄감개만 고치면 다시 살려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갖고 오랜만에 기타 가방을 메고 홍대 근처에 있다는 수리점으로 향했다. 사용한지 오래돼서 수리하고 기타 세팅도 다시 해야 한다는 사장님의 설명을 들은 후 가게 한 쪽 벽에 걸려있는 기타들을 구경했다. 한가한 시간대였는지 사장님은 가볍게 던진 질문 하나에도 30만 원대 기타는 대부분 중국산으로 애매하다는며 50만원대 국내 생산 브랜드 몇 개를 알려주었다. 중고로 50만 원대 기타를 잘 사면 수리해서 써도 괜찮다는 팁을 마지막으로 말했다.

 “12만 5천원, 수리비는 선불입니다.”  

     

 신혼부부였던 10년 전, 남편은 일요일 오전마다 친구들과 조기 축구 모임을 가졌다. 방바닥에 뜨끈히 누워 혼자만의 여유를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성격이 못되었다. 황금 같은 주말인데 나도 뭔가 해보겠다며 찾아보다 발견한 ‘기타등등’이라는 이름의 기타 동호회. 이름이 심심하게 웃겨서 마음에 들었다. 연습실은 연남동 언저리 반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역시나 수강생들은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수강 첫  날, 한 명 씩 이름과 직업을 덧붙인 어색한 자기 소개가 이어졌고 나는 내 이름 석 자와 이 곳의 유일한 유부녀임을 밝혔다. 순간 그들은 매우 큰 리액션으로 나를 환영해주었지만, 나는 그때 이런 느낌을 받았다. 청춘 남녀의 만남의 장에 잠입한 유부녀의 위험한 외출?


 기타를 배우고 싶었을 뿐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저들과 다를 바 없었던 처지의 나였는데 결혼이라는 고개를 넘었더니 이 세계에서는 외계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몇몇 회원들은 다가오는 일요일을 채 기다리지 못하고 금요일 저녁이면 벙개 모임을 제안했다. 나만 모르는 그들의 대화가 단체 카톡방에서 핑퐁 되던 즈음 나는 요즘 너무 바쁘다는 뻔한 핑계를 대고 동호회를 그만두었다. 봄바람이 코끝에 스칠 것 같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라든지 10cm의 아메아메- 아메리카노-를 그들 사이에서 뚱땅거리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나의 열정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연말이 다가오던 어느 날, 동호회를 운영하고 몇몇 음원을 낸 적 있는 운영자님께서 연락을 해왔다. 


 “잘 지내죠? 우리 곧 연말 공연해요. 시간 되면 놀러 와요”


 아직 나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는 감사함을 느끼며 보내온 공연 포스터를 확대해 봤다. 당시 화제였던 미생이란 드라마를 패러디 한 듯한 회사원 컨셉의 공연 포스터. 목에 걸고 있는 회사 ID카드와 오피스룩을 입은 회원들의 모습은 미생 드라마에 보조 출연자들로 당장 투입돼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각양각색의 회원들이 모여 공연 준비를 하고, 사진을 찍어 포스터를 제작하는 이 과정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답을 보냈다.


 “감사해요! 저 근데 임신해가지고 가기 힘들듯해요 ^^”  

 그렇게 태어난 우리 집 두 아이들은 기타 속에 피규어를 넣어 흔들어대기도 하고 줄감개를 돌리며 거문고 튕기듯 튕기고 놀았다.     


 매년 영등포구에서는 평생 교육 바우처라는 이름으로 구민들에게 20만 원의 교육비 지원금을 신청받는다. 연초에 당첨되었다고 기뻐하던 마음과는 별개로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이 되어 연말이 될 때까지 묵혀만 두고 있었다. 연말까지 써야한다는 구청의 독촉 전화 두 번과 문자 네 번을 받고서야 기타 레슨까지 생각이 닿았다.  

- 아, 그럼 기타 코드는 어디까지 알고 계시나요?

- 저 기타 10년 만에 잡아봐요. 오기 전에 네이버로 어디까지 기억나는지 확인해 봤거든요. 머리로는 오픈코드, 하이코드 대충 기억나는데 손가락은 모르겠습니다.


 기억을 더듬으며 코드를 짚어봤지만, 소리가 촤라락이 아닌 퉁퉁퉁으로 탁하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손가락은 뇌의 명령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다. 중지야, 검지야 움직여라!

 선생님은 10년 만에 이 정도면 괜찮다며 나를 위로했지만 내 머리와 손은 한 시간 동안 따로 놀며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집으로 돌아와 학원에서 받은 악보를 받듯이 펴 파일에 넣었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얼떨결에 선곡한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 10년간 꿈쩍 않던 나의 음악 시계 톱니바퀴가 덜덜거리며 작동하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별것 아니다. 침대에 기대 내가 좋아하는 곡하나 코드를 짚어 가며 흥얼거릴 수 있는 것. 지금은 나 홀로 방구석 기타리스트로도 충만할 것 같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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