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어루만지는 마음으로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 크게 다치는 일이 있었다. 가로등에 얼굴이 부딪쳐 안경이 박살 나고 뺨에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열상이 깊게 파였다. 늘 그렇듯 사고는 순식간이다. 달리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던 상황도 아니었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내 눈앞에서 친구들과 까르르 웃고있던 아이는 평소보다 활기차 보였다.
놀이를 하자며 고개와 몸을 옆으로 크게 튼 순간, 아이는 깨달았을 것이다. 내 옆에 가로등이 있었다는 것을.
순간 쇠 구조물에 안경이 강하게 부딪히고 깨진 안경알이 아이의 뺨에 칼집을 넣었다. ‘텅’하고 큰 소리가 들려 나는 무의식중에 일어났다. 여섯 시가 겨우 넘었을 뿐인데 제법 어둑어둑해져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 발짝 더 다가가니 아이의 뺨을 타고 흐르는 피가 보였다.
직업이 보건교사인지라 열상 환자는 수도 없이 보았지만 내 아이 뺨에 난 상처에는 역시나 평정심을 찾기 힘들다. 놀람이나 속상함 따위는 내비칠 새도 없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급한 대로 티슈로 흐르는 피를 지혈하며 달려간 병원에서 다음 날 수면마취로 서른 바늘 가까이 봉합하게 되었다. 의사 말이 아주 세게 부딪혀서 크게 다쳤다며, 근육까지 깊게 찢어지고 상처 모양은 심지어 한 방향도 아닌 십자 모양이다.
이틀 내내 아이의 뺨에 새겨질 흉터 생각으로 가슴에 벽돌 한 장 얹은 것처럼 답답했다. 드레싱 된 왼쪽 뺨을 한 번 보고 통통하고 깨끗한 오른쪽 뺨을 어루만져본다. 이 예쁘고 통통한 뺨을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날을 울고 웃었나.
갓 백일이 지난 젖먹이 아들과 세 살 딸아이를 키우며 공부를 해보겠다며 잠을 줄여가며 책상 위에서 도를 닦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됐다며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만, 실상 현실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기관에 다니는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집 아이들도 한 달의 절반은 감기약을 달고 사며 유행하는 감염병으로 계절의 흐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시간은 늘 부족했고 마음은 절박했다.
열감기로 보채는 아이를 업었다 내렸다 반복하며 몸이 바스러질 것 같던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며 연신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잠겼다. 모녀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통화에 섞여 들어가다 눈물이 흘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끊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다 지나갔다. 무엇인가에 너무나 간절하고 타들어 가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미안하며 애잔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엄마와 짧게 나눈 통화나 마음을 담아 보내준 문자는 자주 내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한번 시원하게 울고 나면 다시 개운해져 부은 눈으로 책장을 넘기고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다.
아이의 뺨을 어루만지다 어른으로 성장하며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상처의 순간들을 생각해 본다. 마음을 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손에 잡히지 않아 절망하는 날도 오겠지. 한없이 작아져 나라는 존재가 먼지처럼 느껴지는 날도,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이 강물처럼 느껴지는 날도 오겠지.
하지만 아이야, 통증과 혈흔이 있는 상처에도 결국 피딱지가 붙고 단단해질 거란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 중에도 보이지 않는 상처 깊은 곳에서는 조직들 사이가 채워지고 혈관이 생겨나고 있단다.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에는 네가 제법 단단해진 마음의 상처를 알아챌 수도 있겠다.
‘상처가 옅어졌어.’
피부에 난 상처가 치료되듯 마음의 상처도 결국엔 옅어질 거란다. 너는 그 시간을 묵직하게 견디렴. 나는 네 곁에서, 상처를 빨리 낫게 하기 위해 발라주는 연고보다는 네가 그 시간을 견디고 옅어진 상처를 알아챌 수 있는 거울이 되고 싶구나.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