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수영장 문턱 넘기

삼십 대 끝자락에 잡은 버킷리스트

by 신슈슈
혹시 살면서 이건 꼭 배워둬야겠다는 것
있어? 난 그게 수영이었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영과 스페인어였는데, 사실 스페인어는 내가 앞으로 딱히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후 순위로 미뤄두기로 했지.


예전에는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물 앞에만 가면 아쉬운 맘이 들곤 했거든. 깊어 보이는 호수에서 머리를 든 채로 유유히 개구리 수영 (전문용어로 헤드업 평영)을 하던 외국인들이 그렇게 부럽더라.

마치 ‘나는 빨리 갈 필요 없소, 그저 물놀이를 즐길 뿐입니다’라는 식의 여유로운 바이브가 느껴지는 그 영법이 내 로망이었어. 나는 파라솔에 누운 채로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그들의 움직임을 흠모했었지. 수십 년 후 백발 머리의 할머니가 되어 남국의 어느 야외수영장에서 천천히 가라앉지 않을 정도의 움직임으로 떠다니는 나를 상상하면서 말이야.


20대에 떠난 배낭여행에서는 수영 못하는 나 자신이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나더라고. 여행 내내 어느 나라를 가도 호수나 바다에서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물어보니 유럽에서는 초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수영을 기본적으로 다 배운다네. (우리나라는 자유형을 제일 먼저 배우는 것과 달리 유럽은 생존이 목적이기 때문에 평영을 먼저 배워)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생존수영이란 것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몇 시간씩 배우긴 하지만, 이것도 국가적인 재난 사고가 터진 후 생긴 것이고 기본적으로 몸에 힘을 빼고 물에 뜨는 정도의 제한된 안전 교육 정도의 내용이라 수영을 제대로 배운다고는 할 수 없는 현실이야.


<이것이 나의 추구미>


아무튼 그 당시 나는 어릴 적 수영을 배우지 못한 안타까움과 대한민국 체육 교육에 대한 원망을 하며 언젠가는 수영을 꼭 배우겠다는 결심을 했어. 마침 작년에 육아 휴직에 들어가며 나에게도 수영 등록의 기회가 생겼거든. 그런데 수영은 시작이 어려운 운동이더라고. 문턱이 높다고 해야 하나. 수영을 등록하려고 찾아보니 집 근처에 수영장이 없네. 서울 한복판에 수영장이 이렇게 희귀한 것이었나? 왜 돈과 시간이 있는데 등록을 못하니...


‘수영장 어디로 가시나요?’ 지역 카페에 글을 올렸어. 누군가가 달아준 괴담스러운 댓글을 보며 쉽지 않을 수켓팅을 체감했지.

‘영등포구 제2스포츠 센터에서 가능한데, 기존 회원이 사망해야 티오가 생깁니다.’


수영 등록을 위해 이렇게나 비장해져야 하는 거였어?

몇몇 글을 검색하다 옆 동네에서 그나마 등록이 가능할 듯한 곳을 찾았어. 집에서 도보로 이십 분 거리에 위치한 곳인데, 쓰레기 소각장 등의 폐기시설이 있는 지역 주민을 위한 주민 편익시설이라 수강료가 엄청나게 저렴해. 영향 지역 주민은 주 3회 수영에 2만 6천 원, 비영향 회원도 4만 5천 원이라는 은혜로운 강습료라니.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육아휴직자에게는 더도 없는 곳이었지.

이제 등록만 하면 수영을 시작한다! 했는데, 신규 등록을 하려면 기존 회원들의 반 변경과 영향지역 주민들의 신규 등록 후에 남은 티오에나 등록을 할 수 있다는 거야. 생 신규 회원은 등록일 새벽 다섯 반부터 번호표를 뽑아 대기해라는데, 두 아이를 등교시킨 후 부랴부랴 반 포기상태로 도착했음에도 어쩐 일인지 신규 등록에 성공했어.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수영을 시작했어. 은혜로운 강습료의 이유를 모른 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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