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수영하는 여자

복직과 함께 시작된 새벽반 수강 후기

by 신슈슈

본투비 운동 무능력자로 나고 자라, 마흔 살 가까이 그리 살았다.


뒤늦게 맛 들인 물질에 어설프게나마 접배평자 흉내를 낼 수 있게 됐는데,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워킹맘의 복직


아침이면 아이들을 챙겨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다 교통체증에 지각할까봐 발을 동동 굴리며 출근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퇴근길엔 한 시간 넘게 집에 홀로 있을 아이가 생각나 헐레벌떡 뛰어 올 것이 뻔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을 챙기고, 옷을 채 갈아입지 못하고 밥을 안친 후 부랴부랴 저녁 준비를 하고선....

밥 먹고 치우고 애들 숙제시키고 씻기고 놀아달라는 아이들 성화에 보드게임 열판 즈음 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지겠지.


운동이란 두 글자가 끼어들 틈은 일상 어디에도 없었다.


출근 전 짬을 내 5킬로미터 내로 안양천 변을 달리던 날도 있었지만 새벽 동이 틀 무렵 혼자 뛰는 여자는 눈에 띄었다.

간혹 눈을 흘기며 따라붙던 불쾌한 눈빛들이 떠올라 고개를 젓게 됐다.


지금 놓아버리면 다시 등록도 쉽지 않을 테고... 겨우 재미 붙인 수영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다리에 매달려 가지 말라고 칭얼대지도 않고, 저녁 약속이 생겨 취소를 할 필요도 없으며, 누군가에게 육아를 부탁하지 않아도 될 나만의 시간.

이리저리 짱구를 굴려봐도 내가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새벽 시간뿐이었다.


24시간 중 워킹맘에게 맘 놓고 운동 할 수 있는 시간은 가족들이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라니.

하지만 나는 잠을 포기하고 운동을 해보겠다!(불끈!!)


다니고 있는 수영센터의 수영 스케쥴을 확인해 보니 출근 시간에 무리가 없으려면 여섯 시 강습이 딱이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니 새벽 다섯 시 반에는 눈을 떠 지체 없이 출근 준비물품까지 챙겨 출발해야 한다는 결론.


새벽 다섯 시 반, 그 시간은 나에게 너무 아득했다.

어두컴컴한 새벽 거리와 동이 트기 전 차가운 공기.

분주한 쿠팡 택배기사들. 거리를 쓸고 있는 환경 미화원들이 떠오르는 시간.


그 시간엔 일어난 본 적이 없는데.....

등록만 하고 수영장 수도세나 기부하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염려가 나를 머뭇거리게 했지만 에라이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여섯 시 강습을 등록했다.

그리고는 소문을 냈다.

동네사람들, 나 새벽반 수영 다녀요!! (이건 내가 무언갈 시작할 때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버릇)


그러고 보니 오늘이 새벽 수영 시작한 지 40일 정도 되었다.

주 6일 수영(5일 강습, 1일 자유수영)을 매일 가지는 못했지만 주 4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참여하고 있는 나 자신을 칭찬한다.


지난달엔 새벽에 재난문자가 올 정도의 폭설이 두세 번 있었는데, 하늘에서 쏟아지는 함박눈에 제설도 되지 않은 도로를 보며 내면의 갈등이 있었다.

'이런 날에 나 밖에 없는 거 아닌가'라는 쓸데없는 고민.


의기양양하게 탈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정말 쓸데없는 고민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수영장 고인 물들은 자연재해와 관련 없이 출석하며 아침 의식처럼 매일 새벽 수영을 한다.

레인을 가득 채운 부지런한 갓생러들과 그들의 열기로 가득 찬 수영장의 공기를 느끼며 나는 다시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새벽에 길을 나서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새벽에도 도로 위에 차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

매일 수영하고 출근하는 아저씨들이 많다는 것,

전 날 술 먹고도 수영하러 와서 술 냄새나는 수영인들도 있다는 것,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져 맘 졸이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우리 남편이 생각보다 아침에 아이들을 잘 챙긴다는 것,

그래서 역할 분담이 강제로 되다 보니 내면에 있던 워킹맘의 억울함이 조금은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하나 더,

나는 꽤 근성 있는 부지런한 사람이다는 것.

나 자신을 칭찬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40분이나 일찍 출근하게 된 덕분에 아침에 글 쓸 시간이 생겼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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