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주인공은 누구?

가정의 달, 사랑의 메커니즘

by 신슈슈

5월 달력의 초입을 가득 메운 빨간 휴일들이 휘리릭 지나가 버렸다.

어린이날이라는 명목으로 학원마다 소소한 간식파티에 마켓데이, 영화관람 같은 행사까지 겸하다 보니 아이들은 꽤나 화려한 일주일을 보냈고, 등교날이 다가오자 중증 수요병을 앓으며 화요일 저녁부터 학교 가기 싫다고 낑낑거린다.

"얘들아, 어린이날 다 끝났다!!"


연휴 동안의 일정을 돌아보니 아이들 위주의 일정에 선물과 용돈까지 두둑이 챙긴 그들은 분명 5월의 주인공이다. 5월의 주인공에 노미네이트 되어있는 어버이도 스승도 사실 어린이를 위해 존재하는 어른들 아닌가.(부처님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5월의 위너는 분명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들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지갑을 기꺼이 여는 어른들의 콜라보, 이것이 가정의 달 메커니즘 아닐까. 5월 초 어버이날을 빙자한 부모님 댁 방문과 의도치 않은(?) 어린이날 용돈 회수 일정도 찬조로 끼워줘야겠다.



매년 5월 첫 주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고향인 안동으로 향하게 된다. 올해는 아이들의 위시리시트가 된 해리포터 도쿄 스튜디오도 잠시 고민했지만, 3월에 일정을 고민한 순간 이미 예매는 물 건너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웃돈을 얹어 여행하기엔 5월 첫 주는 일본에서도 골든위크라 불리는 황금연휴라 5월 여행으로 피해야 할 여행지란다. 엄청난 인파에 끝없이 이어질 인천공항 출국장 줄과 타국에서 애들 손을 붙들고 오버투어리즘이 무엇인지 체감할 생각을 하니 해리포터를 가장 빨리 만나는 길은 쿠팡플레이지, 도쿄도 런던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의 플랜 B는? 홈스위트홈 안동시티다.

본투비 서울인들은 알까? 수도권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계절별로 즐길만한 갓성비 축제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유교의 고장'에 덧붙여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낯 간지러운 캐치프라이즈를 건 고향의 인구밀도는 고령층이 압도적인 탓에 어린이날 행사들이 대도시와는 달리 여유로운 편이다. (그나저나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니. 갑자기 고향을 떠나온 지 이십여 년이 가까워지는 현재 시점에서 허리를 바로 세우게 된다. 에헴.)

안타깝게 발생한 대형 화재로 인해 올해는 벚꽃축제부터 어린이날 행사까지 지역축제가 모두 취소된 상황이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친정에 갈 때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내실탄탄하고 저렴하게 누릴 수 있는 즐길거리가 다양했다. 취소되지 않았다면, 5월 첫 주에는 차전장군 노국공주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축제는 안동 무형문화재인 차전놀이와 놋다리밟기를 테마로 한 축제로 강변을 가득 채운 전통 놀이체험 부스에서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놀며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콘텐츠가 전통놀이에 MZ 감성 한 방울이 희석된 체험형이라 온 가족의 깔깔거림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회의 백미는 대표 남학생 두 명이 차전놀이를 하며 승부를 가리는 것이었다. 흔한 지방민의 착각이라면, 그때는 운동회 때 박 터트리기를 하는 것처럼 전국 남학생 초딩들은 모두 차전놀이에 참여하는 줄 알았다. 여학생들은 노국공주를 한 명 정한 후 공주가 물에 젖지 않도록 다리 역할을 하며 등을 내주는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밟히는 입장에선 썩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장군과 공주 외에는 모두 밟히는 느낌의 민초역할이었다니)

<안동 운동회 필수 코스-차전놀이(반장 남학생 두 명은 장군 역할이고 나머지는 일꾼 역할)>
<안동출신 30대 이상 여학생이라면 한 번쯤 등짝 밟혀 본 기억이 있을 놋다리밟기>

지역행사들이 그러하듯, 이곳도 체험비 만원을 내면 칠천 원을 지역화폐로 돌려준다. 받은 지역화폐로 아이들과 푸드트럭 사이를 누비며 간식을 사 먹고 넉넉한 인구밀도 안에서 수도권에서는 누릴 수 없는 쾌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늘과 의자가 마련된 휴식 공간에서는 시간마다 마술쇼와 공연이 이어지니 우리 집 아이들도 유교문화 도파민에 정신을 못 차리는 하루를 보냈다.


올해는 대형산불로 고향이 초토화가 된 직후라 분위기가 여느 해와 달랐다. 뉴스에서 일주일째 불타는 고향을 보며, 부모님 걱정과 별개로 멀다는 핑계로 선뜻 달려가지 못하는 막막함에 죄책감이 느껴졌던 날들이었다.

다시 방문한 5월은 좀 더 침착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들의 넉넉함은 여전하다. 3대가 함께 오면 무료라는 문화체험관(이름도 무려 유교랜드)의 이벤트 덕에 부모님을 모시고 3대가 키즈카페 종일권 보다 더 빵빵하게 무료로 하루를 보냈다.(제사상 차리기와 우리 집 가훈 짓기 체험들 사이에 있는 엄청난 볼풀장과 유교 VR게임들이라니, 환장의 콜라보)

친정 부모님과 오랜만에 일상을 나누고,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사실은 어린이날 덕에 어버이들도 행복한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의 어린이가 커서 데려온 아이와 함께하는 어린이날은 또 어떠할까? 나도 보드라운 아이의 손을 잡고 힘껏 사랑해주고 싶다. 사랑에 대물림이 있다면 받은 사랑에 조금의 덩어리를 더 붙여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