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수영이 나의 한 해를 녹여준 방식
2025년을 되돌아보자면 수영 덕에 잘~살았던 그야말로 수용성(水溶性)의 해였다.
휴직 중 시작한 수영을 놓고 싶지 않아 복직을 앞두고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등록한 새벽 수영.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계절이 네 번 바뀌었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한 수린이지만, Born to be 운동무능력자 출신으로서 이렇게 한 가지 운동에 애정을 갖고 심취해 본 경험이 없다. 어릴 적부터 운동회 달리기에서 꼴찌를 맡아놓던 나에게 운동은 '내가 잘 못하는 것'으로 내면화되어 있었다. 요즘 아이들처럼 태권도나 수영을 배워본 적도 없고, 자전거도 성인이 되어 겨우 배운 나에게 몸으로 하는 것은 늘 더디거나 엉성하곤 했다.
취미가 운동이라는 사람들을 평생 다른 종으로 생각해 온 나에게도 이제는 취미가 수영이라 당당하게 말하는 날이 도래했다. 무엇보다 내가 평생 가져가고 싶은 운동이 생겼다는 것은 나의 일상과 내면을 단단하게 채워주는 하나의 사건처럼 느껴진다.
과학적으로 새로운 습관이 생활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약 66일이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직장 일을 하면서도 가족들의 의식주를 수시로 돌봐야 하는 워킹맘의 꽉 찬 스케줄은 오히려 내가 이를 악물고 출석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게 바로 Now or Never) 퇴근 후엔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저녁 준비를 하며 아이들을 케어하고 공부까지 봐주다 보면 어느덧 밤 10시이다. 엄마의 운동은 가족들의 일상이 돌아가는 중에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단 한 시간이 금쪽같지만, 다른 일정이 생긴다면 그것 또한 뒷전이 될 것이 빤했다. 그렇게 새벽이 아니면 수영과 이별해야 한다는 간절함은 매일 아침 비몽사몽한 나를 수영장까지 멱살잡이했다.
하지만 새벽 수영에 적응해 나가던 멘탈과는 달리 피지컬이 따라오지 못했다. 직장동료들은 매일 내 낯빛을 보고 묻곤 했다.
"어디 아프세요?",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사실 거울 속 내 얼굴은 많이 안타까웠다. 수경과 수모에 눌려 오전 내내 퀭해 보이는 얼굴은 수영장에 들어갈 때마다 세월을 2배속으로 맞은 것만 같았다. 다행히 차츰 몸이 적응해 나가자 안색이 돌아왔고, 지금은 쿠션 화장품으로 대충 가리고 마스크를 쓰기도 하며 편하게 지내고 있다. 비록 얼굴은 못나졌지만 운동 후 남아있는 열기를 머금은 채 달리는 출근길은 예전보다 훨씬 상쾌하고 가볍게 느껴진다.
여전히 밤 열 시가 되면 영업 끝난 가게처럼 눈꺼풀이 셔터를 내리려 하지만(자동셔터인 듯) 나의 몸에도 작은 변화들이 보이고 있다. 꾸준히 운동을 한 덕에 나이 들어 최고의 자산이라는 허벅지에 근육이 붙어 단단해졌다. 하복부도 제법 납작해져 꽉 끼던 바지들이 보기 좋게 넉넉해졌다. 재테크는 부족해도 근육테크는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셈이다. 퇴행성 질환과 허리통증에 최고라는 수영을 시작한 것이니, 이제 장기적으로 나의 목표는 시니어 레인의 일흔 넘은 할머니 회원이다.
SNS를 보다 보면 알고리즘이 나의 추구미를 기막히게 찾아준다. 쨍한 컬러의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물에 뛰어드는 숏츠 속 여자들은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포구에서 맑은 바닷물로 겁 없이 다이빙하고는 헤드업 평영으로 유유히 돌아오는 여자.
에메랄드 빛 보라카이 바닷속에서 프리다이빙으로 인어공주처럼 유영하는 여자.
이런 거 20대만 하는 것 아니잖아. 애 둘 엄마도 배울 수 있잖아!라는 생각에 괜스레 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직장에도 집에서도 마흔 된 여자의 롤모델은 찾기 어렵다. 거창한 장래희망이나 포부를 말하기 낯간지러운 나이. 소소한 추구미들은 쳇바퀴 돌듯 심심한 일상에 조미료를 쳐준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을 함부로 하지 않고 싶지 않다.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수영으로 배운 것은 접배평자만이 아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잡념은 물속에 녹여버리고, 지금 이 순간의 한 팔 한 팔 스트로크에 집중하게 된다.
지나간 세월에 붙잡혀 괴로워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나만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스포츠.
수영은 내가 바라는 삶의 태도와도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