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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마치 Oct 25. 2022

비로소 우리가 만나면

영화 <시월애>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마음의 속도와 당신 마음의 속도가 맞아떨어지는 것은 기적이라 불릴 만하다. 그러니  명은 1997,  명은 1999년에서 맞닿은 <시월애> 사랑은 얼마나 기적과도 같으냔 말이다.

시월애(時越愛)의 뜻은 '시간을 초월한 사랑'이다. 가을 분위기 물씬 나는 영화라서, 많이들 '10월의 사랑'인 줄 착각한단다. 성현(이정재)의 타임라인은 1997년이다. 아버지가 지은 집 '일마레(il mare)'에 살게 된 그는 편지 한 통을 받는다. 1999년에 살고 있는 은주(전지현)로부터 온 손편지다. 마치 일마레를 구석구석 다 알고 있는 듯한 말투와 내용이 담겼다.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서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상한 우체통이 둘의 편지를 시간을 초월해 각자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1997년과 1999년.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일마레에서 오가는 편지를 통해 조금씩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기 시작한다.


"1998년 1월엔 독감이 유행했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제가 일마레에서 제일 행복했던 일은요, 성현 씨가 일마레 앞 나무에 밝혀놓은 은하수 불빛 아래서 편지 읽는 일이었죠."




<시월애>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여러 가지다. 그중 멜로 영화임에도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는 게 이 영화가 특별해 보이는 까닭 중 하나다. 심지어 주인공 성현과 은주 고독하고 쓸쓸해 보인다. 이 점 또한 <시월애>의 은근한 매력. 핵심은  사람 모두 '고독하되 고독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이다. 성현은 아버지로부터의 결핍을, 은주는 지난 사랑에 대한 미련을 안고 살아간다. 마음 한쪽은  비어있지만 각자의 일을  나름대로 일상을 살아간다. 특히 행복한 사람도 우울해질  같은 환경인 일마레에서 혼자 너무  산다. 아마 나는 일주일도  버티고 다른 집을 알아봤을 거다. 애초에 바다에 덩그러니  있는 집에 혼자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의 '꽁냥거림'은 외로울  행복해지는 각자 방식을 서로에게 하며 시작된다.

"은주 씨, 우울할 땐 요리를 하세요. (중략) 이젠, 기분이 좀 풀렸나요?"

성현의 말과 함께 나오는 화면엔 은주가 열심히 파스타를 만드는 모습이 보인.   아닌 일을 하면서도 금세 행복해하는 둘의 모습은 꽤 닮았다. 비슷한 두 사람이지만 서로 상대의 얼굴도 모르는 데다 다른 시공간에 존재한다. 게다가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주고받지 않지만 어느새 사랑의 기운이 번져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사람 속이라지만, 가끔은 이런 영화를 보며 그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보기도.



사람에겐 숨길  없는  가지가 있는데요... 기침과, 가난과, 사랑..



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해서 <시월애> 꺼내기도 한다. 지금보다  빠르지만 뭔지 모를 낭만이 있는 시대. 특정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있는 수단으로 '영화' '음악'만 한  없다. 특히 <시월애> 음악을 듣고 있으면 단번에 차갑지만 따뜻한 일마레로 데려다준다. 싱어송라이터 김현철의 손에서 태어난 영화 ost들이 그 시대의 감성을 몇 배는 더 증폭시켜준다. 분위기를 바꿔놓거나 취향을 반영하는 데에는 음악이 일등이다. <시월애>는 음악과 배우들의 풋풋함과 감성적인 연출이 모두 조화롭게 얽혀서 '그냥' 좋은 영화다. 이유를 콕 집어 말하기 힘든 그냥 언제나 좋은 영화.




사랑은 타이밍이지만 마음대로 되진 않는 거라, <시월애>의 판타지가 더욱 예뻐 보이나 보다.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A는 내 추천에 이 영화를 보고 "유치하다"라고 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그 유치한 풋풋함까지 <시월애>의 매력임을 알아주길.

1997년의 성현은 1997년의 은주를 찾아간다. 성현의 기다림 끝에 지하철역에서 마주치지만, 은주 시점에선 아직 편지를 주고받는 1999년이 오기 전이라 그녀의 눈에 성현은 그저 이상한 사람이다. 어색하게 손 흔드는 성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당시의 연인을 향해 달려가기도 한다. 왠지 성현의 민망함은 나의 몫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나는 당신에게 모르는 사람이어야 하느냐"는 성현의 외로움도 나의 몫이다.


때때로 과거의 인연이 이상하게 얽히고 풀려 현재에 연결되기도 한다. 혹은 '이제 와 돌이켜보니 우리 거기서 만났을 수도 있겠다' 싶은 사람도 생긴다. 그런 걸 보면 시공간을 오가는 편지라는 매개가 없을 뿐 현실에서도 '시월애'는 아주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그저 한 시도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절한 때에 우리가 만났을 뿐이리라. 언제의 나와, 언제의 네가 만나 우리의 지금이 될까.



은주는 운명을 바꿀 마지막 편지를 쓴다. 성현은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그날, 은주를 찾아간다.

"지금부터 아주 긴 이야기를 시작할 건데, 믿어줄 수 있어요?"





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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