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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마치 Oct 11. 2022

La vita e belle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안녕하세요, 공주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주인공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천진한 얼굴로 도라를 향해  말을 외칠 때마다, 점점 귀도가 부리는 마법에 빠져드는  같았다. 현실이 냉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해맑은 얼굴에 설득당해 '그래 맞아,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를 울게 했지만 기어코 웃음 짓게 하는 그의 행동은 그야말로 마법이었다.


주변에서 영화 좀 봤다 하는 사람들은 전부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게 "영화 좋아한다는 놈이 아직도 이 작품을 안 본 게 말이 되느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꽤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라고 손꼽는 영화를 지겹게도 몇 년이나 안 보고 버텼다. 안타깝게도 결말을 미리 알아서다. (이 글 역시 영화를 아직 안 본 사람에겐 스포일러가 될 테니 주의를 바란다.)  영화의 소재가 홀로코스트라는 점, 그리고 결국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고 나서 차마 재생 버튼을 누르지 못한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폭풍처럼 몰려올 감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고등학생 때 <피아니스트>를 보며 장장 3시간여 동안 나오는 유대인 학살의 참혹함에 대해 적잖이 놀라 심신의 충격을 받은 이후로, 비슷한 소재의 영화는 나도 모르게 멀리하던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귀도는 달랐다.  그는 처절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그렇게 해야만 했음에도). 나치의 무자비한 인권 유린에도 오히려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로마에 상경한 귀도는 등장부터 남달랐다. 특별히 빛나는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미워할 수 없는 여유로움과 능청스러운 재치가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장난 섞인 말로 종일 웃음 가득한 시골 청년. 그는 사랑 앞에선 더더욱 제 인생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것 같았다. 우연을 인연으로, 인연을 운명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귀도의 영원한 사랑, 도라가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은 귀도와 결혼한 것일 테다. 생지옥에서도 나를 향해 음악을 들려주고, 목숨을 걸고 '안녕하세요 공주님!'을 외쳐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귀도 밖에 없을 테니. 나치를 피해 대범하게 마이크에 대고 인사를 건네는 장면에선 사랑의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몸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말투는 장난스러워도 그 사랑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다는 것을.


너무 행복하면 오히려 불안해진다. 더욱이 결말을 알고 있으니 귀도와 도라의 행복을 보면서도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나 눈에 사랑이 가득한 그들에게 '자, 이제 불행이 시작될 거야. 당신들의 인생은 아름답지 않을 거야'라고 내내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귀도는 달랐다. 이 정도 상황이면 절망에 빠져야 하는데 그는 멋대로 좌절하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 도라, 어린 아들 조슈아와 함께 수용소에 끌려왔음에도 그는 웃어야만 했다. 귀도는 조슈아에게 "이건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아들이 이 '게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고된 노동에도 조슈아 앞에서 좌절하거나 비관적인 말을 뱉지 않는다. 심지어 배짱 좋게 "게임하기 싫으면 그냥 집에 가자"며 수용소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까지 한다. 아들에게 보여주는 그의 행보 때문에 마치 귀도가 진짜 괜찮기라도 한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다. 그게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이라는 건 수용소에 함께 있는 다른 유대인의 고된 표정을 보고 알 수 있다. 그에게 불행이 다가올 것을 기다리며 내내 쫄아있던 나도 해피엔딩인가 착각할 정도였으니, 순진한 조슈아는 아빠의 연기에 깜빡 속는 게 절대 무리가 아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아들 앞에선 웃고 있었지만 귀도는 얼마나 울고 싶었을까. 아직 자식이 없어 그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으나 아마도 그는 어른들의 싸움으로 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미친 세상의 모습은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리라. 내가 네게 주었던 것처럼 항상 웃음 가득한 세상이라고 믿게 해주고 싶었을 거다.

귀도처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우리 인생은 누가 1000점을 먼저 따내느냐의 게임이라고 말이다. 전쟁만큼은 아니지만 삶은 종종 찾아오는 절망적인 순간을 이겨내야만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럴 때 좌절하지 말고, "이건 버티기 게임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때로는 악당을 피해 숨어있고, 때로는 괜찮은 척도 했다가, 귀도처럼 그저 웃다가. 어린 조슈아가 해냈듯 나도 결국 1000점을 따내고야 말 것이며, 꿈에 그리던 탱크를 상품으로 받을지 모른다고. 귀도처럼 가슴에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과 인생을 함께할 수 있을 때까지는 스스로 귀도가, 또 조슈아가 되기도 하며 아름다운 인생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리고 이런 영화를 보며 또 한 번 힘을 얻고 끝끝내 행복해지는 것이 바로 귀도,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겸 배우가 부린 마법이다. 새드엔딩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귀도는 보란 듯이 이 영화를 '행복' 색으로 칠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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