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 시리즈 ep.02
“방은 좀 보고 있어?”
엄마가 명자의 방에 들어서며 하는 말이었다.
명자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고시원 들어갈까 해.”
“고시원은 왜? 그냥 방을 구해.”
“3개월 뒤에 짤릴지도 모르는데, 방 얻었다가 짤리면?”
“그럼 딴 데 알아봐야지.”
명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뭐야, ‘짤리면 집에 와’가 아니라 ‘딴 데를 알아봐?’ 엄마 친엄마 맞아?”
엄마가 더 얄궂은 투로 응수했다.
“그래, 오지 말고 거기 있어. 오려거든 환갑 되면 와.”
명자가 놀라 되묻는다.
“뭐?! 환갑?!”
엄마는 네가 놀라는 게 더 어이없다는 투로 말한다.
“아이고야, 니 나이를 생각해 봐라. 너 낼모레 오십이다.
환갑이라고 해봤자, 10년밖에 안 남았어.”
(팩트체크: 환갑까지 13년 남음)
명자는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수십 통의 이력서를 냈고, 그만큼 떨어졌다.
30대엔 넣기만 하면 면접 날짜부터 잡히곤 했는데, 40대가 되자 연락이 뚝 끊겼다.
사회가 필요로 하던 인간이 ‘불필요한 존재’가 되기까지 딱 10년.
그녀는 “나이 많다고 알바 자리에서도 밀려났다”고 하던
어느 40대 유튜버의 푸념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면접을 보고 현업에 다시 발을 들일 기회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됐다.
엄마가 방을 나가자 명자는 컴퓨터 앞에서
보고 있던 부동산 사이트를 닫고 넷플릭스 창을 열었다.
요즘 그녀의 최애작은 중드 로맨스물인 〈애니〉와 〈투투장부주〉.
드라마에서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여주, 남주의 비주얼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집. 방. 부엌. 거실. 테라스.
그 모든 공간이 현실감 없이 넓고, 세련되고, 고급졌다.
명자는 특히 〈애니〉 속 여주, 남주의 집을 보며 세 번쯤 눈을 비볐다.
‘난 환갑 돼도 저런 집에서 못 살 것 같은데…’
그녀가 요즘 꽂혀 있는 건 로맨스도, 액션도 아닌… 집, 방, 방, 집.
명자에게 중드는 로맨스물이 아니라 부동산 판타지에 가까웠다.
명자는 중드를 보다 말고 다시 부동산 사이트를 열었다.
고시원, 투룸, 원룸, 반지하, 옥탑방… 그럼에도 비싼 월세.
그렇게 자신이 당면한 현실을 바라보았다.
명자는 ‘중드에 나오는 좋은 집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인생이 퇴실 시간을 앞둔 모텔 투숙객처럼 조마조마하지만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같은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들어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