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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Aug 06. 2024

엄마의 '기억 가출' 사건

간담을 서늘하게 한 치매(?) 체험

'기억 가출' 1일 전

거실 협탁에 웬 밤색 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엄마한테 이게 뭐냐고 물으니, 새언니가 두고 간 ‘공진단’이라고 했다. 엄마가 해놓은 국과 반찬거리들을 가져가면서―종종 있는 일이었다―그냥 가져가기 미안했던지 공진단을 선물로 두고 간 모양이었다. 엄마는 이게 원기 회복에 그렇게 좋단다, 하며 약상자를 열어보였다. 총 열 개의 칸에 총 열 개의 공진단이 들어있었다.


'기억 가출' 당일

엄마가 송자 아줌마(엄마 친구) 부부와 다슬기 잡으러 바닷가에 가기로 했다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친구도, 놀러 갈 데도 없는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집콕하고 있었다. 혼자서도 시간은 잘 갔고, 어느덧 엄마가 돌아오실 때쯤이 되었는데, 엄마가 오신 게 아니라 전화가 왔다. 휴대폰 화면에 '엄마'라고 떠서 엄마인 줄 알고 받았더니 송자 아줌마였다. 송자 아줌마는 대뜸 "엄마가 집을 못 찾아"라고 말했다. 나는 대관절 무슨 소리인가 싶어 "네?"라고 했고, 송자 아줌마는 "엄마가 집이 어딘지 기억이 안 난대"라고 말했다. 나는 재차 듣고도 이해 불가의 상태였다. "엄마가 집을 모른다고요??" "글쎄 말이야. 나도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모르겠네" "지금 어디세요?" "응, 아파트 입구까진 왔는데, 엄마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니까 자네가 좀 나와야겠어."


엘리베이터에 올라 1층 버튼을 누른 뒤 6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아는 바로는) 엄마, 아빠 양쪽 다 치매 가족력이 없다는 것을, 엄마의 암산 실력이 나보다 낫다는 것을, 건망증 때문에 사고를 쳐도 그건 나였지, 엄마가 아니었다는 것을 상기했다. 불과 일주일 전의 일만 해도 그랬다. 은행 ATM기에 카드를 두고 와서 찾으러 오라는 은행 직원의 전화를 받은 건 나였고,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다니느냐며 잔소리를 해댄 건 엄마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뭘까? 

아파트 정문 앞에 비상깜빡이를 켜고 서 있는 봉고차에서 엄마와 송자 아줌마가 내렸다. 나는 잰걸음으로 그 앞에 섰다. 엄마는 아침에 들고 갔던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아침과는 달리 꽤 묵직해 보이는 것이 다슬기를 잡긴 잡은 모양이었다. 엄마를 부축하는 모양새로 있던 송자 아줌마가 무어라 설명이란 걸 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서 엄마를 데리고 집에 가 엄마 등에 딱정벌레처럼 붙어 있는 배낭을 떼어내고 쉬게 해드리고 싶었다.

엄마의 상태를 살피며 집으로 향하는데, 엄마의 눈빛이 확실히 전과는 달랐다. 멍함과 멍청함 중간쯤에 있는 눈빛이었다. 집으로 가면서 "엄마, 집이 기억 안 났어?" 하고 과거형으로 물었는데, 엄마는 기억은 지금도 없다는 것을 눈앞에 201동과 202동을 차례로 가리키며 "어디야? 여기야, 저기야?" 하고 묻는 것으로 대신했다. "엄마 뭐야, 우리 집 202동이잖아." 황당한 농담을 들었을 때처럼 헛웃음이 났다. 엄마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도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왼쪽으로 가야 할지를 몰라 여기인지 저기인지를 물었다. "엄마, 정말 왜 그래? 602호잖아. 엘리베이터에서 오른쪽!" 톤이 좀 올라가긴 했지만, 짜증은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난 그때 분명 ‘치매 간병하다 자살, 살해 잇따라’라는 끔찍한 기사 제목이 떠오르면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엄마의 기억에서 생존한 건 오늘 잡은 다슬기뿐인 듯했다. 엄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1분 간격으로 다슬기 어딨냐고 물었다. 물었다는 걸 잊고 묻고 묻고 또 묻는 것이다. 나는 송자 아줌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까는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좀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송자 아줌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가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괜찮지 않다고, 다슬기 어딨냐는 질문만 계속해 댄다고 말했다.

“나한테도 그랬어. 내가 잡은 다슬기를 보고 그거 내 거 아니냐, 그래서 니 거 저기 있잖아, 했더니 그래? 해놓고선 같은 질문을 열 번, 스무 번을 하더라니까. 참 이상한 것이 점심밥 먹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거든. 내가 찰밥을 해가지고 갔어. 그래서 자네 엄마한테 너 찰밥 물 말아먹을래, 하니까 물 말아서 밥도 잘 먹더라고. 자꾸 뭘 물어보는 건 있었어도 크게 이상 있다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우리 집 양반 차로 오면서 다슬기 이고 가려면 무거우니 우리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어디 앞에 세우면 돼? 하니까 계속 ‘몰라’만 해. 집에 딸 있지 않냐, 딸한테 한번 물어봐라, 근데 딸 번호도 모른다고 해. 그래서 내가 자네 엄마 전화 가져다 번호 찾아가지고 전화를 한 거야.”

송자 아줌마와의 통화에서 얻은 소득은 온종일 엄마와 함께 있었던 송자 아줌마도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주방에 갖다 뒀다는 답을 열 번 정도 한 후에도 다슬기 어디있냐는 질문이 돌아오자 엄마 눈앞에 배낭을 가져다 놓았다. “가방 무거운 것 봐. 많이도 잡았나 보네.” 하고 말하고 보니 이것 때문에, 그러니까 이 다슬기를 잡느라 장시간 바닷바람을 쐬며 무리해서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별 설득력이 없었다. 엄마의 평소 노동량을 본다면 그 정도는 무리도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왕복 1시간이나 걸리는 장에 가서 잠깐 들고 서 있기도 힘든 무 다발, 배추 다발 등을 사들곤 집에 와선 종일 서서 다듬고 절이고 버무리고를 무시로 하는 엄마였다. 이틀 전엔 또 자식들 몸보신시킨다고 장에 가서 마트 닭 크기의 두 배나 되는 촌닭을 세 마리나 사와 그것과 씨름하지 않았던가.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아야 했다. 이를 테면 평소에는 먹지 않던 뭔가를 먹고 탈이 난 경우랄지... 순간 공진단이 떠올랐다. 


어제 본 밤색 약상자가 안방 화장대 위에 뚜껑이 반쯤 열린 채로 있었다. 나는 상자를 마저 열어보았다. 어제는 열 알이었던 공진단이 아홉 알로 줄어있었다. 없어진 한 알이 엄마 입으로 들어가 엄마의 해마에 어떤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공진단을 용의 선상에 둔 채로 거실에 있는 엄마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엄마한테 묻기 시작했다. 오늘 어디까지 기억나? 다슬기 잡으러 간 건 기억나? 어떻게 갔는지, 가서 뭘 먹었는지 기억나? 송자 아줌마가 데려다준 건? 엄마는 대답 없이 눈만 껌뻑껌뻑할 뿐이었다. 엊그제 촌닭 삶아서 오빠네 주고, 엄마랑 나도 먹었던 거 기억나?라고 나는 또 물었고, 엄마는 또 눈을 껌뻑대더니 “닭을.. 삶아?” 하고 되묻는 것이 아닌가! 어떤 각오가 필요한 일이 일어날지도, 아니 이미 일어난 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었다.


엄마는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들고, 나는 내 방 컴퓨터 앞에 앉아 네이버 창을 띄운 뒤 ‘공진단 기억’을 검색했다. 공진단이 기억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집중력 향상과 기억력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글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내가 괜한 의심을 한 건가? 하고 있을 때, 그새 잠이 깼는지 엄마가 내 방으로 들어와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를 물었다. 나는 ×월 ×일 ×요일이라 답하고 잠이 안 와도 눈 좀 붙이시라고 말했다. 엄마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다. 나는 다시 검색어를 입력했다. 이번엔 ‘공진단 기억’이 아니라 ‘공진단 사기’라고 쳐보았다. 검색된 몇 가지 글 중에서 ‘K한방병원은 입원환자를 늘리고자 공진단을 처방한 뒤 보험 적용이 가능한 의료항목으로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해…’를 읽고 있는데, 또 엄마가 들어왔다. 그리곤 또 오늘이 며칠인지를 물었다. 방금 전에 물어보고 갔잖아,라고 말해봤자 소용없었다. 엄마는 생전 처음 질문이란 걸 하는 사람의 표정으로 묻고, 나는 답하고, 그것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질문 지옥에 갇혀버린 것만 같았다. 제발 좀 주무셨으면 했는데, 다행히 안방 침대로 모셔다 드린 엄마가 십여 분째 조용했다. 살금살금 안방으로 건너가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보았다.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곤히 잠든 엄마였다. 

다시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이번엔 ‘한약 사기’를 검색했다. 새언니가 두고 간 공진단이 진짜 공진단이 아닐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검색 결과, 중국에서 들여온 성분을 알 수 없는 원료를 한약재와 섞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속여 판매한 한의원 이야기와 그 피해 사례가 나왔다. 이는 나의 의심을 더 강화했다.


'기억 가출' 다음날

새벽녘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갑자기 TV 소리가 들려 얼른 안방으로 가보았다. 엄마가 침대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언제 깼어?"라고 물으며 엄마를 보는데, 엄마의 눈빛이 예전으로 돌아온 듯했다. 짙은 안개가 하룻밤 새 걷힌 느낌이랄까? 나는 기대감을 가지고 "어때? 기억이 좀 돌아온 거 같아?"라고 물었다.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나는 또 우리 집이 몇 동, 몇 호인지, 내 전화번호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엄마는 그걸 모를까, 하는 투로 척척 답했다. 창밖에 동이 터오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헤벌쭉해진 입으로 “엄마, 엊그제 촌닭 삶아준 거 기억나?”라고 물었고, 엄마는 “기억나지, 촌닭은 얼른 안 물러져서 한참 삶았잖아. 근데도 니가 질기다고 잔소리했고.”라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제 오후의 일만은 여전히 안갯속인 듯했다. “그럼 다슬기 잡으러 갔던 것도 기억나?” “...기억나긴 하는데, 오전까지만 기억나고, 그 후로는 백지처럼 하얗네.” 


아침 일찍 엄마를 모시고 집 근처 신경과에 갔다. 병원 안까지 동행한 건 아니고 병원 입구에서 의사한테 공진단 먹었던 걸 꼭 말하라는 당부를 남기고―나는 여전히 공진단을 의심하고 있었다―나는 먼저 집에 왔다. 그리고 식약처에 전화를 걸어 선물로 받은 출처불명의 공진단의 정체를 밝히고 싶은데, 식약처에서 그걸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공진단이 든 밤색 상자에는 제조 업체나 유통기한 등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정보라고는 케이스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한의학박사 윤장식(가명)’이라는 여덟 글자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건 식약처에서 도움을 줄 만한 사안이 아닌 모양이었다.

- 한의원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한약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은 의료법상으로 적용을 받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희 쪽에서 도움을 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공진단을 받으신 병원에서 정보를 확인해 보셔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식약처의 안내대로 하자면, 먼저 새언니한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말한 뒤 공진단 구입 경로를 알려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럼 새언니는 내가 공진단을 의심하는 것에 서운함 또는 불쾌감을 느낄지도 몰랐다. 솔직히 공진단에 대한 과하다면 과한 나의 의심이 내가 새언니한테 평소 가지고 있던 못마땅한 감정과 아주 별개라고는 말 못 하겠다. "이제 저희 먹을 건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날도 더운데 저희 것까지 하시느라 고생하지 마세요." 이런 인사성 멘트 한 번 없이, 장보고 반찬 하느라 엄마 관절 상하는 줄도 모르고 뭘 해 주면 해주는 대로 매번 잘도 받아 받아가는 새언니가 난 좀 불만이었다.  

일단 식약처 안내는 무시하고, 다른 방법을 찾다가 한약분석센터라는 곳에 전화를 걸었다.

- 어머니가 한약을 선물 받아 드시고 몸에 좀 이상이 있으셔서 약 성분 검사를 해보고 싶은데 그쪽에 의뢰하면 되나요?

- 한약 드시고 이상이 있으셔서 저희 쪽에 문의가 많이 오긴 하는데…

나는 센터직원의 말허리를 잘라먹고는 부연 설명을 해나갔다. 

- 선물 받은 게 공진단이거든요. 근데 이게 진짜 공진단인지도 모르겠고… 동그랗고 한약 맛 난다고 다 공진단은 아닐 거잖아요. 설령 공진단이라 해도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유해 물질이 들어갔을 수도 있는 거고… 

센터 직원도 내 말 중간에 들어왔다. 

- 유해물질검사라면 잔류농약이라든지 중금속, 곰팡이독소, 벤조피렌 등등 몇 가지 검사가 있는데, 그걸 다 하시려면 대략 팔십만 원 정도 듭니다.

- 네? 파.. 팔십만 원요??

- 네, 그 돈을 써서 유해 물질을 찾아냈다 해도, 그것 때문에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밝히는 건 또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 힘드실 거예요.

나는 검사를 의뢰하겠다는 말 없이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과학적 접근도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였다.      



“공진단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단다. 그거 먹고 그럴 리가 없대!” 병원에 다녀온 엄마는 이 이야기를 필요 이상으로 힘주어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 약 먹고부터 그랬는데.” 그때 내 목소리는 좀 기어들어 가지 않았나 싶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래서 왜 그런 건데?"에 대한 답이었는데, 엄마는 "뭐 인 것 같다고 하드라만.. 뭐라고 했는지 모르겄네.. 아무튼 기억도 돌아왔고 크게 걱정 안해도 되겠다고 했응께 너도 더 신경쓸 없어"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절대 공진단 때문은 아니라는 말을 의사의 권위를 빌어 거듭 강조했다. 


나도 더는 공진단을 의심하지 않고, 엄마의 증상만을 가지고 또 검색이란 걸 해보았더니 '일과성 전 기억상실증'이라는 진단명이 떴다. 엄마가 의사한테 듣고도 까먹은 진단명이 이게 아닐까 싶었는데, 여기엔 이러한 설명이 따라붙고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고 반복적으로 질문하며 시간과 장소를 혼동하는 증상이 주로 나타나지만 24시간 내 회복된다는 특징이 있다.. (중략)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과도한 스트레스, 격렬한 운동, 갑작스러운 체온 변화 등을 원인으로 추측하고 있다.."

어느새 나는 처음엔 열외로 두었던 가능성(다슬기를 잡느라 장시간 바닷바람을 쐬며 무리해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가능성대해서도. 그것은 바로 '비혼 백수 딸로 인한 스트레스'였다. 결혼도 안 해, 돈도 안 벌면서 내 일 내가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만 치는 딸년이 엄마 머릿속 해마에 이상을 일으켜 일시적 기억장애를 불러왔을 경우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했을까? 만약 그게 주원인이라면 공진단은 참으로 억울할 뻔하지 않았는가.


약상자에서 금박 옷의 동그란 공진단을 꺼내 들었다. 어렸을 때 아빠 옷에서 맡곤 했던 은단 냄새가 났다. 나는 금박 옷을 벗긴 공진단을 입에 넣었다. 은단보다는 좀 더 복잡한 맛, 흙에 쏟은 쌍화탕을 먹을 일은 없었지만.. 얼추 그런 맛이 났다. 뱉고 싶었지만, 뱉지 않고 오물오물 다 씹어 먹었다. 이것은 공진단에 무죄를 주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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