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딸, 엄마 모시고 병원에 가다
월요일 오후, 엄마를 모시고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다. 평소 엄마 모시고 병원 다니는 살뜰한 딸은 아닌데,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일찌감치 집을 나선 엄마가 가겠다던 병원은 가지 않고 딴 일만 보고 오시는 바람에 "주말 내내 앓았으면서 왜 병원을 안 가"라는 잔소리와 함께 엄마를 직접 병원까지 모시게 된 거였다.
사실 난 엄마가 앓게 된 데에 일말의 책임감, 죄책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 내 커피 심부름을 해주러 밖에 나갔다가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흠뻑 맞고선 기침에, 몸살기를 보이셨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말에 비해 컨디션이 더 나아지시긴 했다. 엄마도 괜찮아진 것 같아 병원으로 가던 발길을 돌렸다고 했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건 내가 급한 대로 드린 타이레놀 두 알의 일시적 효과일 뿐이었다.
내 예상대로 엄마의 괜찮은 상태는 짧게 끝났다. 집에서 병원으로 이동하는 10여 분 사이 엄마가 가지고 있던 기운의 절반이 소진된 듯했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20여 분 새 또 그 절반의 절반이 사라진 듯했다.
엄마는 어디가 어떻게 불편해서 오셨냐는 의사의 질문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감긴 지.. 목도 아프고, 기침도 나오고... 몸도 으슬으슬한 것 같고..." "열이 있으신데요, 그래서 오한이 있으셨나 봐요, '아' 한번 해보세요." 엄마는 의사 말에 '아' 하고 입을 벌렸고, 의사는 엄마의 입안을 꼼꼼히 살핀 뒤 "어머니, 목도 많이 부으셨습니다. 제가 보기엔 코로나 같은데, 검사를 한번 해봐 드릴까요?"라고 말했다.
검사 결과, 엄마는 지난 2022년도에 이어 이번에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동거인인 나도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음성이 나왔다. 그러니까 엄마는 코로나 확진이 두 번째, 나는 그런 엄마 때문에 코로나 검사가 두 번째인 셈이었다. 두 번 다 음성이 나오긴 했지만, 잠복기라는 게 있으니 안심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불안의 발로였는지 나도 갑자기 목이 따끔거리고 열감이 느껴졌다.(다행히 잠깐 그러다 말았다.)
나 때문에 엄마가 앓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때문에 내가 앓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고 보니, 이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인 건가 싶었다. 하긴, 반전이랄 게 뭐 있겠는가. 코로나가 다시 유행 중이라는 기사를 못 봤던 것도 아니고.. 유행 중이라니 돌고 돌아 올 게 왔을 뿐이지.
엄마는 해열주사와 수액주사를 맞고 가기로 했다. 간호사가 엄마를 주사실로 안내하면서 나에게 진료비는 따님이 계산하실 거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연로한 부모를 모시고 병원에 간 자식이 더치페이할 건데요,라고 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나둬, 내가 할 게" 딸이 백수라는 걸 모를 리 없는 엄마가 말했다. "내가 계산하고 갈 테니까 엄만 주사나 잘 맞고 와" 나는 말끝에 '그깟 거 몇 푼이나 한다고'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 내 카드에서 약값 포함 총 121,000원이라는 돈이 빠져나갔을 때는 산수 숙제를 다시 해야 하는 학생과 같은 표정이 되었다. 나는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홀로 남게 된 '마크(맷 데이먼)'가 남은 식량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를 계산했던 것처럼 지금의 통장 잔고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를 계산해 놓은 참이었다. 그런데 121,000원이라는 예상 밖 지출이 발생했으니 셈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맞긴 맞았다.
셈을 다시 하건 말건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나는 '나의 가난'에 경고했다. 네가 괜찮은 건 울 엄마가 건강할 때까지만 이라고. 엄마의 병과 너는 절대 같이 갈 수 없다고. 병마와 싸운다는 건 쩐의 전쟁이기도 하니까.
정말 이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이지만, 엄마가 거액의 치료비를 요하는, 그러니까 십 단위가 아니라 천이나 억 단위의 비용이 드는 중병에 걸린다 해도 병원비 정도는 해결할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려면 '마크'처럼(역시 영화 〈마션〉 얘기다) 화성에서 감자밭을 일굴 정도의 능력과 도전정신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불가능하다면(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싶다ㅠ) 우리 모녀 오래오래 건강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가장 큰 부는 건강이다'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