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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Aug 01. 2024

엄마의 마늘과 나의 열정 사이

열정소실증을 앓고 있는 40대 백수 딸이 열정을 찾아가는 이야기

뭐 해 먹고 살지? 라는 질문, 꼭 주민등록증 같다. 늘 꺼내 쓰는 건 아니지만, 죽지 않는 한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또 내 적잖은 나이를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물론 주민증을 보지 않아도 내 나이가 몇이란 것쯤은 알고 있다. 그것이 임박한 유통기한처럼 내 상품성을 떨어뜨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난 아직 반값할인 같은 파격 조건을 내걸 마음이 없다. 사실 그 어떤 마음도 내안에 없다. 마음이 없으니 행동이 없고 행동이 없으니 사건도 없다.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 속에서 뭐 해 먹고 살지? 라는 질문만 이스트 넣은 반죽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쯤 되면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은 부풀지 않고 자꾸만 꺼진다. 이건 게으른 게 아니라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명을 붙이자면 의욕상실 또는 열정소실증. 아닌 게 아니라 불러주는 데도 없지만, 설령 불러준다 해도 마치 연료 떨어진 자동차처럼 갈 수 있을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중년 이후 매사 의욕이 없다면 뇌가(특히 전두엽이) 늙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던데, 할 수만 있다면 눈가에 아이크림 바르듯 내 전두엽에도 노화를 늦출만한 뭔가를 발라주고 싶었다. 노화는 이제 美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적이 된 듯하니 말이다. 


요즘은 5,60대에 재취업해 작은 보수를 받고도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보다 더 존경스럽다. 연기 중단을 선언하고 식당 설거지알바부터 가사도우미까지 다양한 알바를 섭렵한 내 또래의 최 모 배우가 왜 박수 받는지 알 것 같다. 그런데, 알 것 같은데, 난 왜 이 모양일까? 굳이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을 것 같은 유명배우도 일하는데, 반드시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나는 왜 일하지 않는 것일까? 새삼 물을 것도 없이 이유는 이미 나와 있었다. 하던 일 하자니 경력 따져가며 연봉 좀 높게 부른다고 아무도 써주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자니 ‘도전정신’이라는 게 고갈된 지 이미 오래다. 최 모 배우가 섭렵했다는 설거지며 청소 일들은 아예 엄두가 안 난다. 내가 얼마나 저질체력인지, 내가 얼마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인간인지 잘 아는 까닭이다.


무의욕, 저질체력, 남의 시선 다 따지고 나니 남은 선택지는 연봉을 낮춰서라도 그냥 하던 일 하는 것뿐. 나는 다시 몇 군데 이력서를 냈고, 꾸역꾸역 한 군데 면접을 보고 오긴 했다. 

면접관이 희망연봉을 말하라고 해서 난 희망보다 500(만원) 정도 낮춰 말했고, 면접관은 내가 말한 액수에서 또 500을 뺀 숫자를 메모하더니 내게 석 달 또는 6개월 정도의 수습기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입도 아니고 ‘경력’인데, 무슨 석 달이고 6개월이냐 싶어 나도 모르게 면접관 면전에다 영화 〈배테랑〉 속 유아인이 “어이가 없네”라고 하며 지었던 표정을 지었던 것도 같고…, 어쨌든 “그럼에도 기회만 주신다면 귀사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라는 인상을 주지 못한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게 취업이 더 요원해진 상황에서 난 나의 실망 이전에 엄마의 실망을 생각해야 했다.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보면 엄마랑 같이 사는 40대 미혼 딸은 그 자체만으로 엄마의 자랑이 될 수 없거늘 백수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있으니 그것만큼 실망, 아니 환장할 노릇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면접을 보고 집에 돌아왔을 때 “면접 잘 봤어?”라고 묻긴 했지만, 엄마의 관심은 내 면접보다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마늘다발에 가 있는 듯 했다. 난 대답 대신 “이게 다 뭐야?”라고 물었고, 엄마는 마늘을 까서 시장에 내다팔겠다는 뜬금없는 포부를 밝혔다. 언젠가 “엄마 할 만한 부업거리 좀 찾아봐”라고 했을 때 듣는 둥 마는 둥 했더니 엄마 스스로 부업거리를 찾고야 만 것이다. 

난 매달 따박따박 연금 나와, 공공근로 소득 있어(엄마는 매주 3회 3시간씩 공공근로를 하고 계신다), 그것만 가지고도 밥 굶을 일은 없는데, 왜 자꾸 일 못해 난리냐고 짜증을 냈다. 나의 짜증에도 엄마는 취업에 성공한 구직자와 같은 밝은 표정이었다. 어느 샌가 짜증은 들어가고 부러움과 존경심 같은 게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안 가리고 뭐든 해보려는 엄마의 자세, 의지 같은 것에 스며들었다. 나의 무기력이 뇌의 노화에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이나 핑계는 깐마늘을 팔아보겠다는 일념으로 10키로에 가까운 마늘 한 접을 시장에서 집까지 이고지고 온 70대 노모 앞에서 그야말로 무기력해졌다.


엄마는 저녁드라마를 보며 마늘 까기에 돌입했고, 그것은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마늘냄새가 독하긴 독해서일까. 알싸한 마늘향이 내 후각신경을 뒤흔든 뒤 뇌로 들어가 또 한 차례 뭔가를 흔들어대는 것이 아닌가. 그 뭔가는 그간 견고하게 세워뒀던 내안의 울타리였다. 울타리가 흔들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고 깐마늘 파는 노점상 되지 말란 법 없잖아?’ 난 이 같은 즉흥적 생각을 즉흥적으로 엄마에게 말했고, 엄마는 마늘을 까다 말고 “그래, 그럼 할매들이 뭔 아가씨가 나왔는고, 하겠다”며 깔깔대셨다. 그리고 깐마늘을 팔아보겠다는 장소는 시장 안 주차공간으로, 새벽 대여섯 시부터 주차장 오픈시간인 9시까지만 허락된 새벽장이다 보니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죄다 할머니들뿐이라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면 어떻고, 이러면 어떠랴. 난 엄마 따라 장에 가보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의지나 열정도 신체의 근육과 같아서 가만히 있으면 줄어들고 움직이면 강화된다는 누군가의 썰이 떠오름과 동시에 새벽 노점상 체험이 멈춤 직전인 내 열정을 소생시켜줄 심폐소생술, 아니 열정소생술이 돼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 같은 게 막 생겨난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자극, 동기부여를 위해 낯선 곳을 향하는 여행자의 마음일지도 몰랐다. 낯선 일에 도전하나, 낯선 곳에 도전하나 ‘도전한다’는 점에서는 같았고, 또 고생이 좀 따른다는 공통점도 있지 않던가. 

나는 엄마가 장에 가기로 한 날 새벽 다섯 시에 알람을 맞춰두었다. 일이 아니라 여행을 앞두고 비행기 탑승 시간에 맞춰 알람을 맞춰둔 여행자와 같은 마음으로 말이다. 깐마늘을 이고 걷는 새벽거리.. 중년의 나를 아가씨로 봐줄지도 모를 인심 좋은 할머니들 있는 새벽시장.. 새벽이고 아침이긴 하나 금세 뜨거워질 흥정의 현장... 내가 과연 그곳에 있을 수 있을까? 대답은 없었지만, 내안의 열정이 살짝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알싸한 마늘향이 싫지만은 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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