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림 Aug 01. 2024

엄마랑 사는 딸의 제사 넋두리

난 제사 때만 되면 가출이 하고 싶다!

엄마랑 사는 솔로녀인 내가 특별히 골머리를 앓는 날이 있으니, 그날은 바로 우리 집 제삿날이다. 우리나라의 제사 문화란 보통 며느리들의 골칫거리인 줄 알았는데, 웬걸! 제사 때마다 썩은 고구마 같은 얼굴이 되는 건 나이고, 새언니의 얼굴은 반질반질한 달걀 같기만 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시누이 입장에서의 서술이니 실제 사실관계는 다를 수 있다.) 

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제사를 지내는 곳은 오빠 집이 아니라 엄마 집이고,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건 오빠 부부가 아니라 엄마이고, 그런 엄마랑 사는 건 오빠 부부가 아니라 ‘나’이고, 나란 인간은 제사 때마다 손님처럼 왔다가 먹고만 가는 오빠 부부를 품을 만큼 이해심이 넓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나란 인간이 제사의 효용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반(反)제사적이며 반귀신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지난 꿈에 돌아가신 아빠가 나왔을 때도―아무리 귀신이 됐어도 그렇지, 문이 아니라 창을 통해 나타나시는 바람에 소름이 좀 끼쳤더랬다―나는 아빠에게 거두절미 말했다. “아빠, 저는 여기서 잘 살다 갈 테니, 아빠도 여기 오지 말고 하늘나라에서 잘 사세요.”라고. 산 사람은 산 사람들의 세상에서 죽은 이들은 또 그들의 세상에서 잘 살면 된다는 것을 이해한 듯 그 뒤로 아빠는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도 환생·빙의물은 열외로 두는  편이다.

어쨌든 그런 인간인 까닭에 제사 준비에 들이는 엄마의 발품과 수고도 싫고, 제사음식 냄새도 싫고, 장남이랍시고 ‘제사는 반드시 지내야 한다’ 주의이면서도 제사 때 하는 일이라곤 술 먹고 절하는 거밖에 없는 오빠도 싫고, 제사 후 뒷정리가 온전히 엄마와 내 몫으로 남는 것도 싫고… 그렇게 다 싫은 것투성이라 제사 때만 되면 썩은 고구마 같은 얼굴이 되는 것이다. 엄마도 나와 같은 얼굴이 될 때가 있긴 했다. 내가 “조상 덕 본 사람들은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못 본 사람들이 제사상에 절하고 있대”라고 지껄였을 때였는데, 엄마는 확실히 제사 준비보다 내가 은근슬쩍 주입하려는 제사 무용론을 더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잘 참아주었는데,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이번 제사 때는 집을 나와 버렸다.

최근 큰조카가 결혼하면서 오빠 부부를 비롯해 조카에, 조카며느리까지 참석하게 된 제사였는데, 조카며느리가 내심 황당해할 것 같긴 했다. 제사 지내러 시부모님 집이 아니라 노처녀 시고모랑 사는 시할머니 집으로 간다고? 근데 또 시고모는 제사가 싫어 집을 나갔다고?? 하고 말이다.


집을 나와 기어들어 간 곳은 둘째 언니 집이었다. 둘째 언니는 그러려니 했다. 마치 사춘기 애 건드려서 좋을 것 없다는 듯.

둘째 언니와 형부는 제사 참석차 내가 도망쳐온 곳으로 가고, 나는 찾는 이 없는 도망자 신세로 언니 집에 남았다. 집 나와 혼자 있는 것만으로도 제사 때면 도지곤 했던 두통도 없고, 호흡도 집에서보다 훨씬 원활한 것이 나는 역시 비혼에 적합한 인간 같았다. 더 나아가 결혼 안 한 게 다행한 일로까지 여겨졌다. 시댁 제사에서는 이렇게 도망치기 힘들었을 테고, 그럼에도 나는 도망쳤을 테고, 그것이 부부갈등으로 치달아 결혼생활을 망쳐버렸을 것만 같았으니까.

다시 나란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건데, 난 사람 많은 곳에 있으면, 그들이 가족이라 해도 내 숨 쉴 공간을 뺏기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시간이 의무가 됐을 때, 또 필요 이상으로 길어질 땐 견디기가 힘들다. 말하자면 제사처럼. 하지만 엄마는 가족이 다 모인 꽉 찬 자리를 좋아한다. 당신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을, 시어른들 제사상에 오르는 것을 뿌듯해한다. 그러니까 이건 엄마의 좋음과 나의 좋음의 불일치에서 오는 문제이기도 한 거였다. 그렇다면 혼자 살면 된다는 답이 이미 나와 있는 문제이기도 한 거였고. 하지만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공생관계에 있는 엄마와 나를 생각해서도 그렇고, 그 또한 당장의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엄마를 좀 더 설득해볼까 싶었다. 

엄마, 제사라는 그 번잡한 방식을 꼭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각자의 공간에서 조용히 묵념을 한다거나 기도를 올리는 방식으로 애도하고 추모할 수도 있잖아. 그럼 제사음식 준비하느라 뼛골 빠질 일 없고, 음식 준비를 안 하니 음식물 쓰레기 나올 일 없고, 나도 집 나올 일 없고 얼마나 좋아? 나는 이런 말들을 떠올리는 한편 그것이 엄마 앞에서 얼마나 공허해질지를 생각했다. 제사에 있어서만큼은 유교 걸이신 엄마로 하여금 제사를 중단하도록 할 만한 말은 세상에 없었다. 생각이 또 이렇게 우울하게 끝나는구나 싶었을 때 언니와 형부가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그새 자정이 다 돼가고 있었다. 

언니는 우중충한 표정의 나와는 다르게 숙제를 다 끝낸 학생처럼 개운한 얼굴로 이번엔 제사를 좀 일찍 지냈고, 뒷정리까지 말끔하게 다 하고 왔으니 걱정 말고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빠 집이 완공되는 대로―오빠 집은 현재 증축 공사 중이었다―오빠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는 또 하나의 희소식을 전했다. ‘제사를 왜 지내야 하는가?’라는 문제만 남고 ‘누가 지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해결된 듯했다. 하지만 기분이 굉장히 좋다거나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엄마한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식들 고생시키기도 싫고, 행여 제사 문제로 아들과 며느리가 불화할까 하여 제사를 도맡으신 걸 텐데, ‘조상님, 우리 자식들 잘 봐주세요’ 그 마음 하나로 제사에 정성을 쏟으시는 걸 텐데, 그 마음을 너무 몰라드린 것 같아서. 앞으로 다른 건 몰라도 엄마 앞에서 제사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듯한 말은 삼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엄마에겐 존재하는 (제사의) 의미가 나에게만 없을 뿐이니까…. 

이전 05화 노모에게 커피 심부름시키는 인간이 또 있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