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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Aug 01. 2024

연봉 잘못 불렀다가 '백수' 되다

원하는 연봉 말하래서 말했다가 졸지에 '백수'된 썰

나에게 일을 주던 회사에서 프리가 아니라 정직원으로 일하라며 원하는 연봉을 말하라고 했다. 게다가 하던 대로 쭈욱 재택근무를 해도 좋다 하니 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출퇴근하는 정직원, 재택근무 하는 프리랜서,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재택근무 하는 정직원이라니 이게 떡이냐 싶기까지 했다. 그건 나의 반려견 '봄이'를 혼자 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안정적인 수입,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네이버에서 내 또래의 평균 연봉을 검색해, 그걸 참고삼아 5천 초반대의 연봉을 제시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부르면 부르는 대로 줄 것처럼 말할 땐 언제고 왜 아무 말이 없어? 비싸다든지 싸다든지 무슨 말을 해줘야 깎아주든 말든 할 거 아니야’

나는 꽤 도도하고 의연한 표정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내 표정이 ' 도도하고,  의연하게' 바뀐 것이다. 회사 대표가 나를 보고 있었다면 나의 표정이 "제 연봉은 백화점처럼 정찰제가 아니에요. 그냥 시장에서 콩나물값 깎듯 깎아도 된답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회사 대표에게 나의 표정을 들킬 일은 없었다. 자존심상 나도 먼저 회사에 연락하지 않았고, 회사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둘이 만날 일 따윈 없었으니까.


내가 짤린 이유를 연봉 말고 달리 생각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순 없었다. 구직사이트를 뒤져본 결과 연봉 4천 넘는 곳도 흔치 않은 것으로 보아 연봉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 백퍼 연봉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하던 대로 프리(랜서)로라도 써줄 것이지, 정규직 고용 건이 물 건너가더니 프리하게 하던 일마저 끊겨버렸다. 졸지에 백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웬 떡인가 싶었을 때, 그건 떡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도 딱히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할 일이 없어지자 유튜브 보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러다 보니 나도 유튜브나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독학으로 영상편집을 익힌 뒤, 난 '백수 브이로그' 유튜버가 되었다.

내 첫 구독자이기도 한 큰언니는 졸지에 백수 되고 유튜브라도 해보겠다는 동생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던지, 이런 쪽엔 별 관심 없는 형부한테도 내 백수 브이로그 구독을 권한 모양이었다. 형부는 그제야 내가 백수라는 사실을 안 모양이었고.


언니: 니 형부한테도 니꺼 보고 구독 좀 해주라고 하니까 “처제.. 백수야?” 하고 묻더라. “프리랜서가 일 없으면 백수지”라고 했더니, “처제... 일이 없어?” 또 그러는 거 있지.


백수가 무슨 출생의 비밀도 아닌데, 형부가 알게 된 게 영 신경 쓰였다. 그런데 언니는 눈치 없이 조카들한테까지 이모 브이로그 좀 보라고 했다지 뭔가! 순간 짜증이 났고, 언니는 쓸데없이 해맑았다.


나: (왕짜증 톤으로) 애들한테는 왜 얘기했어!

언니: 많이 봐주면 좋잖아.

나: 이거 애들 보라고 만든 거 아니거든. 너 같으면 조카 보는 데서 '나 백수입네' 하고 싶겠냐?

언니: 아이고 이 사람 빼고, 저 사람 빼고 그럼 누가 보냐? 처음이니까 지인들이 많이 봐줘야지.

나: 지인들이 볼까 봐 걱정이구만 뭔 소리야!


그래, 내 채널은 언니가 잠자코만 있으면 지인들이 볼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채널이었다. 문제는 지인들뿐만 아니라 지인 아닌 사람들도 보지 않는 조회수 10, 20 언저리의 채널이라는 것이었고. 물론 아직 낙담할 일은 아니었다. 고작 유튜버 2개월 차에 불과한 내가 쯔양이나 곽튜브처럼 되길 바란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희망적인 더더욱 아닌 것이 그냥 계속 부연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 원하는 연봉을 말하라고 했을 때도 내가 원하는 연봉을 말하라는 것인지, 그들이 원하는 연봉을 맞추라는 것인지 모호했고(지금에서야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무엇이 됐건 숫자라는 것도 명확지가 않았다. 나의 유튜브 조회수라는 것도 앞으로 몇십, 몇백만 단위로 훌쩍 뛸지, 아니면 지금 상태 그대로 바닥을 길지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생의 본질은 '불확실성'이라더니 이놈의 삶, 확실한 게 하나도 없고, 그러니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힐 수밖에. 

그래도 이것만은 확실히 해두고 싶다. 눈앞이 부옇더라도, 끝에 뭐가 있을지 몰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백수가 된 지금도 뒤로 가고 있진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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