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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Aug 01. 2024

신호위반 차량에 킹받다, 그러나...

신호위반 차량 신고 도전기

어디에선가 나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주겠다는 스팸 문자가 하루에도 수차례씩 날아든다. 지우고 지워도 날아드는 스팸문자는 흡사 생명력 강한 바퀴벌레 같다. ‘개인정보보호법이란 도대체 누구의 정보를 보호해 주고 있는 걸까? 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던 중 답을 찾게 되었다. 뜻밖의 상황에서.    


며칠 전 아침, 초록불 신호에 맞춰 길을 건너는데, 차 한 대가 정지선을 지나 횡단보도 안으로 진입하더니 길 건너던 나를 보고도 멈추지 않았다. 차가 멈추거나 내가 멈추지 않는 한 서로 꽝하고 부딪히고야 말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서야 결국 멈춰 섰는데, 그건 차가 아니라 '나'였다. 화가 나서 내 앞을 지나치는 그 차량의 몸통을 잽싸게 손바닥으로 쳤던 것 같다(그래봤자 내 손바닥만 아플 뿐이지만). 문제의 차량은 아랑곳 않고 초록불도 보행자도 무시한 채 유유히 사라졌다.

신호를 무시하는 상황을 음미하기라도 하듯 천천히, 하지만 멈출 생각은 없이, 눈앞에 보행자가 멈추라고 손을 들건 말건 개무시하고 횡단보도 안으로 밀고 들어와 제 갈 길 가버린 그 차량에 난 깊은 빡침을 느꼈다. 고작 몇 만 원짜리 과태료 한 장에 불과할지라도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증거가 없었다. 열 받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으나 증거를 남기기엔 ‘찰나’였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민원콜센터의 안내에 따라 관할경찰서 교통과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 증거가 없으면 안 돼요. 블랙박스로 촬영된 걸 올려주시거나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어 올려주셔야 돼요.

나: 보행자한테 무슨 블랙박스가 있어요. 그리고 신호 위반할 걸 미리 알고 준비하지 않는 이상 그걸 휴대폰으로 어떻게 찍어요?

경찰은 어쨌든 신호 위반 장면이 담긴 영상이 없는 한 신고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순간 머릿속에 CCTV가 떠올랐다.  

나: 그럼 CCTV를 확인해 보면 되잖아요. 횡단보도 바로 앞에 CCTV가 있었거든요.

경찰: 열람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나: 저한테 그 차주 개인정보를 달라는 게 아니라 경찰에서 확인하고 제 신고 접수를 받아달라는 건데, 뭐가 문제일까요?

따지고 들어봤자 결론은 똑같았다. CCTV 열람도, 신고 접수도 모두 불가하다는 것!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방법을 찾다가 모든 국민은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정보공개청구권에 입각해 정보공개청구라는 걸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틀 만에 CCTV관제센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관제센터: 차량이 신호 위반을 했다 하더라도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그 자료를 드릴 수가 없어요.

‘혹시나’가 또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주 실망스러운 건 아니었다.

관제센터: 다만 말씀하신 영상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찍힌 CCTV번호와 날짜, 시간을 알려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럼 그걸 근거로 관할경찰서 교통과에 신고를 해보십시오. 개인정보보호법에 보면 행정기관이 과태료를 부과하기 위해서 저희한테 영상을 요청할 수 있고, 또 저희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께는 원본영상을 드릴 수 없지만 경찰서에는 제공이 가능합니다. 

또 그로부터 이틀 뒤 관제센터에서 문제의 장면이 담긴 CCTV번호와 일시를 문자로 보내왔다. 나는 다시 관할경찰서 교통과에 전화를 걸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이 나라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며 휴대폰을 다잡았다. 그런데 들려오는 말은 나의 의지를 꺾는 말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합법적으로.

경찰: CCTV센터에서 뭐라고 했건 열람이 안 된다고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안 돼요.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 전국 어디든 다 마찬가지예요!

나를 말귀 못 알아먹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 전에 통화했던 경찰관인 듯했다. 그 와중에도 스팸문자가 날아들었다. 나는 또 경찰관한테 묻고 싶었다.

‘그래, 신호위반 차량은 그렇다 치고 나한테 스팸문자 보내는 놈들은 잡아줄 수 있겠습니까?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놈들이 분명하니 말이오.’라고..

하지만 나는 묻지 못한 채 통화를 종료했다. 씁쓸하게도 내가 조심하며 살 도리밖엔 없다는 깨달음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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